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서와 로써, 발음은 비슷한데 왜 자꾸 헷갈릴까요?

교실에서 가장 자주 멈칫하는 조사입니다
얼마 전 학생 글을 보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반장으로써 책임감을 느꼈다.” 문장 전체는 괜찮았는데, 딱 한 글자에서 걸렸습니다. 여기서는 ‘반장으로서’가 맞습니다. 그런데 학생에게 “이건 자격이니까 로서야”라고만 말하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다음 글쓰기에서 또 흔들립니다.
사실 ‘로서’와 ‘로써’는 발음만 들으면 더 헷갈립니다. 실제 말에서는 둘 다 [로서]처럼 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써’의 된소리가 또렷하게 살아나지 않거나, 문장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면 구별이 흐려집니다. 그래서 이 둘은 귀로 외우면 오래 못 갑니다. 뜻의 자리를 봐야 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과 한글 맞춤법 설명에서도 이 둘은 기능이 다른 조사로 다룹니다. ‘로서’는 자격, 지위, 신분을 나타내고, ‘로써’는 수단, 도구, 재료, 방법, 기준이 되는 때를 나타냅니다. 말하자면 하나는 “내가 어떤 사람의 자리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가지고, 무엇으로”입니다.
‘로서’는 어떤 자리와 자격을 말합니다
‘로서’를 판단할 때는 앞말이 사람의 신분이나 역할인지 먼저 보면 좋습니다. 교사로서, 부모로서, 시민으로서, 친구로서, 대표로서 같은 표현이 그렇습니다. 모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 교사로서 학생의 질문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 부모로서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 시민으로서 투표에 참여했다.
- 작가로서 자신의 문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로써’를 넣어 보면 이상해집니다. “교사로써 질문을 넘길 수 없다”라고 쓰면, 마치 ‘교사’라는 도구를 이용한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물론 실제 대화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글에서는 의미가 어긋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쓰는 방법은 “입장상”을 넣어 보는 것입니다. ‘교사 입장상’, ‘부모 입장상’, ‘시민 입장상’이 자연스러우면 대개 ‘로서’입니다. 조금 투박한 말이지만 판별용으로는 꽤 잘 맞습니다.
‘로써’는 도구와 방법을 말합니다
반대로 ‘로써’는 무엇을 써서 어떤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말 그대로 ‘써서’와 가깝습니다. 칼로써 자르다, 말로써 설득하다, 글로써 마음을 전하다, 노력으로써 한계를 넘다 같은 표현입니다.
- 말로써 상처를 주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 실천으로써 약속을 증명했다.
- 대화로써 오해를 풀었다.
여기서는 “무엇을 가지고?”라고 물어 보면 됩니다. 무엇으로 설득했나. 말로써 설득했습니다. 무엇으로 마음을 전했나. 글로써 전했습니다. 이렇게 수단이나 방법이 보이면 ‘로써’가 제자리입니다.
다만 요즘 글에서는 ‘로써’ 대신 ‘로’만 써도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 설득했다”, “글로 전했다”가 훨씬 간결하지요. 그래서 ‘로써’는 문어적이고 조금 단정한 느낌을 줍니다. 격식 있는 글, 설명문, 논설문에서는 살아 있지만 일상문에서는 과하면 딱딱해 보일 수 있습니다.
발음이 비슷해서 맞춤법이 더 흔들립니다
‘로서’와 ‘로써’의 발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표기상으로는 ‘서’와 ‘써’가 다르지만 실제 발화에서는 구별이 선명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조사처럼 짧고 약하게 붙는 말은 문장 속에서 힘을 잃습니다. 그래서 “대표로서 말했다”와 “말로써 증명했다”를 빠르게 읽으면 둘 다 비슷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맞춤법은 발음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우리말 표기는 소리뿐 아니라 뜻과 형태를 함께 붙잡습니다. ‘로서’와 ‘로써’를 나누어 적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같은 소리처럼 들려도 문장 안에서 맡은 일이 다르면 표기가 달라집니다.
학생들이 특히 자주 틀리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학생으로써 최선을 다했다. →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 친구로써 조언을 했다. → 친구로서 조언을 했다.
- 대화로서 문제를 풀었다. → 대화로써 문제를 풀었다.
- 노력으로서 성과를 냈다. → 노력으로써 성과를 냈다.
앞의 두 문장은 사람의 자격입니다. 학생이라는 자리, 친구라는 입장이지요. 뒤의 두 문장은 수단입니다. 대화라는 방법, 노력이라는 수단으로 문제를 풀고 성과를 낸 것입니다.
‘로서’와 ‘로써’를 가르는 간단한 기준
외워야 할 규칙을 너무 길게 만들면 다시 잊습니다. 저는 세 가지 질문만 남기라고 말합니다. 첫째, 앞말이 사람의 자격이나 역할인가. 그렇다면 ‘로서’입니다. 둘째, 앞말이 도구나 방법인가. 그렇다면 ‘로써’입니다. 셋째, ‘무엇을 가지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나. 그렇다면 ‘로써’ 쪽에 가깝습니다.
- 자격·신분·입장: 교사로서, 대표로서, 국민으로서
- 수단·도구·방법: 말로써, 글로써, 행동으로써
- 시간의 기준: 올해로써 10년이 되었다
여기서 하나 더 챙길 표현이 있습니다. ‘올해로써 10년이 되었다’처럼 기준이 되는 시간을 나타낼 때도 ‘로써’를 씁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해서”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는 도구와 조금 다르지만, 역시 어떤 기준점을 세운다는 점에서 ‘로서’의 자격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가끔 “사람 뒤에는 무조건 로서, 사물 뒤에는 무조건 로써”라고 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편해 보이지만 위험합니다. “그 사건은 역사적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처럼 사물이나 사건 뒤에도 ‘로서’가 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례라는 자격’입니다. 반대로 “사람의 말로써 분위기가 바뀌었다”처럼 사람과 관련된 말이어도 수단이면 ‘로써’입니다.
글에서는 뜻의 방향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맞춤법 공부를 오래 하다 보면, 단어 하나만 떼어 놓고 맞히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서’와 ‘로써’도 그렇습니다. 앞말만 보아서는 부족하고, 뒤에 이어지는 서술어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대표로서 말했다”와 “말로써 대표했다”는 전혀 다른 문장입니다.
그래서 글을 고칠 때는 먼저 문장의 그림을 그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 무엇을 사용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답이 나오면 표기는 대체로 따라옵니다. 발음은 비슷해도 의미의 방향은 꽤 또렷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로서’는 사람이 서 있는 자리, ‘로써’는 무엇을 써서 하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주 완벽한 학술 설명은 아니지만, 처음 감을 잡기에는 좋습니다. 맞춤법은 종종 이렇게 말의 속뜻을 붙잡을 때 오래 남습니다. 틀린 표기를 빨간펜으로 지우는 것보다, 그 말이 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함께 보는 일이 더 낫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