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바람 이름은 왜 이렇게 다를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샛바람이 분다’는 문장을 읽었는데, 한 학생이 바람이 동쪽으로 가는지 동쪽에서 오는지 물었습니다. 좋은 질문이었어요. 바람 이름을 외우기 전에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짚어야 헷갈리지 않습니다. 우리말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나타내는 이름도 있고, 바람을 맞는 계절과 느낌을 담은 이름도 있습니다.
샛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올까요?
바람의 방향을 말할 때 기준은 바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불어오는 곳’입니다. 동풍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이지요. 순우리말로는 샛바람이라고 합니다. 서쪽에서 불어오면 하늬바람, 남쪽에서 불어오면 마파람, 북쪽에서 불어오면 된바람입니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어 교육 자료에도 이 네 이름이 각각 동풍·서풍·남풍·북풍에 대응하는 말로 실려 있습니다.
교실에서는 칠판 가운데 집 한 채를 그리고 네 방향에 바람 이름을 적곤 합니다. 집 오른쪽인 동쪽에서 바람이 들어오면 샛바람, 왼쪽인 서쪽에서 들어오면 하늬바람입니다. ‘동쪽으로 부는 샛바람’이라고 쓰면 방향이 뒤집히는 셈이지요. 낱말 네 개를 줄줄 외우는 것보다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떠올리는 편이 오래 남습니다.
두 방향의 사이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높새바람입니다. 샛바람과 나란히 놓고 보면 둘 다 동쪽과 관련되지만, 높새바람은 북쪽으로 더 기운 바람이지요. 다만 이름의 각 부분을 오늘날의 낱말 뜻으로 억지로 쪼개 풀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쓰인 바람 이름은 현재의 말맛만으로 어원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서풍도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달랐어요
바람 이름은 책상 위에서만 만들어진 말이 아닙니다. 배를 띄우고 날씨를 살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바람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가 생활의 정보였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제주 어촌 생활어에는 동쪽 바람을 ‘셋브름’, 남쪽 바람을 ‘마푸름’이라 부른 기록이 나옵니다. 표준어 샛바람, 마파람에 대응하는 제주어입니다.
같은 조사에는 서쪽에서 오는 바람을 가리키는 ‘갈브름’도 나옵니다. 제주 현장에서는 ‘하늬브름’을 북쪽 바람으로 부르는 사례가 기록되어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의 하늬바람 뜻은 서풍입니다. 이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한 지역에서 오래 쓰인 말을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방향으로 썼다고 단정하면 실제 생활의 언어를 놓치게 됩니다. 글을 쓸 때는 표준어의 뜻을 기준으로 삼되, 지역의 말은 그 지역에서 쓰인 뜻 그대로 읽어야 합니다.
된바람도 조심해서 볼 이름입니다. 방향을 가리킬 때는 북풍이지만, 사전에는 거세게 부는 바람과 관련된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된’이 반드시 ‘세다’에서 왔다거나 반드시 옛 방위어에서 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립국어원 역시 된바람의 어원에는 여러 견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뜻을 정확히 쓰는 일과 기원을 하나로 확정하는 일은 구별할 필요가 있지요.
방향 대신 계절을 담은 바람 이름도 있습니다
봄에 꽃봉오리가 올라왔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불면 ‘꽃샘바람’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듯 부는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바람에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꽃이 필 무렵 다시 찾아온 추위를 사람이 겪은 느낌으로 표현한 이름이지요. 샛바람이 방향을 알려 준다면 꽃샘바람은 때와 인상을 함께 전합니다.
‘소슬바람’에는 가을의 쓸쓸한 느낌이, ‘선들바람’에는 가볍고 시원한 감각이 담깁니다. 두 바람을 모두 그저 ‘약한 바람’으로 바꾸면 문장에 놓인 계절과 분위기가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창문 틈으로 선들바람이 들어왔다’고 하면 더위를 덜어 주는 시원함이 먼저 느껴집니다. ‘낙엽 사이로 소슬바람이 불었다’고 하면 서늘하고 쓸쓸한 장면이 그려지고요. 비슷해 보이는 말을 고를 때는 풍속보다 그 말이 데려오는 장면을 보는 편이 좋습니다.
‘산들바람’과 ‘선들바람’도 글자 하나 차이라 자주 섞입니다. 문맥 속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살릴지, 선선하고 시원한 느낌을 살릴지 생각하면 선택이 쉬워집니다. 바람의 이름은 사전의 한 줄 뜻만 읽을 때보다 문장 안에 놓아 볼 때 살아납니다.
표기를 기억할 때는 장면도 함께 떠올리세요
샛바람을 ‘새바람’으로 적으면 ‘새로 부는 바람’처럼 읽힐 수 있습니다. 동쪽에서 오는 바람의 이름은 ‘샛바람’으로 붙여 씁니다. 서풍은 ‘하늬바람’이지 ‘하니바람’이 아니고, 남풍은 ‘마파람’입니다. ‘높새바람’ 역시 한 단어로 적습니다. 낱말을 둘로 띄거나 발음대로 바꾸기보다 사전에 오른 이름 전체를 눈에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짧은 일기 한 줄을 써 보게 합니다. ‘아침에는 동쪽에서 샛바람이 불었고, 오후에는 창가로 선들바람이 들어왔다’처럼요. 첫 바람은 방향을, 둘째 바람은 몸에 닿는 느낌을 전합니다. 같은 날의 바람도 무엇을 보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우리말 바람 이름을 읽을 때마다, 그 말을 처음 쓰던 사람이 어느 쪽 하늘을 보고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