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피동 예외는 언제 인정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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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피동 예외는 언제 인정될까요?

얼마 전 학생이 쓴 글에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를 고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알려지다’에 ‘-려-’와 ‘-지다’가 함께 보이니 이중피동 같다는 거였지요. 형태를 찬찬히 짚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겉모양만으로 판단하면 잘 쓰인 말까지 지우게 됩니다.

이중피동 예외를 찾을 때는 ‘-어지다’ 앞에 놓인 말이 무슨 뜻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이미 피동의 뜻을 가진 말에 피동을 더했는지,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게 한다는 사동의 뜻에 피동을 더했는지가 갈림길입니다. 같은 글자 ‘-이-’나 ‘-히-’가 보여도 맡은 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보여지다’에서 피동은 몇 번 쓰였을까요?

‘창밖으로 산이 보인다’의 ‘보이다’는 ‘보다’에 피동의 뜻이 더해진 말입니다. 여기에 다시 ‘-어지다’를 붙인 ‘보여진다’는 피동의 뜻을 거듭 나타냅니다. 보고서에 ‘변화가 보여진다’라고 썼다면 ‘변화가 보인다’로 고치는 편이 간결합니다. ‘기록이 쓰여졌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쓰이다’가 이미 ‘쓰다’의 피동 표현이므로 ‘기록이 쓰였다’나 ‘기록이 써졌다’로 쓸 수 있습니다.

‘잊혀진 이름’은 특히 헷갈립니다. ‘잊히다’에 다시 ‘-어지다’가 붙은 꼴이어서 글을 다듬을 때는 ‘잊힌 이름’이 좋습니다. ‘그 일이 좀처럼 잊어지지 않는다’처럼 ‘잊다’에 ‘-어지다’를 한 번 붙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반면 ‘잊혀지다’가 현실에서 널리 쓰이고 느낌의 차이가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도 2026년 9월 상담에서 이중피동의 허용 여부를 어문 규범이 명시적으로 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중피동을 법칙 하나로 잘라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학교 글쓰기나 공적인 문장에서는 뜻이 분명한 ‘잊히다’나 ‘잊어지다’를 먼저 고르는 것이 안전합니다.

‘알려지다’는 왜 이중피동이 아닐까요?

‘알리다’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실을 알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의 ‘-리-’는 피동이 아니라 사동의 일을 합니다. ‘담임이 학생들에게 일정을 알렸다’에서는 담임이 알게 하는 사람이지요. ‘일정이 학생들에게 알려졌다’에서는 그 일정을 전해 듣는 쪽에서 사건을 말합니다. 사동사 ‘알리다’에 피동의 뜻을 더한 것이니, 피동을 두 번 쓴 문장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알려지다’를 한 단어로 굳어진 말로 설명합니다. 이 설명이 기억에 남는 까닭은 단순히 예외 목록에 한 칸을 더해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알다 → 알리다 → 알려지다’로 이어지는 뜻의 흐름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이 널리 알려졌다’를 ‘그 소식이 널리 알았다’로 바꿀 수 없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소식은 아는 주체가 아니라 남들에게 전해진 대상입니다.

‘숙여지다’와 ‘붙여지다’도 문맥을 봐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다’에서 ‘숙이다’는 고개가 아래로 향하게 한다는 사동의 뜻을 지닙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라고 하면 그 사동 동작이 일어난 결과를 고개 쪽에서 말한 것입니다. ‘종이가 벽에 붙여졌다’의 ‘붙여지다’도 ‘종이를 벽에 붙이다’에서 출발합니다. ‘붙이다’가 사동의 뜻으로 쓰였으니, 뒤의 ‘-어지다’와 합쳐졌다고 해서 곧바로 피동을 두 번 쓴 셈은 아닙니다.

물론 이런 말이 문장마다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고개가 숙여졌다’보다 ‘고개를 숙였다’가 행동한 사람을 또렷하게 보여 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반대로 누가 고개를 숙였는지보다 고개가 아래로 향한 상태에 눈길을 두고 싶다면 앞의 표현이 어울립니다. 국립국어원도 ‘숙여지다’, ‘붙여지다’처럼 앞말이 사동사로 분석되는 경우에는 문맥을 보고 판단하라고 안내합니다.

글자 모양보다 먼저 확인할 것은 무엇일까요?

학생들에게는 세 문장을 나란히 적어 보여 줍니다. ‘그림이 보인다’, ‘소식이 알려졌다’, ‘집이 지어졌다.’ 세 문장 모두 피동의 뜻을 나타내지만 만들어진 길은 다릅니다. ‘보이다’는 ‘보다’의 피동 표현이고, ‘알려지다’는 사동사 ‘알리다’에서 이어졌습니다. ‘지어졌다’는 ‘짓다’가 활용할 때 ‘지어’가 된 뒤 ‘-지다’가 붙은 말입니다. ‘지어’ 속의 ‘어’를 보고 피동이 한 번 더 들어 있다고 셀 수는 없습니다.

헷갈리는 표현을 만나면 먼저 ‘-어지다’를 덜어 보고 앞말의 뜻을 확인하면 좋습니다. ‘보여진다’에서 남는 ‘보인다’는 이미 피동입니다. ‘알려졌다’에서 남는 ‘알렸다’는 누군가가 알게 했다는 사동입니다. 그다음에는 문장 속에서 누가 행동하고 무엇이 그 행동을 겪는지 살핍니다. 이 두 단계를 거치면 외워 둔 예외 목록보다 오래가는 기준이 생깁니다.

말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고, 문법은 그 쓰임을 설명하려고 뒤따릅니다. 그래서 자주 들리는 표현을 무턱대고 나무랄 필요도,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같은 원리라고 볼 필요도 없습니다. ‘알려지다’가 어떻게 굳었는지 이해한 학생은 다음에 ‘보여지다’를 만났을 때도 스스로 한 번 더 따져 보더군요. 저는 그 잠깐의 망설임이 어휘를 배우는 가장 좋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중피동 예외는 언제 인정될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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