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퀴즈, 아이도 어른도 자주 틀리는 말은 왜 헷갈릴까요?

교실에서 제일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얼마 전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순우리말 퀴즈를 냈습니다. “비가 오려고 하늘이 흐릿한 모양을 뜻하는 말은?” 하고 물었더니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보기에는 ‘꾸물꾸물’, ‘끄물끄물’, ‘흐물흐물’을 넣었습니다. 답은 ‘끄물끄물’입니다. 그런데 아이들 절반 가까이가 ‘꾸물꾸물’을 골랐습니다. 사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발음이 비슷하고, 뜻도 어렴풋이 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손이 익은 쪽으로 가 버립니다.
순우리말은 왠지 쉽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자어처럼 뜻을 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외래어처럼 낯선 소리가 섞인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막상 퀴즈로 만나면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그 말을 모르는 게 아니라, ‘대충 아는 상태’로 오래 써 왔기 때문입니다. 순우리말 퀴즈가 재미있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틀린 뒤에야 말의 결이 보입니다.
순우리말 퀴즈가 생각보다 어려운 까닭
순우리말 퀴즈에서 자주 틀리는 문제는 대개 세 가지 유형입니다. 첫째, 소리가 비슷한 말입니다. 둘째, 뜻이 겹쳐 보이는 말입니다. 셋째,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쓰지 않지만 문학 작품이나 옛말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가랑비’와 ‘이슬비’는 둘 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는 비를 넓게 이르는 말이고, 이슬비는 이슬처럼 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에 가깝습니다. 둘을 엄격히 나누지 않고 말해도 일상 대화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퀴즈에서는 이런 미세한 차이가 답을 가릅니다.
‘새초롬하다’와 ‘시치름하다’도 학생들이 자주 헷갈립니다. 새초롬하다는 조금 쌀쌀맞게 시치미를 떼는 태도를 말할 때 많이 씁니다. 시치름하다는 시치미를 떼며 태연한 척하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비슷하죠. 그런데 비슷하다고 같은 말은 아닙니다. 우리말 어휘력은 이런 가까운 말 사이의 거리를 느끼는 데서 자랍니다.
맞혀 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순우리말 문제
아래 문제는 수업에서 반응이 좋았던 순우리말 퀴즈입니다. 답을 바로 보지 말고 5초 정도만 멈춰 보시면 좋습니다. 오래 고민하는 것보다, 처음 떠오른 감각을 확인하는 편이 더 재미있습니다.
1. ‘아주 잠깐 동안’을 뜻하는 순우리말은?
- ① 삽시간
- ② 한참
- ③ 오래비
답은 ① ‘삽시간’입니다. 삽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을 뜻합니다. ‘삽’은 한자 ‘霎’에서 온 말로 보는 설명도 있어 엄밀히 말하면 순우리말로만 분류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퀴즈를 만들 때는 이런 말이 특히 애매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순우리말처럼 느끼는 말 중에도 뿌리를 따지면 한자와 닿아 있는 말이 있다”고 말해 줍니다. 단어의 국적을 외우는 것보다, 그 말이 어떤 자리에서 쓰이는지 아는 편이 실제 독해에는 더 힘이 됩니다.
2. ‘말이나 행동이 좀스럽고 가볍다’는 뜻은?
- ① 다부지다
- ② 자잘하다
- ③ 좀스럽다
답은 ③ ‘좀스럽다’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좀’입니다. ‘좀’은 작은 벌레를 가리키기도 하고, 작고 시시한 느낌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스럽다는 크기가 작다는 뜻을 넘어, 마음 씀이나 행동이 너그럽지 못하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그냥 “좀스럽다를 외워라”보다, ‘좀’이라는 작은 감각이 사람의 태도 평가로 옮겨 갔다고 설명하면 훨씬 오래 남습니다.
3. ‘아무렇게나 되는대로’라는 뜻에 가까운 말은?
