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에서 f는 왜 ㅍ으로 적을까요?

얼마 전 학생 글을 보다가 ‘화이팅’과 ‘파이팅’이 한 문단 안에 같이 나온 걸 봤습니다. 둘 다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기 쉽지요. 그런데 외래어 표기법 기준으로 보면 영어의 f는 원칙적으로 ‘ㅍ’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fighting은 ‘파이팅’이 맞습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분도 많습니다. 우리 귀에는 오래전부터 ‘화이팅’이 훨씬 친근하게 들어왔으니까요.
외래어 표기는 영어 발음을 완벽하게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어 소리 체계 안에서 가장 가까운 소리로 적는 약속입니다. 영어 f 소리는 윗니를 아랫입술에 대고 바람을 내보내며 내는 소리입니다. 한국어에는 이 소리가 독립된 자음으로 없습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은 f를 ‘ㅍ’으로 대응시켜 적도록 해 두었습니다.
f는 ‘프’가 아니라 먼저 ‘ㅍ’입니다
많이 헷갈리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f를 보면 무조건 ‘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에서 f의 기본 대응은 ‘ㅍ’입니다. 뒤에 어떤 모음이 오느냐에 따라 파, 패, 퍼, 페, 포, 푸, 피처럼 달라집니다.
- fan: 팬
- file: 파일
- film: 필름
- fashion: 패션
- fantasy: 판타지
- coffee: 커피
- sofa: 소파
보시면 f가 모두 ‘프’로 적히지는 않습니다. fan은 ‘팬’이지 ‘프앤’이 아니고, file은 ‘파일’이지 ‘프아일’이 아닙니다. 영어 철자 f를 한글 낱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발음의 흐름을 한국어 음절로 옮긴다고 생각하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럼 golf와 staff는 왜 골프, 스태프일까요?
여기서 또 하나의 오해가 생깁니다. “아까는 f가 무조건 프가 아니라고 했는데, 골프와 스태프는 왜 프인가요?”라는 질문입니다. 이유는 한국어 음절 구조에 있습니다. 한국어는 자음을 홀로 길게 세워 두기 어렵습니다. 특히 외래어에서 영어 끝소리 f가 단어 끝에 오거나 다른 자음 앞에 놓이면, 우리말 음절로 적기 위해 ‘ㅡ’를 붙여 ‘프’처럼 적는 일이 많습니다.
- golf: 골프
- staff: 스태프
- beef: 비프
- left: 레프트
- draft: 드래프트
이때의 ‘프’는 f라는 글자를 프라고 읽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한국어로 발음하고 적을 수 있게 음절을 만든 결과입니다. 즉 f의 자음값은 ‘ㅍ’이고, 단어 끝이나 자음 앞에서는 표기상 ‘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됩니다.
p와 f가 둘 다 ㅍ이 되는 까닭
학생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대목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p와 f가 분명히 다릅니다. pan과 fan은 영어권 화자에게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그런데 한국어 외래어 표기에서는 둘 다 ‘팬’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해 보이지만, 한국어의 표기 체계에서는 두 소리를 모두 ‘ㅍ’ 가까이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 영어 발음에서 p는 두 입술을 붙였다가 터뜨리는 소리이고, f는 이와 입술 사이로 마찰을 내는 소리입니다. 조음 방법이 다릅니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f에 딱 맞는 글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지 않는 이상, 가장 가까운 자음인 ‘ㅍ’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이런 현실적인 선택을 규칙으로 굳힌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외래어 표기는 영어 공부용 발음 기호와 다릅니다. ‘팬’이라고 적었다고 해서 fan과 pan의 영어 발음이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글 표기 안에서 둘이 구별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를 볼 때는 “영어 발음을 얼마나 정확히 재현했나”보다 “한국어 표기 규칙 안에서 어떻게 굳어졌나”를 봐야 합니다.
ph도 f 소리라면 ㅍ으로 적습니다
영어에는 f 글자 말고도 f 소리를 내는 철자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ph입니다. phone, photo, graph 같은 단어가 그렇습니다. 철자는 p와 h가 붙어 있지만 실제 발음은 f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에서도 ph는 대체로 ‘ㅍ’으로 적습니다.
- phone: 폰
- photo: 포토
- graph: 그래프
- philosophy: 필로소피
- phrase: 프레이즈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철자가 아니라 소리입니다. phone을 ‘프혼’처럼 적지 않고 ‘폰’으로 적는 이유도 같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영어 알파벳을 하나씩 대응시키는 표가 아니라, 원어의 발음을 한국어식 표기로 옮기는 기준입니다.
파이팅과 화이팅 사이에서
‘파이팅’과 ‘화이팅’은 좋은 사례입니다.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f가 ‘ㅍ’이므로 ‘파이팅’이 맞습니다. 방송 자막, 교과서, 신문 기사처럼 표준 표기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파이팅’을 쓰는 편이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화이팅’도 아주 널리 쓰입니다. 이 말을 쓰는 사람이 규칙을 몰라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국어 화자들이 오래 들으며 익숙하게 굳힌 생활 표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험 답안, 공문서, 기사문, 교재, 안내문처럼 표기 기준이 필요한 글에서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때는 개인에게 익숙한 표기보다 공통 규칙을 따라야 독자가 헷갈리지 않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 말을 설명할 때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는 화이팅을 볼 수 있지만, 표준 표기를 묻는 문제에서는 파이팅을 고르자”라고 말합니다. 말은 생활 속에서 움직이고, 표기는 그 움직임을 일정한 약속으로 붙잡습니다. 둘 사이의 간격을 알면 무조건 외우는 것보다 덜 흔들립니다.
외래어 표기에서 f를 볼 때 기억할 것
f 표기는 몇 가지 감각만 잡아도 실수가 크게 줄어듭니다. 첫째, 영어 f는 한국어에 없는 소리라서 ‘ㅍ’으로 적습니다. 둘째, f 뒤에 모음이 오면 팬, 파일, 포토처럼 그 모음에 맞춰 적습니다. 셋째, f가 단어 끝이나 자음 앞에 오면 골프, 스태프, 레프트처럼 ‘프’가 나타나는 일이 많습니다. 넷째, ph도 f 소리를 내면 대체로 ‘ㅍ’으로 적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은 우리말을 답답하게 묶으려고 만든 규칙이 아닙니다. 서로 다르게 들은 외국어를 한국어 안에서 함께 읽을 수 있게 만든 장치에 가깝습니다. f 하나만 봐도 그렇습니다. 영어에는 있는 소리가 한국어에는 없고, 그 빈자리를 ㅍ이 맡아 온 과정이 지금의 표기로 굳었습니다. 그래서 ‘왜 파이팅이지?’라는 의문은 꽤 좋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을 지나고 나면 외래어 표기는 암기 문제가 아니라 소리와 문자 사이의 약속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