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규정 제1항은 왜 서울말을 기준으로 삼을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서울 사람이 쓰면 다 표준어예요?” 표준어 규정 제1항을 처음 읽으면 그럴 법합니다. 서울말이 기준이라는 문장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그런데 이 조항에는 서울말 앞에 놓인 조건이 있습니다. 그 말을 차례로 읽으면 표준어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제1항의 세 가지 기준
표준어 규정 제1항은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밝힙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사회적 기준, 시대적 기준, 지역적 기준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어야 하고, ‘현대’에 쓰이는 말이어야 하며, ‘서울말’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두루’가 중요합니다. 서울의 한 동네나 한 무리에서 유행하는 말이라고 곧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널리 쓰는지, 공통의 말로 받아들일 만한지를 함께 봅니다. 제1항 끝의 ‘원칙으로 한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한 문장만으로 모든 낱말의 표준어 여부가 자동으로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왜 ‘중류 사회’가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을까요?
지금의 문구가 처음부터 이 모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는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라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마련한 표준어 규정은 1988년에 고시되고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표준말’은 ‘표준어’로, ‘중류 사회’는 ‘교양 있는 사람들’로, ‘현재’는 ‘현대’로 바뀌었습니다.
‘중류 사회’라는 말은 어느 계층까지를 가리키는지 모호합니다. 그렇다고 새 문구를 소득이나 학력으로 사람을 가르는 잣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 조항은 함께 쓰는 공통어의 기준을 밝힙니다. ‘현재’ 대신 ‘현대’를 쓴 까닭도 특정한 하루의 말만 붙잡기보다 한 시대의 언어를 가리키려는 데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조항 해설은 이 문구 수정이 표준어 선정 기준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규정에 적힌 사람을 찾아 그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니라고요. 여러 지역 사람이 교과서를 읽거나 공적인 글을 주고받을 때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말의 기준을 마련한 것입니다.
서울말이 기준이면 사투리는 틀린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표준어는 여러 지역 사람이 공통으로 사용할 기준이고, 방언은 각 지역의 생활과 역사를 담은 말입니다. 경상도에서 할머니가 손주에게 쓰는 말이나 제주에서 오래 이어 온 말은 그 지역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 말이 쓸모없거나 잘못된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서울말도 모두 표준어인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누군가 즉석에서 만든 말, 일부 친구들끼리만 쓰는 말까지 제1항이 일괄해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반대로 표준어 규정의 해설은 방언이나 신조어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자리를 굳혀 가는 경우도 표준어를 가려 정할 때 고려했다고 밝힙니다. 말의 출신지만 보고 판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수업에서는 ‘사투리를 고쳐야 한다’는 표현보다 ‘상황에 맞는 말을 고른다’는 표현을 씁니다.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할 때의 말맛과 여러 지역 사람이 읽을 안내문에 필요한 공통의 기준은 쓰임이 다릅니다. 두 쓰임을 구별하는 편이 제1항을 이해하는 데에도 정확합니다.
‘짜장면’이 알려 주는 말의 변화
표준어가 실제 사용과 어떻게 만나는지는 ‘짜장면’을 보면 쉽습니다. 한동안 표준으로 인정된 표기는 ‘자장면’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짜장면’이라고 말하고 적었습니다. 2011년 국립국어원은 ‘짜장면’을 추가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자장면’과 ‘짜장면’을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예전에 배운 기억 때문에 ‘짜장면’에 빨간 줄을 긋는다면, 그 뒤에 달라진 기준을 놓친 셈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표현이 곧바로 표준어가 되지는 않습니다. 쓰임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시간이 지나도 자리 잡았는지 등을 검토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신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롭다는 이유로 밀어낼 필요는 없지만,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표준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또 하나 구별할 것은 표준어와 맞춤법입니다. 표준어 규정은 어떤 말을 공통의 기준으로 삼을지와 관련되고, 한글 맞춤법은 그 말을 글자로 어떻게 적을지와 관련됩니다. 헷갈리는 표기를 만났을 때 먼저 물어볼 것은 ‘이 말이 표준어인가’와 ‘이 말을 어떻게 적는가’ 가운데 무엇인지입니다. 질문이 분명해지면 찾아볼 기준도 분명해집니다.
제1항을 읽을 때마다 저는 ‘서울말’이라는 세 글자보다 ‘두루 쓰는’이라는 말을 오래 봅니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오가며 써야 공통의 말로 자리 잡습니다. 표준어도 그 움직임을 지켜보며 가려 정해 온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