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 높이는 법, 많이 읽기만 하면 정말 좋아질까요?

얼마 전 중학생 글쓰기 공책을 보다가 한 문장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그 인물은 불쌍하지만 너무 나약해서 답답하다.” 문장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나약하다’가 아니라 ‘우유부단하다’에 가까웠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과 결정을 못 내리는 사람은 다르지요. 어휘력은 어려운 말을 많이 아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내 생각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는 힘입니다.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어휘력이 부족한 학생은 글을 못 읽어서가 아니라, 읽은 내용을 자기 말로 갈라내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하다, 서운하다, 분하다, 섭섭하다’를 모두 ‘기분 나쁘다’로 처리하면 감정의 결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그 차이를 알면 문학 작품의 인물도, 비문학 글의 주장도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어휘력은 단어 개수보다 구별하는 힘입니다
어휘력 높이는 법을 묻는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방법은 단어장입니다. 물론 단어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단어를 뜻 하나로만 외우면 금방 흩어집니다. ‘가엾다’는 ‘불쌍하다’와 비슷하지만 늘 같은 자리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가엾은 처지”는 자연스럽지만 “가엾은 실수”는 어색합니다. 단어에는 뜻뿐 아니라 어울리는 자리, 함께 붙는 말, 쓰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단어 하나를 가르칠 때 반대말보다 먼저 비슷한 말을 나란히 놓습니다. 예를 들어 ‘비난, 비판, 지적’을 같이 봅니다. 비난은 감정이 앞설 수 있고, 비판은 근거를 따져 판단하는 말이며, 지적은 문제점을 짚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셋을 구별하면 뉴스 기사나 토론문을 읽을 때 필자의 태도가 보입니다. 단어 하나를 더 외운 것이 아니라 문장을 읽는 눈이 생기는 겁니다.
뜻을 외우기 전에 쓰임을 먼저 보세요
사전 뜻은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실제 어휘력은 예문에서 자랍니다. ‘해명’과 ‘변명’을 생각해 봅시다. 둘 다 어떤 일에 대해 말로 밝히는 행위와 관련됩니다. 하지만 “공식 해명”은 자연스럽고 “공식 변명”은 이미 부정적인 냄새가 납니다. ‘변명’에는 책임을 피하려 한다는 느낌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는 사전 한 줄만 보고는 잘 남지 않습니다. 실제 문장에서 만나야 합니다. “회사가 사고 원인을 해명했다”, “그는 늦은 이유를 변명했다”처럼 놓고 보면 말의 온도가 다릅니다. 학생들에게도 단어를 외울 때 뜻만 적지 말고 짧은 문장을 하나 붙이라고 말합니다. ‘냉소: 남을 업신여기듯 차갑게 비웃음’이라고 쓰는 것보다 “그는 냉소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가 오래 갑니다.
한자어는 쪼개면 갑자기 쉬워집니다
우리말 어휘에서 한자어의 비중은 상당히 큽니다. 교과서와 신문, 시험 지문으로 갈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휘력 높이는 법에서 한자어를 빼면 빈틈이 생깁니다. 다만 한자를 쓰며 외우라는 뜻은 아닙니다. 글자의 뜻을 쪼개 보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관찰’은 볼 관, 살필 찰입니다. 그냥 ‘자세히 봄’이라고 외워도 되지만, 관과 찰이 함께 들어 있다는 걸 알면 ‘고찰, 성찰, 통찰’도 이어집니다. 고찰은 깊이 생각하여 살핌, 성찰은 자기 안을 되돌아봄, 통찰은 꿰뚫어 봄에 가깝습니다. 하나를 배웠는데 네 단어의 길이 열립니다.
‘개선’과 ‘개정’도 자주 헷갈립니다. 개선은 더 좋게 고치는 것이고, 개정은 법이나 규칙의 내용을 고치는 일에 많이 씁니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다”는 자연스럽지만 “생활 습관을 개정하다”는 어색합니다. 반대로 “교육과정을 개정하다”는 제도나 문서의 내용을 손보는 말이라 잘 맞습니다. 한자어는 뜻을 잘게 나누면 쓰임의 경계가 보입니다.
읽기만 하지 말고 바꿔 말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어휘력이 좋아진다는 말은 대체로 맞습니다. 그런데 그냥 눈으로만 지나가면 생각보다 많이 남지 않습니다. 읽은 뒤에 바꿔 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문장을 쉬운 말로 바꾸고, 쉬운 말을 더 정확한 말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그 정책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라는 문장을 읽었다고 해 봅시다. 이걸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이익을 늘리는 데 보탬이 되었다”라고 바꾸면 뜻이 풀립니다. 다시 “권익, 증진, 기여”라는 말을 제자리에 넣어 보면 단어가 문장 속에서 살아납니다. 이 왕복 운동이 어휘를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합니다. 초고에는 흔한 말을 써도 괜찮습니다. 다 쓴 뒤에 ‘좋다, 나쁘다, 많다, 크다, 느끼다’ 같은 말을 표시해 보세요. 그중 몇 개만 바꿔도 글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좋은 결과’는 ‘의미 있는 성과’가 될 수 있고, ‘나쁜 영향’은 ‘부정적 파장’이 될 수 있습니다. 단, 어려운 말로 치장하는 방향은 곤란합니다. 뜻이 더 정확해질 때만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 10분이면 충분한 어휘 습관
어휘력은 몰아서 올리기 어렵습니다. 대신 짧게 자주 만나는 방식이 잘 맞습니다. 하루에 새 단어 20개를 외우는 것보다, 단어 3개를 문장과 함께 익히는 편이 오래 갑니다. 실제로 수업에서도 많은 양을 한꺼번에 준 날보다 적은 단어를 여러 문맥에서 다룬 날 학생들의 사용률이 높았습니다.
- 읽다가 낯선 단어를 만나면 바로 뜻을 단정하지 말고 앞뒤 문장으로 먼저 추측합니다.
- 사전에서 뜻을 확인한 뒤 예문을 하나 적습니다.
- 비슷한 말 두세 개를 함께 놓고 차이를 한 줄로 씁니다.
- 그날 배운 단어를 넣어 자기 경험 문장 하나를 만듭니다.
이 네 가지를 다 해도 10분 안팎입니다. 중요한 건 매일 거창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단어를 문장 안에 묶어 두는 일입니다. 어휘는 따로 저장되는 지식이 아니라 상황과 감정, 문맥에 기대어 기억됩니다.
신조어도 무조건 멀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언제, 누구에게, 어떤 자리에서 쓰는 말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친구끼리 쓰는 말과 보고서에 쓰는 말은 다릅니다. ‘킹받다’의 느낌을 아는 학생이 ‘분개하다’와 ‘불쾌하다’의 차이까지 알게 되면 표현의 폭은 오히려 넓어집니다. 표준어와 신조어를 싸움 붙일 일이 아니라, 자리의 차이를 가르치면 됩니다.
어휘력이 좋은 사람은 어려운 말을 많이 늘어놓는 사람이 아닙니다. 쉬운 말과 정확한 말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같은 마음도 ‘속상하다’라고 할 때와 ‘허탈하다’라고 할 때가 다릅니다. 같은 주장도 ‘말했다’와 ‘강조했다’와 ‘반박했다’가 다릅니다. 말의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면 읽는 글이 선명해지고, 쓰는 문장도 덜 흔들립니다. 저는 그때부터 어휘 공부가 암기가 아니라 이해의 일이 된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