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사자성어, 마음에 맞는 말은 무엇일까요?

연말이면 학생들이 새해 인사 카드에 쓸 말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송구영신’을 적었다가 뜻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도 있었지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말인데, 네 글자의 방향이 또렷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새해 사자성어는 어려운 말을 골라야 멋있어지는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전할지 먼저 생각하면 말도 고르기 쉬워집니다.
송구영신과 근하신년은 어떻게 다를까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송’은 보내다, ‘구’는 옛것이라는 뜻입니다. 뒤의 ‘영’은 맞이하다, ‘신’은 새것이지요. 네 글자를 순서대로 읽으면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한 해가 넘어가는 때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지난해의 걱정은 덜고 새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같은 문장 앞에 놓아도 자연스럽습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은 뜻의 중심이 다릅니다.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인사입니다. ‘근(謹)’에는 말을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건넨다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연하장 윗부분에 근하신년이라고 적고 아래에 안부를 덧붙이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송구영신이 해가 바뀌는 장면을 말한다면, 근하신년은 상대에게 축하를 전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둘 다 새해에 쓸 수 있지만 자리가 조금 다릅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짧은 문자라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더 따뜻할 수 있고, 격식을 갖춘 카드에는 근하신년이 어울립니다. 한자어라고 해서 언제나 더 정중하거나 진심 어린 것은 아닙니다. 받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잘되기를 빌 때는 만사형통을 어떻게 쓸까요?
만사형통(萬事亨通)은 새해 덕담에 자주 쓰입니다. ‘만사’는 온갖 일, ‘형통’은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림을 뜻합니다. 여기서 ‘만’을 숫자 만 개로 딱 잘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만사’ 전체가 여러 가지 일을 두루 가리킵니다. “올해는 만사형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면 상대가 하는 일들이 순조롭기를 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에게 이 말 하나만 보내면 조금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새 직장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만사형통하길 바라”처럼 상대의 사정을 한 줄 곁들이면 덕담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제자에게는 “새 학기에도 만사형통하길 바란다”보다 “새 학기에는 궁금한 걸 마음껏 물어보며 지내길 바란다”가 더 알맞을 수도 있고요. 사자성어는 마음을 대신 써 주는 문장이 아니라, 이미 품은 마음을 짧게 담는 그릇에 가깝습니다.
새해 다짐에는 어떤 네 글자가 어울릴까요?
새 계획을 세울 때 떠오르는 말은 작심삼일(作心三日)입니다. 마음먹은 일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누군가의 다짐을 두고 “또 작심삼일이겠지”라고 하면 핀잔이 됩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에 쓰면 웃으며 다시 시작할 여지가 생깁니다. “작심삼일이면 사흘마다 다시 마음먹겠다”는 말이 그래서 재치 있게 들립니다. 원래 뜻이 바뀐 것은 아니고, 실패를 대하는 태도를 가볍게 돌려 표현한 셈입니다.
조금 더 단단한 다짐을 원한다면 초지일관(初志一貫)이 있습니다. ‘처음 품은 뜻을 한결같이 관철한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시작할 때 중요하게 여긴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쓰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매일 한 권 읽겠다”보다 “하루에 열 쪽씩 읽는 즐거움을 초지일관 지키겠다”가 생활 속에서는 오래갑니다.
한 해의 시작에 일을 새롭게 해 나가겠다는 마음은 심기일전(心機一轉)으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을 바꾸어 새롭게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세 말의 쓰임은 다릅니다. 작심삼일은 오래가지 못한 결심을 돌아볼 때, 초지일관은 처음의 뜻을 지키고 싶을 때, 심기일전은 마음을 새로 다잡을 때 알맞습니다.
네 글자라고 생각하기 쉬운 말도 있을까요?
새해 문구를 고르다 보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만납니다. 뜻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에 가깝습니다. 오래된 글인 《대학》에는 ‘진실로 하루 새로워졌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라’는 취지의 구절이 나옵니다. 하루의 변화에 그치지 말라는 뜻이어서 새해 다짐과도 잘 맞습니다.
다만 일신우일신은 한자를 세어 보면 日·新·又·日·新, 다섯 글자입니다. 새해에 쓰기 좋은 한자 성어이지만 엄밀히는 ‘사자성어’ 목록에 넣기 어렵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이 말을 소개할 때 학생들과 먼저 글자 수를 세어 보곤 했습니다. 뜻을 알고도 글자 하나를 놓치기 쉽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더군요.
새해에 건네는 말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격식을 갖춰 축하하고 싶다면 근하신년, 하는 일이 잘 풀리기를 빈다면 만사형통, 내 마음을 새로 세우고 싶다면 심기일전이 있습니다. 네 글자의 뜻을 풀어 읽고 자기 말 한 줄을 보태면, 익숙한 인사도 그 사람에게만 건넬 수 있는 말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