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순우리말 사전, 이름 지을 때 어떤 말을 골라야 할까요?

얼마 전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가온’이 진짜 순우리말이에요?” 요즘 아이돌 예명, 반려동물 이름, 카페 이름, 브랜드 이름에 순우리말을 붙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보기 좋고 소리도 부드럽지요. 그런데 예쁘다고 해서 모두 표준어이거나 오래전부터 쓰인 말은 아닙니다. 사전에서 확인되는 말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이름용으로 널리 퍼진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쁜 순우리말 사전’을 찾을 때는 단어의 소리만 보지 말고 뜻, 쓰임, 실제 표기까지 같이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말은 장식품이 아니라 오래 쓰는 그릇이거든요. 특히 아이 이름이나 상호처럼 오래 남는 말이라면 더 조심해서 골라야 합니다.
순우리말이라는 말부터 조금 정확히 볼까요?
‘순우리말’은 한자어,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 고유어를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하늘’, ‘바람’, ‘나무’, ‘별’, ‘고요’, ‘아침’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다만 일상에서는 ‘예쁜 우리말’과 ‘순우리말’을 섞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망’, ‘은혜’, ‘소망’은 예쁘지만 한자어입니다. 반대로 ‘개똥’, ‘진흙’, ‘고드름’은 순우리말이지만 이름으로 쓰기에는 분위기가 다르지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되는 고유어인지, 또는 이름 짓기 문화 속에서 만들어져 퍼진 말인지 구별하면 훨씬 안정적으로 고를 수 있습니다. 물론 새말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언어는 늘 변합니다. 다만 ‘오래전부터 내려온 순우리말’이라고 단정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예쁜 순우리말
사람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많이 쓰이는 말은 소리가 짧고 뜻이 밝은 편입니다. 부르기 쉽고, 받침이 너무 복잡하지 않은 말이 오래 살아남습니다. 다음 말들은 비교적 부담 없이 기억하기 좋습니다.
- 가람: 강을 뜻하는 옛말입니다. 흐름과 넓이를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 나래: 날개를 뜻하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펼침, 성장, 자유의 느낌이 강합니다.
- 다솜: 사랑의 옛말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이름에 잘 어울립니다.
- 라온: 즐거운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입니다. 다만 현대 이름말로 알려진 성격이 강하니 설명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 마루: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 또는 집 안의 마루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중심과 으뜸의 느낌이 있습니다.
- 보람: 어떤 일을 한 뒤 얻는 좋은 결과나 가치입니다. 뜻이 분명해 이름으로도 안정적입니다.
- 슬기: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는 힘입니다. 실제 생활어로도 널리 쓰여 어색하지 않습니다.
- 아라: 바다를 뜻하는 말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지역어나 옛말 계열의 설명이 섞여 있으므로 용례 확인이 좋습니다.
- 하늬: 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뜻하는 ‘하늬바람’에서 온 말입니다. 소리가 맑고 인상이 고전적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보람’과 ‘슬기’는 누구나 뜻을 압니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반면 ‘라온’, ‘다솜’, ‘아라’처럼 이름말로 많이 알려진 단어는 예쁘지만 뜻풀이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사전 확인과 실제 용례 확인을 함께 하는 편이 좋습니다.
자연에서 온 말은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순우리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까닭 중 하나는 자연과 가까운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은 계절, 바람, 빛, 물길을 아주 세밀하게 불렀습니다. ‘비’ 하나만 해도 가랑비, 이슬비, 보슬비, 장대비처럼 느낌이 다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면 단어가 갑자기 살아납니다.
- 가랑비: 가늘게 내리는 비입니다. 조용하고 은근한 분위기가 납니다.
- 보슬비: 바람 없이 보슬보슬 내리는 비입니다. 소리 자체가 뜻을 닮았습니다.
-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을 가리킵니다. 최근 이름과 브랜드명으로 매우 자주 보입니다.
- 여울: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입니다. 맑지만 힘 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 노을: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하늘이 붉게 물드는 현상입니다. 누구나 바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 새벽: 날이 밝기 전의 시간입니다. 시작, 고요, 가능성의 뜻을 담기 좋습니다.
- 미리내: 은하수를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일상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자연어는 상호나 필명에도 잘 맞습니다. 예를 들어 ‘윤슬’은 빛의 반짝임이 있어 사진관, 공방, 카페 이름으로 어울립니다. ‘여울’은 흐름과 움직임이 있어 독서 모임이나 음악 공간 이름에도 잘 맞고요. 말의 뜻과 쓰일 공간의 성격이 맞으면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품이 납니다.
