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 개정, 왜 현실 발음과 다르게 느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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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법 개정, 왜 현실 발음과 다르게 느껴질까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가장 자주 묻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은 다 ‘쥬스’라고 하는데 왜 ‘주스’예요?” 비슷한 질문으로 ‘까페’와 ‘카페’, ‘초콜렛’과 ‘초콜릿’, ‘화이팅’과 ‘파이팅’도 자주 나옵니다. 사실 이 질문은 단순히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외래어 표기법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졌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고쳐져 왔는지를 알아야 납득이 됩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왜 생겼을까요?

외래어는 바깥에서 들어온 말입니다. 그런데 바깥말의 소리를 우리 글자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영어의 f, v, th 같은 소리는 한국어에 그대로 대응하는 자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coffee를 ‘커피’로 적을지, ‘코피’에 가깝게 적을지, 또는 새로운 기호를 만들지 선택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새 글자나 특수한 부호를 쓰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 신문, 공문서에서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쓰려면 너무 복잡한 표기는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이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원음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는 욕심보다, 한국어 문장 안에서 안정적으로 읽히는 표기를 더 중시한 셈입니다.

개정은 언제 있었나요?

현재 우리가 쓰는 외래어 표기법의 큰 틀은 1986년 1월 7일 문교부 고시 제85-11호로 마련되었습니다. 그전에는 1958년에 마련된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 계열이 오래 쓰였는데, 장모음을 ‘뉴우요오크’처럼 적는 방식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국어 맞춤법에는 없는 장음 표기를 외래어에만 적용하는 점도 어색했지요.

그 뒤 개정은 주로 “새로 많이 접하게 된 언어를 어떻게 적을 것인가”에 맞추어 진행되었습니다. 1992년에는 폴란드어, 체코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같은 동구권 언어 표기가 더해졌습니다. 1995년에는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처럼 북유럽 언어 표기가 보완되었습니다. 2004년, 2005년, 2014년을 거쳐, 2026년 8월 현재 국가법령정보센터와 국립국어원 한국어 어문 규범에서 확인되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2017년 3월 28일 시행된 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7-14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 개정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기를 그때그때 곧바로 인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언어별 표기 체계, 실제 발음, 이미 굳어진 관용, 교육과 행정의 통일성을 함께 따집니다. 그래서 체감 속도는 늘 느립니다.

왜 ‘쥬스’가 아니라 ‘주스’일까요?

학생들은 ‘쥬스’가 더 영어 juice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영어의 j 뒤에 오는 u 계열 소리를 언제나 ‘쥬’로 적는 식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에서 ‘ㅈ’ 뒤의 ‘ㅑ, ㅕ, ㅛ, ㅠ’는 실제 발음에서 ‘자, 저, 조, 주’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스’, ‘주니어’, ‘주얼리’처럼 적는 표기가 기준이 됩니다.

‘까페’가 아니라 ‘카페’인 이유도 비슷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파열음 표기에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cafe의 첫소리가 우리 귀에 세게 들릴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전부 ‘ㄲ, ㄸ, ㅃ’으로 옮기면 표기가 지나치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cafe는 ‘카페’, Paris는 ‘파리’, bus는 ‘버스’가 됩니다.

받침도 제한이 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받침에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 씁니다. 그래서 chocolate은 ‘초콜릿’이고, internet은 ‘인터넷’입니다. ‘초콜렛’이라고 쓰고 싶어지는 마음은 이해됩니다. 영어 철자 late의 영향도 있고, 실제 발음이 ‘렛’처럼 들린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표기법은 영어 철자를 그대로 옮기는 규칙이 아니라, 한국어 표기 체계 안에서 소리를 정해 적는 약속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많이 쓰면 바뀌나요?

바뀔 수는 있습니다. 다만 “많이 쓰니까 내일부터 표준”처럼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외래어 표기법 제1장에는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원칙이 들어 있습니다. 이 조항 때문에 규범은 현실 언어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관용을 인정하려면 그 표기가 얼마나 널리, 얼마나 오래, 어떤 문맥에서 쓰였는지를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워크숍’은 표기법상 자연스러운 표기지만, 일상에서는 ‘워크샵’도 흔합니다. ‘콘텐츠’와 ‘컨텐츠’도 오래 흔들렸습니다. 이런 말들은 블로그, 광고, 회사 문서에서 보이는 양상과 공적 문서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국어 교사 입장에서는 이 지점을 학생들에게 꼭 말해 줍니다. “네가 본 표기가 많다”와 “규범 표기로 인정된다”는 같은 말이 아니라고요.

  • 공문서나 시험 답안에서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과 표준국어대사전 표제를 따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 상표명, 작품명, 회사명은 고유한 표기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 신조어나 플랫폼 용어는 표기가 굳기 전까지 여러 형태가 함께 쓰일 수 있습니다.

개정 논란을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현실과 너무 멀다”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저도 교실에서 그 답답함을 느낍니다. 학생들은 이미 ‘월렛’, ‘쉐어’, ‘솔루션’ 같은 표기에 익숙한데, 규범 표기는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정보 기술, 게임, 금융, 콘텐츠 산업 쪽 말은 들어오는 속도가 빠릅니다. 표기법이 따라가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런데 규범은 유행어 사전이 아닙니다. 너무 빨리 움직이면 어제의 표준이 내일의 오자가 됩니다. 반대로 너무 늦게 움직이면 사람들이 규범을 낡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외래어 표기법 개정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 현실을 받아들이되, 학교와 언론과 행정이 함께 쓸 최소한의 기준도 지켜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외래어 표기를 외우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카페’는 된소리를 피하려는 원칙, ‘주스’는 한국어 자모와 발음 체계 안에서 단순화한 결과, ‘초콜릿’은 받침 제한과 용례가 만난 표기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상하게만 보이던 표기가 조금 덜 낯섭니다. 규칙은 외우면 흐려지지만, 생긴 까닭을 알면 머릿속에 제법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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