- ① 마구잡이
- ② 가지런히
- ③ 알뜰살뜰
답은 ① ‘마구잡이’입니다. 마구잡이는 질서나 계획 없이 함부로 하는 모양을 뜻합니다. ‘마구’라는 말 자체에 함부로, 되는대로의 느낌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잡이’가 붙으면서 어떤 방식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말처럼 굳었습니다. 그래서 ‘마구잡이 공사’, ‘마구잡이식 암기’ 같은 표현이 자연스럽습니다. 퀴즈 문항으로 내면 대부분 맞히지만, 막상 글쓰기에서는 ‘무작위’와 섞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작위는 일정한 의도가 없도록 고르는 방식에 가깝고, 마구잡이는 조심성 없이 함부로 한다는 평가가 더 들어갑니다.
순우리말은 예쁜 말 목록이 아닙니다
순우리말을 다룰 때 저는 ‘예쁜 우리말’이라는 말만 앞세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윤슬’, ‘미리내’, ‘아라’처럼 소리가 곱게 느껴지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순우리말이 곱고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고약하다’, ‘후줄근하다’, ‘어수선하다’, ‘옹졸하다’처럼 사람의 기분과 상황을 꽤 날카롭게 찌르는 말도 많습니다.
오히려 이런 말들이 문해력에는 더 중요합니다. 글을 읽다 보면 인물의 태도, 분위기, 말투를 한 단어로 잡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후줄근한 차림이었다”와 “그 사람은 수수한 차림이었다”는 전혀 다릅니다. 후줄근하다는 깔끔하지 못하고 축 처진 느낌이 있고, 수수하다는 꾸밈이 적고 소박하다는 쪽입니다. 둘 다 화려하지 않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글 속 인물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순우리말 퀴즈는 단순한 맞히기 놀이에서 그치면 아깝습니다. 틀린 답을 고른 이유를 말해 보면 더 좋습니다. “왜 이 말이라고 생각했는지”를 설명하는 순간, 머릿속에 있던 어렴풋한 뜻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국어 수업에서 가장 좋은 오답은 틀린 표시 하나로 끝나는 답이 아니라, 다른 말과의 차이를 꺼내 주는 답입니다.
가족이나 교실에서 써 볼 만한 퀴즈 방식
순우리말 퀴즈를 만들 때는 너무 낯선 말만 고르면 금방 지칩니다. 10문제를 낸다면 6문제는 들어 본 말, 3문제는 헷갈리는 말, 1문제만 낯선 말로 구성하는 편이 좋습니다. 전부 어려우면 어휘 공부가 아니라 추측 게임이 됩니다.
예를 들어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에게는 ‘가뿐하다, 거뜬하다, 산뜻하다’처럼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을 비교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이나 성인에게는 ‘옹골지다, 다부지다, 야무지다’를 놓고 인물 묘사에 어울리는 말을 고르게 하면 좋습니다. 셋 다 단단하고 빈틈없는 느낌이 있지만, 옹골지다는 속이 꽉 찬 느낌, 다부지다는 체격이나 태도가 단단한 느낌, 야무지다는 일 처리나 말씨가 빈틈없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문제를 낼 때 보기 하나는 꼭 그럴듯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이 움직입니다. ‘가랑비’의 반대 보기로 전혀 상관없는 ‘된장’ 같은 말을 넣으면 웃기기는 해도 어휘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처럼 가까운 말을 붙여 놓아야 차이를 보게 됩니다. 국어 공부는 먼 단어를 많이 아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단어를 정확히 가르는 일이 더 자주 실력을 만듭니다.
순우리말 퀴즈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꼭 묻습니다. “선생님, 이거 요즘에도 써요?” 좋은 질문입니다. 안 쓰는 말을 억지로 살려 쓰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낯선 우리말을 하나 알게 되면, 옛글이나 문학 작품에서 지나치던 문장이 갑자기 열릴 때가 있습니다. 말 하나가 문장 하나를 살리고, 문장 하나가 글 전체의 분위기를 바꿉니다. 저는 그 순간 때문에 아직도 어휘 퀴즈를 냅니다. 맞힌 개수보다, 틀린 뒤에 남는 말맛이 더 오래 가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