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투리 모음, 말뜻이 왜 이렇게 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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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사투리 모음, 말뜻이 왜 이렇게 깊을까요?

수업에서 ‘거시기’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학생들은 대개 웃습니다. 막상 문장 속에 넣어 보면 웃음이 멎지요. ‘거시기 좀 가져와’에서는 물건이고, ‘그 사람 거시기허네’에서는 말로 딱 집기 어려운 느낌이 됩니다. 전라도 말은 단어 하나의 뜻만 외워서는 잘 읽히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말했는지까지 들어야 제맛이 납니다.

거시기부터 잉까지, 말뜻은 대화 속에 있습니다

‘거시기’는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거나 굳이 밝히지 않아도 서로 알아들을 때 쓰는 말입니다. 물건, 사람, 일, 상태를 두루 가리킬 수 있지요. 아무 말이나 대신하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두 사람이 이미 공유한 정보가 있어야 잘 통합니다. ‘아까 말한 거시기 가져왔어?’라면 앞에서 나눈 이야기가 그 빈자리를 채워 주는 셈입니다.

‘잉’은 문장 끝에서 상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을 더합니다. ‘조심해서 가, 잉’은 단순히 ‘응’을 뒤에 붙인 문장과 같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을 한 번 더 붙잡는 다정한 말맛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전라도 방언의 ‘-잉’을 문장이나 어절 끝에서 친근함을 드러내는 요소로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전라도 사람이 모든 문장 끝에 ‘잉’을 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 거시기: 앞뒤 사정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 일을 가리키는 말
  • 잉: 상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을 더하는 말끝 표현
  • 긍께·근게: ‘그러니까’에 가까운 표현. 지역과 화자에 따라 소리가 다릅니다.
  • 인자: ‘이제’에 가까운 표현. ‘인자 가자’처럼 씁니다.

특히 ‘긍께’와 ‘근게’를 한쪽만 맞는 표기로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전라도 말 관련 글에는 영광 쪽의 ‘근게’와 진도·완도 쪽의 ‘긍께’가 나란히 소개됩니다. 같은 전라도 안에서도 말은 강과 산을 건너며 조금씩 달라집니다.

귄 있다, 게미지다에는 어떤 느낌이 담겼을까요?

‘귄 있다’를 그저 ‘예쁘다’로 바꾸면 뜻이 좁아집니다. 얼굴보다 말씨와 행동, 사람됨에서 느껴지는 매력을 두고 하는 칭찬에 가깝습니다. 처음보다 오래 볼수록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귄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귄이 없다’ 역시 외모를 평가한다기보다 정이 가는 느낌이 부족하다는 말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음식에는 ‘게미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술에 강하게 치고 오는 맛보다 먹을수록 당기는 깊은 맛을 가리킬 때 어울립니다. 국립국어원의 『새국어생활』에는 오래 묵은 장으로 끓인 국의 맛을 설명하면서 이 말을 들려줍니다. ‘맛있다’라고만 하면 사라지는 뒷맛과 여운이 ‘게미지다’에는 남아 있지요.

  • 귄 있다: 볼수록 정이 가는 매력이 있다.
  • 게미지다: 먹을수록 당기는 깊은 맛이 있다.
  • 오지다: 넉넉하고 흡족하다. ‘수확이 오지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 징하다: 정도가 지나칠 만큼 대단하다. 말하는 상황에 따라 감탄도, 핀잔도 됩니다.
  • 짠하다: 상대의 처지가 애틋하게 느껴진다.

‘징하다’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일을 징하게 잘한다’는 놀라움에 가깝고, ‘비가 징하게 온다’는 지겨움을 담을 수 있습니다. 뜻풀이 한 줄보다 표정과 어조가 먼저 필요한 말이지요. ‘오지다’도 요즘 널리 쓰인다고 해서 어느 한 지역에서만 쓰는 말처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전라도 말의 쓰임을 보여 주는 예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얼매나, 포도시처럼 소리가 달라진 말도 있습니다

‘얼매나’는 ‘얼마나’를 떠올리면 뜻이 금방 잡힙니다. ‘얼매나 기다렸는디’라고 하면 기다린 시간이 길었다는 사실에 말하는 이의 감정까지 실립니다. ‘포도시’는 ‘겨우’, ‘간신히’에 가까워 ‘차를 포도시 탔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사전식 뜻을 외우기보다 아슬아슬하게 차에 올라타는 장면을 붙여 두면 오래 기억됩니다.

‘댕기다’는 ‘다니다’에 대응하는 말로, ‘어디 댕겨 왔어?’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전라도 방언 관련 글은 ‘당기다’가 ‘댕기다’로 나타나는 예도 설명합니다. 그래서 글자만 보고 언제나 같은 표준어 한 단어로 바꾸기보다 문장 전체를 봐야 합니다. ‘마실 간다’의 ‘마실’은 가까운 이웃집에 놀러 가는 생활 모습과 함께 기억하면 좋습니다.

  • 얼매나: 얼마나
  • 포도시: 겨우, 간신히
  • 댕기다: 문맥에 따라 ‘다니다’ 또는 ‘당기다’에 대응하는 말
  • 마실: 가까운 곳, 특히 이웃집에 놀러 가는 일과 관련된 말
  • 오매: 놀라거나 감탄할 때 나오는 말

이 가운데 ‘마실’이나 ‘댕기다’를 전라도에서만 쓰는 고유한 말로 묶으면 곤란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나타납니다. 사투리 모음은 지역의 말을 이해하는 입구이지, 말마다 소유권을 붙이는 명단은 아니니까요.

솔과 여시는 그곳의 생활을 보여 줍니다

부추를 ‘솔’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부추를 가리키는 지역별 말 가운데 전라도의 ‘솔’을 예로 듭니다. 여우를 ‘여시’라고 하는 말도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에서 함께 나타납니다. ‘솔’은 장터의 채소 한 단을, ‘여시’는 옛이야기의 동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붙이는 방식에서 지역의 말이 살아 있지요.

더 촘촘한 이름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새국어생활』에 실린 전라도 말 이야기에서는 신안의 한 섬에서 숭어를 크기에 따라 일곱 이름으로 구별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자주 잡고 다루는 물고기라면 크기를 세밀하게 가리킬 말이 필요했을 겁니다. 방언은 표준어를 어설프게 바꾼 말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생활하며 쌓아 온 구별입니다.

전라도 사투리 모음을 읽을 때 저는 학생들에게 먼저 장면을 그려 보라고 합니다. 누가 ‘포도시 왔다’고 했는지, 왜 ‘귄 있다’고 칭찬했는지 생각하면 뜻이 오래 남습니다. 같은 말도 전북과 전남, 섬과 내륙,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차이까지 듣는 태도가 말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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