뜻이 예뻐도 조심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순우리말 목록을 보다 보면 너무 매끈한 말들이 보입니다. ‘이게 정말 옛말일까?’ 싶은 단어도 있지요. 실제로 인터넷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순우리말 풀이가 꽤 많습니다. 예쁜 이름을 만들기 위해 새롭게 해석했거나, 특정 이름 사이트에서 퍼진 풀이가 사전적 뜻처럼 굳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지 않지만 이름으로는 널리 쓰입니다. 또 어떤 말은 사전에 있더라도 우리가 기대한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운’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을 뜻하는 관형형으로 자연스럽지만, ‘고운빛’처럼 붙여 쓸 때는 새 이름말에 가까워집니다. 이런 조합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전통 순우리말’이라고 말하려면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맞춤법도 함께 봐야 합니다. ‘하늘빛’은 붙여 쓰는 합성어로 자연스럽지만, 모든 말이 그렇게 쉽게 붙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이나 상호는 띄어쓰기 규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쓰이지만, 글 속에서 단어로 설명할 때는 표준 표기와 관용 표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국어를 오래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틀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예쁜 말이라고 생각한 순간, 표기 검토를 건너뛰거든요.
예쁜 순우리말을 고를 때 보는 세 가지 기준
저는 학생들에게 단어를 고를 때 세 가지를 보라고 말합니다. 첫째, 뜻이 분명한가. 둘째, 소리 내어 불렀을 때 자연스러운가. 셋째, 설명할 때 과장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 세 가지를 통과하면 오래 쓰기 좋습니다.
뜻이 분명한 말은 힘이 있습니다. ‘슬기’, ‘보람’, ‘새벽’, ‘노을’처럼 누구나 어느 정도 감을 잡는 말은 설명이 짧아도 됩니다. 반면 뜻을 설명할 때마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고, 자료마다 풀이가 엇갈린다면 이름으로 쓸 때 조금 피곤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은 대체로 오래 설명하지 않아도 제 자리를 찾습니다.
소리도 중요합니다. 이름은 눈으로만 읽는 말이 아닙니다. 계속 불리고 들리는 말입니다. 받침이 겹치거나 비슷한 소리가 반복되면 처음에는 특별해 보여도 실제 사용에서는 걸릴 수 있습니다. ‘가람’, ‘나래’, ‘여울’처럼 입 안에서 부드럽게 흘러가는 말이 오래 남는 까닭이 있습니다.
과장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말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라고 말하는 순간, 말보다 광고 문구가 앞섭니다. 우리말은 그렇게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충분히 곱습니다. ‘가랑비’는 가늘게 오는 비라서 좋고, ‘윤슬’은 물 위의 빛이라서 좋습니다. 뜻 그대로 말해도 이미 아름답습니다.
작은 사전처럼 곁에 두면 좋은 말들
실제로 글을 쓰거나 이름을 고를 때는 분야별로 묶어 두면 찾기 쉽습니다. 빛과 하늘을 좋아한다면 ‘노을, 별, 새벽, 윤슬, 햇살’을 한 갈래로 묶을 수 있습니다. 물과 길의 느낌을 원한다면 ‘가람, 여울, 물결, 나루, 바다’를 떠올리면 됩니다. 마음의 성품을 담고 싶다면 ‘슬기, 보람, 고요, 다솜, 온새미로’ 같은 말이 후보가 됩니다.
다만 ‘온새미로’처럼 매우 유명한 말도 확인은 필요합니다.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현대의 순우리말 이름 목록을 통해 대중화된 말입니다. 이런 말은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리와 뜻이 좋아 널리 사랑받는 사례입니다. 다만 설명할 때 “오래된 고유어로 반드시 사전에 실린 말”처럼 말하지 않는 태도가 정확합니다.
저는 예쁜 순우리말을 고르는 일이 단어 쇼핑처럼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뜻 하나를 오래 곁에 두는 일입니다. 사전에서 뜻을 확인하고, 입으로 몇 번 불러 보고, 그 말이 놓일 자리까지 생각해 보면 선택이 달라집니다. 예쁜 말은 많지만 오래 견디는 말은 조금 다릅니다. 그런 말을 천천히 고르는 과정까지가 우리말을 아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