이중피동은 왜 어색하게 들릴까요?

얼마 전 학생이 쓴 글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라는 표현을 봤습니다. 뜻은 바로 통했어요. 그런데 소리 내어 읽으니 조금 길게 느껴졌습니다. ‘잊히지 않을 장면’이라고 바꾸자 문장이 가벼워졌지요. 학생에게 두 표현을 나란히 보여 주니 피동의 뜻을 두 번 담았다는 걸 스스로 알아챘습니다.
이중피동은 흔히 맞춤법 문제로 묶이지만, 글자를 어떻게 적느냐보다 말을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이미 ‘누군가의 행동을 입는다’는 뜻이 들어 있는 말에 같은 뜻을 다시 얹는 것이지요. 왜 겹치게 되었는지 알면 처음 보는 표현도 차분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잊혀지다’에는 무엇이 두 번 들어 있을까요?
‘잊다’는 기억에서 놓치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여기에 피동을 나타내는 ‘-히-’가 붙으면 ‘잊히다’가 됩니다. ‘그 일을 잊었다’에서 ‘그 일이 잊혔다’로 시선이 옮겨 간 셈입니다. 그런데 ‘잊히다’ 뒤에 다시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를 붙이면 ‘잊혀지다’가 됩니다. 잊-+-히-+-어지다. 이처럼 피동을 만드는 장치가 겹친 표현을 이중피동이라고 합니다.
우리말에는 피동을 만드는 길이 여럿 있습니다. ‘잡다’에 ‘-히-’를 붙여 ‘잡히다’로 만들 수도 있고, ‘만들다’에 ‘-어지다’를 붙여 ‘만들어지다’로 만들 수도 있지요. 어느 쪽이든 피동의 뜻은 충분히 나타납니다. 이미 피동형이 된 ‘잡히다’에 ‘-어지다’를 더한 ‘잡혀지다’가 길게 들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이런 경우 피동 표현을 거듭 쓰지 않고 간결하게 고쳐 쓰도록 안내합니다.
자주 보이는 표현은 어떻게 고치면 될까요?
안내문이나 기사에서는 ‘보여진다’, ‘쓰여진다’가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익숙하다고 해서 매번 피동을 두 번 쓸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원래 동사가 무엇인지 찾고, 이미 피동의 뜻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 ‘창밖으로 산이 보여진다’는 ‘창밖으로 산이 보인다’로 쓸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의 ‘보이다’에는 이미 ‘보다’의 피동 의미가 있습니다.
- ‘칠판에 이름이 쓰여졌다’는 ‘칠판에 이름이 쓰였다’ 또는 ‘칠판에 이름이 써졌다’로 쓸 수 있습니다. ‘쓰이다’와 ‘써지다’ 가운데 문맥에 자연스러운 쪽을 고르면 됩니다.
- ‘그날의 약속은 잊혀지지 않았다’는 ‘그날의 약속은 잊히지 않았다’로 쓰면 됩니다. ‘잊히다’만으로도 기억에서 사라지는 뜻이 드러납니다.
- ‘의견이 둘로 나뉘어졌다’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또는 ‘의견이 둘로 나누어졌다’로 쓸 수 있습니다.
‘이중피동이니 뒤의 지다만 지우자’고 외우면 다시 헷갈릴 수 있습니다. ‘쓰여졌다’를 ‘쓰였다’로 바꿀 수도, ‘써졌다’로 바꿀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하는 대안도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문장이 전하려는 뜻과 자연스러운 호응을 함께 보는 편이 좋습니다.
‘알려지다’도 같은 잘못일까요?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묻습니다. ‘알려지다’에도 ‘-리-’와 ‘-어지다’가 들어 있는데 왜 쓰느냐는 것이지요. 겉모양만 보면 충분히 생길 만한 의문입니다. 하지만 ‘-리-’가 언제나 피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리다’는 ‘남이 알게 하다’라는 뜻의 사동사입니다. 그 뒤에 ‘-어지다’가 붙은 ‘알려지다’는 알리게 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쪽에서 표현한 말입니다. 피동을 두 번 쌓은 말이 아니지요.
‘선생님이 소식을 알렸다’와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를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입니다. 앞 문장에는 누군가에게 알게 하는 행동이 있고, 뒤 문장에는 그 소식이 퍼져 사람들이 알게 된 결과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도 ‘알려지다’를 이중피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이-, -히-, -리-, -기-’ 뒤에 ‘-어지다’가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빨간 줄을 그어서는 안 됩니다. 앞의 말이 피동사인지 사동사인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보여지다’는 문맥까지 읽어야 합니다
‘보이다’는 특히 조심스럽습니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의 ‘보이다’는 ‘보다’의 피동사입니다. 이 뜻으로 ‘바다가 보여진다’라고 하면 피동의 뜻이 겹칩니다. 반면 ‘선생님이 학생에게 사진을 보였다’의 ‘보이다’는 남에게 보게 한다는 뜻의 사동사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이 사동사에 ‘-어지다’가 붙는 문맥이라면 이중피동으로만 볼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일상에서 ‘경치가 보여진다’나 ‘어렵게 보여진다’라고 말할 때는 대개 누군가에게 일부러 보게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문장에서는 ‘경치가 보인다’, ‘어렵게 보인다’가 뜻도 분명하고 읽기도 편합니다. 표현을 고칠 때에는 글자 모양만 세지 말고, 누가 무엇을 했으며 그 말이 피동인지 사동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잊혀지다’처럼 널리 쓰이는 말에는 말하려는 뜻을 더 또렷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을 겁니다. 그 마음까지 틀렸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문장을 다시 읽을 때 피동의 뜻이 이미 들어 있는지 한 번만 확인해도 좋겠습니다. 필요한 뜻을 한 번만 담은 문장이 오히려 더 오래 남을 때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