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 활용 암기는 왜 뜻부터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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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 활용 암기는 왜 뜻부터 봐야 할까요?

수업 시간에 ‘걷다’를 ‘걸어’로 바꾸던 학생이 ‘빨래를 걸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빨래를 걷는다는 말이었지요. 글자만 보고 ‘ㄷ은 ㄹ로 바뀐다’고 외우면 생기는 실수입니다. 걸음을 걷는 것과 빨래를 걷는 것은 뜻이 다르고, 활용하는 모습도 다릅니다.

불규칙은 아무렇게나 바뀐다는 뜻이 아닙니다

동사와 형용사에서 어미가 붙을 때 중심이 되는 부분을 어간이라고 합니다. ‘먹다’의 ‘먹-’은 ‘먹어, 먹으니’에서도 그대로입니다. 반면 ‘듣다’는 ‘들어, 들으니’가 되어 어간 끝 ‘ㄷ’이 ‘ㄹ’로 바뀝니다. 국립국어원의 한글 맞춤법 제18항은 이렇게 원래 형태에서 벗어나 바뀌는 경우, 바뀐 대로 적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받침이 같으면 늘 같은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듣다’는 ‘들어’이지만 ‘믿다’는 ‘믿어’입니다. 불규칙 활용 암기에서 먼저 볼 것은 받침의 이름보다 어떤 단어인지, 뒤에 어떤 어미가 붙는지입니다. 기본형 하나에 ‘-어’와 ‘-으니’를 붙여 보면 변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걷다’와 ‘묻다’는 뜻을 함께 기억하세요

ㄷ 불규칙의 좋은 예가 ‘걷다’입니다. 길을 걷는다면 ‘길을 걸어, 길을 걸으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걷어 놓은 빨래를 말할 때는 ‘빨래를 걷어, 빨래를 걷으니’입니다. 소리와 글자가 같은 기본형이라도 뜻에 따라 갈라집니다. ‘걷다→걸어’만 적어 둔 암기장은 이 차이를 담지 못합니다.

‘묻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부를 묻는다면 ‘안부를 물어’가 되고, 씨앗을 땅에 묻는다면 ‘씨앗을 묻어’가 됩니다. ‘ㄷ 받침 뒤에 모음이 오면 ㄹ’이라는 식으로 외웠다가 ‘씨앗을 물어’라고 쓰면 뜻까지 달라져 버리지요. ‘닫다→닫아’, ‘믿다→믿어’처럼 ㄷ을 그대로 두는 말도 함께 놓고 읽어야 합니다.

ㅅ 받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집을 ‘짓다’는 ‘지어, 지으니’가 되지만, 웃음을 뜻하는 ‘웃다’는 ‘웃어, 웃으니’가 됩니다. 병이 ‘낫다’는 ‘나아’이고, 옷을 ‘벗다’는 ‘벗어’입니다. ‘나아’를 ‘낳아’와 헷갈릴 때에는 기본형을 돌아보면 좋습니다. 병이 낫는 것인지, 아이를 낳는 것인지 확인하면 표기도 따라옵니다.

‘도와’와 ‘가까워’가 다른 까닭

ㅂ 불규칙에서는 ‘가깝다→가까워’, ‘춥다→추워’, ‘굽다→구워’처럼 받침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바뀝니다. ‘가까우니, 추우니, 구우니’를 나란히 읽으면 ‘우’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가깝아’나 ‘춥어’라고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돕다’는 ‘도와’, ‘곱다’는 ‘고와’입니다. 한글 맞춤법 제18항에는 이 두 말처럼 짧은 어간에 ‘-아’가 붙어 ‘와’로 소리 나는 경우를 따로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돕다의 ㅂ은 언제나 오가 된다’고 다시 외우면 또 막힙니다. ‘도와’라고 하지만 ‘도우니’, ‘도울 사람’이라고 하니까요. ‘곱다’ 역시 ‘고와’와 ‘고우니’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반대로 받침 ㅂ을 그대로 쓰는 말도 있습니다. ‘잡다→잡아’, ‘입다→입어’가 그렇습니다. 같은 받침끼리 묶되, 바뀌는 말과 그대로인 말을 한 쌍으로 비교하면 무작정 단어 목록을 외우는 것보다 오래 남습니다.

‘모르다’와 ‘이르다’는 같은 길로 가지 않습니다

‘모르다’는 ‘몰라’, ‘부르다’는 ‘불러’가 됩니다. ‘르’ 앞 음절에 ㄹ이 나타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르’로 끝난다고 모두 ‘ㄹㄹ’ 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지에 ‘이르다’는 ‘이르러’이고, 누군가의 잘못을 알린다는 뜻의 ‘이르다’는 ‘일러’입니다. 이때도 어느 뜻으로 썼는지가 먼저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기본형 옆에 활용형 하나만 쓰지 말고 짧은 문장을 붙이게 합니다. ‘길을 걸어’, ‘빨래를 걷어’, ‘안부를 물어’, ‘씨앗을 묻어’처럼요. 문장 속 장면이 떠오르면 형태가 바뀌는 자리도 보입니다. 불규칙이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말의 모습은 꽤 익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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