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압존법은 왜 쓰지 않게 됐을까요?

수업에서 높임말을 설명하다 보면 군대를 다녀온 학생이 꼭 한 번은 묻습니다. “이 병장에게 박 상병 이야기를 할 때는 ‘박 상병님’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누가 누구보다 선임인지 따져야 한다고 배운 기억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 서열을 계산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군대 압존법이 무엇이었고 왜 바뀌었는지 알면, 높임말도 한결 편하게 들립니다.
압존법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요?
압존법의 ‘압’은 누른다는 뜻이고, ‘존’은 높인다는 뜻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윗사람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아랫사람인 제삼자를, 듣는 사람 앞에서 높이지 않는 방식이지요. 예전에는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예를 들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평소에 낮춰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듣는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먼저 헤아린 표현입니다.
이런 말버릇은 가족이나 스승과 제자처럼 관계가 오래 이어지는 자리에서 생겨났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사람인지 서로 알고 있으니 말하는 사람도 높임의 기준을 잡을 수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지금 가정에서 “아버지께서 오셨어요”라고 하면 반드시 틀린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높임말은 문장 하나만 떼어 판정하기보다 관계와 상황을 함께 봐야 합니다.
군대에서는 이 방식이 계급을 표시하는 말투로 굳었습니다. 이병이 병장에게 상병의 행방을 전할 때, 상병도 자신보다 윗사람인데 병장보다 낮다는 이유로 “박 상병이 휴가 갔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듣는 사람을 높이려고 제삼자의 높임을 뺀 것입니다. 원리를 모르면 “왜 선임에게 갑자기 반말처럼 말하지?” 하고 헷갈릴 만합니다.
군대에서는 왜 어려움이 커졌을까요?
가족 관계와 달리 부대에는 여러 계급과 직책이 한꺼번에 있습니다. 같은 계급 안에서도 입대 순서가 다르지요. 신병이 누군가의 말을 전달할 때마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이야기 속 인물의 서열을 비교해야 한다면 전달할 내용보다 호칭부터 걱정하게 됩니다. “누가 알려 줬어?”라는 간단한 물음에도 대답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더 곤란한 장면도 있습니다. 사단장이 이병에게 연대장의 말을 물었다고 해봅시다. 사단장보다 연대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이병이 “연대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라고 하면, 옆에서 듣는 사람에게는 이병이 연대장을 낮춰 부르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만든 군 장병 언어 교육 자료도 이런 사례를 들어, 압존법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오히려 언어 예절에 어긋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압존법은 맞춤법 조항처럼 모든 문장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규칙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압존법의 쓰임이 어문 규범에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밝힙니다. 또 2011년에 펴낸 『표준 언어 예절』에서는 가정이나 사제 관계에서 이어진 방식을 직장과 같은 사회적 관계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전통적인 언어 예절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군대 역시 계급이 뚜렷한 조직이지만, 가족 관계는 아닙니다.
2016년에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국방부는 2016년 3월 1일부터 적용하도록 한 ‘압존법 및 다나까 말투 개선 지침’에서 군대의 압존법 강요를 없애도록 했습니다. 신병에게 선임들의 서열을 외워 말투를 바꾸게 하는 관행이 부담을 주고, 일반적인 언어 예절에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군에서 강요하던 말하기 방식입니다. 우리말의 높임 표현 자체가 사라졌거나 표준어가 바뀐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병이 중대장에게 소대장의 행방을 말한다면 “소대장은 휴가 갔습니다”라고 낮춰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소대장님은 휴가 갔습니다”라고 할 수 있고, “소대장님은 휴가 가셨습니다”라고 해도 됩니다. 국방부 지침을 소개한 국립국어원 자료에는 두 표현이 모두 제시돼 있습니다. “김 일병님이 알려주었습니다”와 “김 일병님이 알려주셨습니다”도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님’과 ‘-시-’를 나눠 보면 더 쉽습니다. ‘소대장님’의 ‘님’은 사람을 부르거나 가리킬 때 붙이는 높임이고, ‘가셨습니다’의 ‘-시-’는 문장 속 주어를 높이는 요소입니다. 반면 ‘갔습니다’의 ‘-습니다’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 격식을 차리는 말끝입니다. 소대장님을 말하면서 “휴가 갔습니다”라고 했다고 해서 중대장에게 반말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를 높이는 표현인지 자리를 나눠 읽어야 혼동이 줄어듭니다.
실제로 말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요?
먼저 내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보고 말끝을 고릅니다. 공식적인 보고라면 “중대장님, 소대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처럼 분명하고 공손하게 전하면 됩니다. 동료의 행방을 전할 때도 듣는 사람보다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그 동료를 일부러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부대에서 쓰는 호칭과 상황에 맞는 말끝을 고르면 충분합니다.
‘다나까’ 말투와 압존법도 구별할 만합니다. ‘다나까’는 문장을 어떤 말끝으로 맺느냐의 문제이고, 압존법은 대화에 등장한 제삼자를 높이느냐의 문제입니다. 2016년 지침은 일상 대화에서 ‘-요’로 끝나는 말도 쓸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그렇다고 보고할 때의 격식까지 모두 없앤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사람과 이야기해도 보고 자리와 생활관 대화에서는 말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군대 압존법을 두고 “옛날에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만 외우면 또 헷갈립니다. 가족 사이에서 쓰이던 방식을 군대가 서열 규칙처럼 넓혀 썼고, 그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에게 지나친 부담이 생겼다는 흐름을 기억하는 편이 오래갑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은 서열표를 빠르게 계산할 때보다, 전할 내용을 또렷하고 예의 있게 말할 때 더 잘 살아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