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셨다’는 높임말로 써도 괜찮을까요?

얼마 전 학생 글을 봤는데,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옆에 다른 학생이 빨간 펜으로 “높임말이면 돌아가셨습니다가 맞음”이라고 적어 두었더군요. 이럴 때 아이들이 제일 헷갈립니다. ‘돌아가셨다’가 낮춤말인지, ‘돌아가셨습니다’만 높임말인지 기준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먼저 답부터 말하면, ‘돌아가셨다’는 높임 표현이 맞습니다. 다만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문장 끝을 바꾸면 됩니다. 돌아가신 분을 높이는 말은 ‘돌아가시다’ 안에 이미 들어 있고, 듣는 사람을 높이려면 ‘돌아가셨습니다’처럼 끝맺음을 높이면 됩니다.
‘돌아가셨다’에서 높임은 어디에 들어 있을까요?
우리말 높임은 하나가 아닙니다. 크게 보면 ‘문장 속 인물을 높이는 방식’과 ‘말을 듣는 사람을 높이는 방식’이 따로 움직입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를 보면, 높임은 두 군데에서 보입니다.
- ‘할머니께서’의 ‘께서’: 주어를 높이는 조사
- ‘돌아가셨다’의 ‘-시-’: 행동이나 상태의 주체를 높이는 선어말 어미
- ‘-었다’: 과거를 나타내는 말
- ‘-다’: 평서형 종결 어미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가 붙었다고 해서 앞의 높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선생님께서 오셨다”도 선생님을 낮춘 말이 아닙니다. 글이나 일기, 설명문에서는 자연스러운 문장입니다. 다만 선생님 앞에서 직접 말한다면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돌아가셨다’는 돌아가신 분을 높인 말이고, ‘돌아가셨습니다’는 돌아가신 분도 높이고 듣는 사람도 높인 말입니다. 높임의 방향이 서로 다릅니다.
왜 하필 ‘돌아가다’라고 말했을까요?
사실 ‘죽다’라는 말은 뜻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너무 직접적입니다. 가족의 죽음을 말할 때 “아버지가 죽었다”라고 하면 맞춤법상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는 거칠게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말은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표현을 많이 만들어 왔습니다.
‘돌아가다’도 그런 말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어딘가로 돌아간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삶을 잠시 머문 자리로 보고, 죽음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처럼 말하는 방식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돌아가다’에는 ‘죽다’의 높임말 뜻이 실려 있습니다. 단순히 예쁘게 돌려 말한 정도가 아니라, 사전적으로도 인정된 높임 표현입니다.
이런 완곡어는 우리말에 꽤 많습니다. ‘세상을 떠나다’, ‘눈을 감다’, ‘영면하다’ 같은 말도 죽음을 직접 찌르지 않고 조금 멀리서 말합니다. 말이 멀어지면 감정이 덜 다칩니다. 그래서 장례식장, 부고, 추모 글에서는 ‘죽다’보다 이런 표현을 자주 씁니다.
‘죽으셨다’와 ‘돌아가셨다’는 뭐가 다를까요?
“그럼 ‘죽으셨다’도 높임말 아닌가요?” 학생들이 자주 묻습니다. 맞습니다. 문법만 보면 ‘죽다’에 ‘-시-’가 붙었으니 주체 높임이 들어간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말맛은 다릅니다.
‘죽으셨다’는 높임은 있으나 표현이 직접적입니다. 병원 기록이나 사고 설명처럼 사실을 분명히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전하거나 어른의 죽음을 말할 때는 ‘돌아가셨다’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높임말은 문법만 맞추는 일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감정까지 헤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할아버지가 죽었다: 사실 전달은 되지만 매우 직설적임
- 할아버지가 죽으셨다: 문법적 높임은 있으나 말이 세게 들릴 수 있음
-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주체를 높이면서 완곡하게 표현함
-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 알맞음
특히 부고 문자나 학교 안내문처럼 여러 사람에게 전하는 글에서는 “○○님의 조부께서 별세하셨습니다”, “할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처럼 쓰면 무난합니다. 친한 친구에게 조용히 말할 때는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라고 해도 자연스럽습니다.
‘사망하셨다’는 왜 어색하게 들릴 때가 있을까요?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뉴스, 통계, 행정 문서에서 자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같은 문장은 객관적이고 건조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사망하셨습니다”라고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딱딱하거나 거리감 있게 들립니다.
이유는 ‘사망’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을 따뜻하게 높이는 느낌보다 사건을 기록하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법적으로 ‘사망하셨다’가 불가능한 말은 아닙니다. 다만 조문, 추모, 가족의 부고에서는 ‘돌아가셨다’, ‘별세하셨다’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별세’는 윗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로 많이 쓰입니다. ‘작고’는 주로 이름난 사람이나 글에서 조금 격식을 갖춰 말할 때 보입니다. ‘타계’도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지만, 신문 기사나 공식 문장에서 자주 보이는 편입니다. 일상 대화에서는 ‘돌아가셨다’가 가장 넓게 쓰입니다.
상황에 따라 이렇게 고르면 됩니다
표현은 상황을 탑니다. 같은 죽음이라도 가족끼리 말할 때, 부고를 보낼 때, 기사처럼 쓸 때의 말이 조금씩 다릅니다. 기준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너무 공식적인 말은 차갑게 들리고, 공식적인 자리일수록 너무 구어적인 말은 가볍게 들립니다.
- 일기나 설명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 어른에게 말할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친구에게 말할 때: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 부고 문장: “○○님의 모친께서 별세하셨습니다.”
- 기사나 통계: “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자기 가족을 말할 때도 돌아가신 분이 높여야 할 대상이면 ‘돌아가셨다’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는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남에게 공손히 전할 때는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처럼 말끝까지 맞추면 됩니다.
우리말 높임은 늘 사람 사이의 거리와 마음을 같이 봅니다. ‘돌아가셨다’가 맞느냐 틀리느냐만 따지면 금방 딱딱해집니다. 이 표현이 죽음을 바로 말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전하는 말이라는 점을 알면, 왜 많은 사람이 이 말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맞춤법보다 먼저 말의 마음을 알면, 표현은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