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 원칙, 왜 원어 발음 그대로 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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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법 원칙, 왜 원어 발음 그대로 쓰지 않을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왜 coffee는 ‘커피’인데 copy는 ‘카피’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런 질문이 참 좋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을 단순히 “정해졌으니까 외워라”로 배우면 금방 흔들리지만, 왜 그런 표기가 굳었는지 생각하면 헷갈리는 말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 발음을 한글로 최대한 비슷하게 옮기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말은 ‘최대한’입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의 소리를 한글이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은 원어 발음을 무작정 따라 적는 규칙이 아니라, 한국어 안에서 읽고 쓰기 좋게 조정한 표기 기준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발음 흉내가 아니라 한국어식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이 외래어 표기를 원어 발음에 얼마나 가깝게 적느냐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출발점은 원어 발음입니다. 하지만 도착지는 한국어 표기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f와 v는 한국어에 똑같은 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f는 대체로 ‘ㅍ’으로, v는 대체로 ‘ㅂ’으로 옮깁니다. family는 ‘패밀리’, video는 ‘비디오’가 되는 식입니다.

여기서 “비디오보다 뷔디오가 더 원어에 가깝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발음만 따지면 그렇게 느낄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표기법은 개인의 귀에 들리는 소리를 매번 다르게 적지 않도록 만든 공통 약속입니다. 사람마다 들리는 대로 쓰면 같은 말이 ‘비디오’, ‘뷔디오’, ‘브이디오’처럼 흩어집니다. 표기법은 이 흩어짐을 줄이는 장치입니다.

가장 큰 원칙은 ‘한 소리는 한 글자로’입니다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정신 가운데 하나는 같은 소리는 되도록 같은 글자로 적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처음 보는 외래어도 어느 정도 예측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하는 외래어 표기법도 이 방향을 바탕으로 합니다. 외국어의 소리와 한글 자모를 일정하게 대응시켜 놓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camera는 ‘카메라’, Canada는 ‘캐나다’로 씁니다. 둘 다 첫소리가 c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글자로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원어에서 어떻게 소리 나는지가 먼저입니다. 반대로 같은 k 소리라면 k든 c든 한국어 표기에서는 ‘ㅋ’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글자가 아니라 소리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볼 때는 원어 철자보다 발음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철자에 끌려가면 ‘커피’를 ‘코피’처럼 착각하기 쉽고, ‘초콜릿’을 ‘쵸콜릿’처럼 쓰고 싶어집니다. 표준 표기는 외국어 철자의 모양보다 한국어에서 굳어진 소리의 흐름을 더 중시합니다.

받침은 왜 마음대로 쓰지 않을까요?

외래어 표기에서 의외로 많이 틀리는 부분이 받침입니다. 표기법에서는 외래어 받침으로 쓸 수 있는 자음을 제한합니다. 주로 ㄱ, ㄴ, ㄹ, ㅁ, ㅂ, ㅅ, ㅇ 정도가 쓰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끝소리를 들리는 대로 세밀하게 적으려 해도 한글 받침에서는 일정한 틀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cake’는 ‘케이크’라고 씁니다. 끝의 k 소리를 받침 ‘ㄱ’으로만 처리하지 않고 ‘크’로 풀어 적습니다. ‘bus’는 ‘버스’이고, ‘desk’는 ‘데스크’입니다. 한국어에서 낯선 자음군을 그대로 받침에 얹으면 읽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모음을 붙여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이 발음의 정밀 복사보다 한국어 사용자의 읽기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대목입니다.

이 원칙을 알면 ‘인터넷’과 ‘인터네트’ 같은 표기 감각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외래어가 한국어에 들어오면 끝소리 처리, 강세, 모음 길이 같은 요소가 한국어식으로 바뀝니다. 표기법은 그 변화를 아무렇게나 두지 않고 일정한 기준으로 묶어 줍니다.

된소리를 적지 않는 까닭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주 묻는 것 중 하나가 된소리입니다. 영어의 p, t, k가 세게 들릴 때가 많다 보니 ‘까페’, ‘쎈터’, ‘빠리’처럼 적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파열음을 된소리로 적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cafe는 ‘카페’, center는 ‘센터’, Paris는 ‘파리’로 적습니다.

물론 실제 말소리에서는 된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특히 광고나 간판에서는 더 강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된소리 표기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표준 표기는 소리의 느낌을 과장해서 적지 않습니다. ‘카페’와 ‘까페’가 함께 돌아다니면 검색도, 교육도, 사전 등재도 복잡해집니다. 표기법은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조금 담백한 쪽을 택합니다.

  • cafe: 카페
  • center: 센터
  • cake: 케이크
  • coffee: 커피
  • chocolate: 초콜릿

이 예들을 보면 외래어 표기법이 아주 기계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감으로 쓰는 체계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정한 원칙 안에서 한국어 발음 습관과 이미 굳어진 표기를 함께 고려합니다.

이미 굳어진 말은 관용도 봅니다

외래어 표기법에는 또 하나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이미 널리 굳어진 표기는 관용을 인정한다는 점입니다. 언어는 칠판 위에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문, 방송, 책, 교실, 가게 간판, 사람들의 입말 속에서 오래 쓰인 형태가 있습니다. 그런 말까지 한순간에 전부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를 판단할 때는 “원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가”만 묻지 말고 “한국어 안에서 어떤 형태로 안정되었는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표준어와 맞춤법이 늘 현실 언어와 규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외래어 표기법도 원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균형을 잡습니다.

신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들어온 말은 처음에 표기가 여럿으로 흔들립니다. 어떤 말은 영어 철자를 그대로 섞어 쓰고, 어떤 말은 한글 표기가 먼저 퍼집니다. 이때 무조건 “틀렸다”고 밀어붙이면 학생들은 규범을 멀리합니다. 먼저 왜 흔들리는지, 어떤 원칙으로 하나의 표기를 고르는지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헷갈릴 때는 세 가지를 차례로 보면 됩니다

외래어 표기가 막힐 때 저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순서대로 보라고 말합니다. 첫째, 원어의 철자가 아니라 발음을 봅니다. 둘째, 그 소리가 외래어 표기법에서 어떤 한글로 대응되는지 봅니다. 셋째, 이미 널리 굳어진 표기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 순서만 잡아도 엉뚱한 표기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가령 ‘콘텐츠’와 ‘컨텐츠’가 헷갈릴 때도 그렇습니다. 영어 content의 발음과 복수형 contents의 발음을 따져 보면 왜 ‘콘텐츠’가 표준 표기인지 이해가 됩니다. ‘메시지’와 ‘메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연히 익숙한 쪽을 고르면 흔들리지만, 표기 기준을 따라가면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남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만을 위한 규칙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어를 함께 쓰는 사람들이 같은 글자를 보고 같은 말로 이해하게 만드는 생활 규범에 가깝습니다. 원어를 존중하되 한국어의 질서 안에서 읽히게 하는 일, 그 사이의 균형이 외래어 표기법의 꽤 단단한 원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래어를 가르칠 때도 표부터 외우게 하기보다, 먼저 “이 말이 한국어 안으로 들어오며 어떤 옷을 입었는가”를 묻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표기를 훨씬 오래 기억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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