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어휘 추천은 어떤 말부터 시작할까요?

얼마 전 학생의 글에서 “중요한 점을 무시했다”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내용을 들어 보니 일부러 외면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자료를 읽고도 그 점이 중요한지 알아채지 못했다는 말이었지요. 그럴 때는 ‘간과했다’가 더 정확합니다. 단어 하나를 바꾸자 행동의 성격까지 또렷해졌습니다.
고급 어휘 추천을 부탁받으면 저는 어려워 보이는 말부터 줄줄이 건네지 않습니다. 평소 쓰는 말로는 미묘한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단어를 고릅니다. 한자어라면 글자에 담긴 그림을 함께 익히는 편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아래 여섯 낱말도 그런 기준으로 골랐습니다.
놓친 것은 간과, 부딪치는 것은 상충
‘간과하다’의 한자는 볼 간(看), 지날 과(過)입니다. 보고 지나갔다는 그림이지요. 국립국어원 한국어기초사전은 큰 관심 없이 대강 보고 그냥 넘기는 뜻으로 풉니다. “발표 자료에서 비용 문제를 간과했다”라고 하면 비용 문제를 충분히 따지지 않은 채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반면 “비용 문제를 무시했다”에는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느낌이 실릴 수 있습니다.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에 따라 단어를 달리 골라야 합니다.
수업에서 “자료를 간과했다”라고 쓴 학생에게 저는 어느 자료를 어떻게 놓쳤는지 되묻곤 합니다. 숫자를 아예 못 봤다면 ‘놓쳤다’가 자연스럽고, 숫자를 보고도 중요성을 따지지 않았다면 ‘간과했다’가 알맞습니다. 어려운 말을 썼다는 사실보다 상황을 정확히 짚었다는 사실이 글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상충하다’는 서로 상(相), 부딪칠 충(衝)을 씁니다. 두 요구가 각각 그럴듯하지만 함께 만족시키기 어려울 때 떠올리면 좋습니다. “행사 시간을 늘리자는 의견과 운영비를 줄이자는 방침이 상충한다”처럼 말입니다. 단순히 의견이 다르다는 것보다 한쪽을 따르면 다른 쪽에 걸림돌이 생긴다는 관계가 선명합니다. 다만 사람 둘이 취향을 달리 말한 정도라면 “의견이 다르다”가 훨씬 편합니다.
말 속의 뜻은 함의, 되씹는 생각은 반추
‘함의’는 머금을 함(含), 뜻 의(意)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문장 안에 다른 뜻이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이 정책에는 비용을 시민에게 더 맡기겠다는 함의가 있다”라고 쓰려면, 실제 문구와 앞뒤 맥락이 그런 해석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은 내용을 마음대로 덧붙이는 것은 함의를 읽는 일이 아닙니다. 특히 기사 제목이나 광고 문구를 읽을 때, 적힌 사실과 그 말이 암시하는 바를 구분하면 글을 더 꼼꼼히 읽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용 시간을 조정합니다”라는 안내만으로 이용 시간이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새 시간표가 함께 제시되었을 때 비로소 변화의 방향을 말할 수 있지요. 학생들에게 ‘함의’를 가르칠 때도 먼저 문장에 적힌 내용을 밑줄 긋게 합니다. 그다음에 짐작한 뜻의 근거를 찾게 하면, 느낌만으로 읽던 습관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반추’는 동물이 먹이를 다시 씹는 데서 온 말입니다. 되돌릴 반(反), 되새김질할 추(芻)라는 한자를 알면 비유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사람에게 쓰면 겪은 일이나 들은 말을 되짚어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회의에서 들은 비판을 집에 와서 반추했다”라고 하면, 그 말을 한 번 더 꺼내 의미를 살핀 모습이 보입니다. 단순히 같은 말을 여러 번 떠올려 괴로워했다면 ‘반추’라는 말이 지나치게 점잖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까지 이어 써 주면 뜻이 살아납니다.
지키는 입장은 견지, 미루는 실행은 유예
‘견지하다’는 굳을 견(堅), 가질 지(持)입니다. 어떤 견해나 입장을 굳게 지닌다는 뜻이지요. “학교는 학생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주장했다’가 그 입장을 말로 내놓는 장면이라면, ‘견지했다’는 시간이 지나도 그 입장을 지킨 데 무게가 실립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일이 언제나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 근거가 나왔는데도 무조건 버티는 상황이라면 문장에 그 맥락을 밝혀야 합니다.
‘유예하다’는 실행할 일을 뒤로 미루는 말입니다. “공사 시작을 한 달 유예했다”라고 하면 공사를 없앤 것이 아니라 시작 시점을 늦춘 것입니다. “숙제를 유예했다”보다는 “숙제 제출 기한을 일주일 유예했다”처럼 무엇을 언제까지 미루는지 적으면 오해가 줄어듭니다. 이 말에는 망설여 실행하지 못한다는 뜻도 있지만, 공지나 안내문에서는 대개 일정이나 집행을 미루는 뜻으로 만납니다. 취소와 유예를 섞어 쓰면 독자가 앞으로 할 일이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단어를 외우기보다 문장에 놓아 보기
여섯 단어를 한꺼번에 암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읽던 글에서 ‘놓쳤다’를 만나면 일부러 지나친 것인지, 중요성을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겁니다. 두 계획이 ‘다르다’고 쓰여 있으면 단지 차이가 있는지, 실제로 부딪치는지도 따져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간과와 상충을 꺼내 쓰면 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새 단어 하나를 배울 때 원래 문장과 고친 문장을 나란히 적게 합니다. “그의 말을 다시 생각했다” 옆에 “그의 말을 반추하며 내가 놓친 뜻을 찾았다”를 적는 식입니다. 바뀐 단어가 문장에 무엇을 보탰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자기 말이 됩니다. 고급 어휘는 글을 꾸미는 장식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을 조금 더 정확히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필요한 순간을 알아보는 눈이 어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