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다 겉잡다 차이, 왜 소리는 같은데 뜻은 다를까요?

얼마 전 학생이 쓴 글에서 “불길이 겉잡을 수 없이 번졌다”는 문장을 봤습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어색하지 않습니다. ‘걷잡다’와 ‘겉잡다’가 똑같이 [걷짭따]로 들리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불길을 말할 때는 ‘걷잡다’가 맞습니다. 두 말은 발음만 같을 뿐, 하는 일이 다릅니다.
걷잡다는 번지는 흐름을 붙드는 말입니다
‘걷잡다’는 한쪽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를 붙들어 잡거나, 마음을 진정하고 억제한다는 뜻입니다. 거두어 붙잡는 모습을 떠올리면 뜻이 가까워집니다. 거센 바람을 타고 불길이 퍼질 때, 이미 커진 소문이 더 멀리 번질 때, 화가 치밀어 스스로를 진정하기 어려울 때 쓰는 말이지요.
이 말은 흔히 ‘수 없다’, ‘없이’와 어울립니다. “불길을 걷잡을 수 없었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처럼요. 여기서 ‘잡다’는 대강 가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커져 가는 움직임이나 감정을 붙들어 멈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수업에서는 칠판에 작은 불씨 하나를 그린 뒤, 옆으로 번지는 화살표를 몇 개 더 그려 보곤 합니다. 처음에는 손을 써서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그 흐름을 붙들기 어려워집니다. 그 장면이 바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눈물처럼 손으로 붙들 수 없는 것에도 이 말을 쓰는 까닭은, 감정의 흐름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겉잡다는 겉을 보고 어림하는 말입니다
‘겉잡다’에는 ‘겉’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양이나 정도를 대강 헤아린다는 뜻이지요. 정확히 세거나 재기 전에 눈대중으로 가늠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됩니다. “겉잡아도 손님이 백 명은 되겠다”라고 말할 때는 손님을 실제로 세어 본 것이 아닙니다.
가령 책상 위에 쌓인 원고를 보고 “겉잡아도 수정에 사흘은 걸리겠네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견적서를 아직 받지 않았지만 공사 규모를 보고 “겉잡아도 비용이 천만 원은 들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시간, 인원, 비용처럼 수나 양을 어림할 때 자주 만납니다. 물론 ‘겉잡다’는 어디까지나 대강 헤아리는 말이므로, 정확한 수치를 확인한 뒤에는 “세어 보니 백두 명이었다”처럼 표현하는 편이 알맞습니다.
‘겉잡아도’의 ‘-아도’는 어림한 값보다 실제 값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더할 때가 많습니다. “겉잡아도 두 시간은 걸린다”는 말은 시간을 재 보지 않았어도 최소한 그 정도는 예상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두 시간을 걷잡았다”라고 하면 시간을 어떻게 붙들었다는 것인지 뜻이 통하지 않습니다.
같이 들려도 글자는 왜 다를까요?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한글 맞춤법 제57항에는 ‘걷잡다’와 ‘겉잡다’를 각각 구별하여 적도록 나옵니다. 예도 나란히 제시합니다. 하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 다른 하나는 “겉잡아서 이틀 걸릴 일”입니다. 소리만 따라 쓰면 둘을 가를 수 없으니, 문장에서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보고 적어야 합니다.
겉을 보고 짐작한다면 ‘겉잡다’, 번지는 형세나 솟는 감정을 붙들어 억제한다면 ‘걷잡다’입니다. 국립국어원의 뜻풀이도 이 구별을 따릅니다. ‘걷잡다’를 단순히 ‘걷다’의 활용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걷잡을’은 ‘걷잡다’라는 한 단어가 활용한 모습입니다. ‘겉잡아’ 역시 ‘겉잡다’의 활용형이지요.
발음이 같다는 사실은 오히려 좋은 단서가 됩니다. 말할 때는 구별되지 않으므로, 글을 쓸 때 잠깐 뜻을 확인하면 됩니다. ‘어림했는가, 억제했는가’를 문장에 대입해 보는 방식입니다. ‘일정을 겉잡다’는 일정을 대강 가늠한다는 뜻이고, ‘사태를 걷잡다’는 커져 가는 사태를 붙든다는 뜻입니다.
문장 속에서 뜻을 바꿔 넣어 보세요
“비가 거세져 강물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에서는 불어나는 흐름을 막기 어렵습니다. “겉잡아도 비가 두 시간은 더 오겠다”에서는 하늘 상태를 보고 시간을 어림합니다. 같은 비 이야기라도 앞 문장은 통제, 뒤 문장은 추측입니다.
“관객이 겉잡아 천 명쯤 된다”와 “관객의 환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도 함께 읽어 보면 좋습니다. 첫 문장은 관객 수를 눈으로 가늠하고, 둘째 문장은 환호가 커지는 흐름을 붙들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숫자가 보이면 ‘겉잡다’를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숫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에서는 규모라는 말이 나와도 커지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학생의 문장도 이렇게 고치면 자연스럽습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그 옆에 “피해액은 겉잡아도 수억 원에 이르겠다”라고 적으면 두 말의 자리가 선명해집니다. 하나는 번지는 불을 붙드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다 세지 못한 피해를 어림하는 일입니다. 글자를 외우기보다 문장 안에서 무엇을 잡으려는지 떠올릴 때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