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법 제 13항은 왜 꽃을 꼬츨로 읽을까요?

수업 시간에 ‘꽃을’이라고 칠판에 쓰면 학생들은 대개 [꼬츨]이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꽃’만 읽어 보라고 하면 [꼳]이라고 하죠. 같은 ‘꽃’인데 받침소리가 달라졌으니, 뒤에 모음이 오면 아무 받침이나 마음대로 바뀌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설명해 주는 규정이 표준 발음법 제13항입니다.
‘꽃’의 받침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말은 음절 끝에서 발음할 수 있는 자음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꽃’을 혼자 말할 때 받침 ㅊ은 [ㄷ]으로 소리 납니다. 하지만 ‘꽃을’에서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을’의 첫소리는 자음이 없는 자리입니다. 꽃의 받침 ㅊ이 그 자리로 옮겨 가면 본래 소리인 [ㅊ]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꼬츨]입니다. 먼저 [꼳]으로 바꾼 다음 그 [ㄷ]을 옮겨 [꼬들]로 읽는 게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 제13항은 홑받침이나 쌍받침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어미·접미사와 결합할 때, 받침을 제 음가대로 뒤 음절 첫소리로 옮겨 발음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제 음가대로’가 중요합니다. 받침 자리에 있을 때의 제한된 소리가 아니라, 그 자음이 원래 가진 소리로 읽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받침이 다음 음절로 이어지는 현상을 흔히 ‘연음’이라고 부릅니다.
옷이 [오시]인데 꽃을 [꼬츨]인 까닭
두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받침의 움직임이 눈에 보입니다. ‘옷’은 혼자 읽으면 [옫]이지만, 조사 ‘이’가 붙은 ‘옷이’는 ㅅ이 뒤로 넘어가 [오시]가 됩니다. ‘꽃’도 혼자서는 [꼳]이지만 ‘을’이 붙으면 ㅊ이 넘어가 [꼬츨]이 됩니다. 글자에 적힌 받침을 확인한 뒤, 뒤따르는 말이 무엇인지 보는 순서가 편합니다.
- 깎아 → [까까]: 쌍받침 ㄲ이 어미 ‘아’ 앞으로 옮겨 갑니다.
- 낮이 → [나지]: ㅈ이 조사 ‘이’ 앞에서 제 소리로 납니다.
- 밭에 → [바테]: ㅌ이 조사 ‘에’ 앞으로 옮겨 갑니다.
- 앞으로 → [아프로]: ㅍ이 조사 ‘으로’ 앞에서 살아납니다.
- 덮이다 → [더피다]: ㅍ이 접미사 ‘이’ 앞으로 옮겨 갑니다.
특히 ‘밭에’를 [바데]로 읽기 쉬운데, 그 발음은 ‘밭’을 혼자 읽을 때의 [받]을 그대로 이어 붙인 셈입니다. 제13항이 가리키는 것은 받침 글자 ㅌ의 소리이므로 [바테]가 됩니다. 발음과 표기도 구별해야 합니다. [꼬츨]로 들려도 ‘꼬츨’이라고 적지 않고 ‘꽃을’이라고 적습니다. ‘꽃’이라는 말의 형태를 글에서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뒤에 모음만 오면 언제나 같은 규칙일까요?
제13항에는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뒤에 오는 것이 조사·어미·접미사여야 합니다. ‘꽃을’의 ‘을’은 조사이고, ‘깎아’의 ‘아’는 어미입니다. 이들은 앞말에 붙어 문법적인 일을 합니다. 반면 모음으로 시작해도 그 자체로 뜻을 가진 말이 뒤에 오면 발음 과정을 달리 따져야 합니다. 가령 ‘밭 아래’는 ‘아래’가 별개의 뜻을 가진 말이라 [바다래]로 발음합니다. ‘밭에’의 [바테]를 보고 ‘밭 아래’까지 [바타래]로 읽으면 두 경우의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겹받침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13항에서 말하는 쌍받침은 ㄲ, ㅆ처럼 같은 자음이 겹친 받침입니다. ㄹㄱ, ㅂㅅ처럼 서로 다른 자음 둘로 이루어진 겹받침은 제14항에서 다룹니다. ‘흙이’가 [흘기]인 이유는 ㄹ을 앞 음절에 남기고 ㄱ을 뒤 음절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쌍받침 ‘깎아’가 [까까]인 것과는 설명할 때 출발점이 다릅니다.
‘밭이’는 왜 [바티]가 아닐까요?
학생들이 ‘밭에’ [바테]를 이해하고 나면 곧 ‘밭이’도 [바티]인지 묻습니다. 실제 표준 발음은 [바치]입니다. 받침 ㅌ이 조사 ‘이’의 모음 ㅣ를 만나 [ㅊ]으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표준 발음법 제17항에서 따로 다룹니다. ‘굳이’가 [구지]가 되는 것도 같은 부류입니다. 제13항만 외워서 모든 낱말에 적용하면 여기에서 막힙니다.
또 받침 ㅇ은 초성 자리로 옮겨 발음하지 않습니다. ‘강이’를 [가이]처럼 읽지 않고 [강이]로 읽는 까닭입니다. ㅎ 받침이 들어간 말에도 별도의 발음 규칙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규칙의 이름 하나보다 앞말의 받침, 뒤에 붙은 말의 성격, 이어지는 모음이 무엇인지 차례로 살피는 편이 정확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꽃을’과 ‘밭에’를 소리 내어 읽은 뒤 받침 글자를 다시 보게 합니다. [꼬츨]과 [바테]에서 들리는 소리가 표기 속 ㅊ과 ㅌ에 이미 들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 발음 규정이 외울 문장에서 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바뀝니다. 그때부터는 처음 보는 낱말 앞에서도 왜 그렇게 읽는지 스스로 짚어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