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사전, 예쁜 말만 찾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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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우리말 사전, 예쁜 말만 찾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 순우리말은 다 예쁜 말이에요?” 하고 묻더군요. 아마 인터넷에서 ‘예쁜 순우리말 모음’을 자주 봐서 그런 생각을 한 듯했습니다. 사실 순우리말 사전은 예쁜 낱말을 고르는 장식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쓰는 말의 뿌리를 확인하고, 한자어와 외래어 사이에서 우리말의 결을 살피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국어를 16년 가르치다 보면 어휘력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가 단순히 단어를 많이 외웠느냐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자주 봅니다. 어떤 말이 어디서 왔고, 어떤 상황에서 쓰이며, 비슷한 말과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학생은 글을 읽을 때 덜 흔들립니다. 순우리말 사전은 바로 그 ‘말의 자리’를 확인하게 해 줍니다.

순우리말은 ‘우리말’과 같은 말일까요?

많이 헷갈리는 부분부터 짚어야 합니다. ‘우리말’은 한국어 전체를 넓게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순우리말, 한자어, 외래어가 모두 들어갑니다. 반면 ‘순우리말’은 한자어나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 고유의 낱말을 가리킬 때 씁니다.

예를 들어 ‘하늘’, ‘바람’, ‘마음’, ‘사랑’, ‘아침’ 같은 말은 순우리말입니다. 반대로 ‘학교’, ‘시간’, ‘교실’, ‘문장’은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이지만 한자어입니다. ‘버스’, ‘컴퓨터’, ‘인터넷’은 외래어 쪽에 가깝지요. 셋 다 한국어 안에서 쓰이지만 뿌리는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아 두면 글의 느낌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아동의 정서 발달”이라고 쓰면 공식 문서의 느낌이 나고, “아이의 마음이 자라는 일”이라고 쓰면 훨씬 부드럽습니다. 둘 중 하나가 무조건 낫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독자와 상황에 맞게 고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순우리말 사전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요?

사전을 펼치면 먼저 뜻풀이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순우리말 사전은 뜻만 확인하고 덮기엔 아깝습니다. 표기, 발음, 품사, 용례까지 함께 봐야 그 말이 실제 문장 속에서 살아납니다.

예를 들어 ‘가람’은 강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에 많이 쓰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을 주지요. 하지만 일상 대화에서 “저 가람이 넓다”처럼 쓰면 조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사전에 있다고 해서 모두 지금의 생활어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미르’도 비슷합니다. 용을 뜻하는 옛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대 일상문에서 자주 쓰이는 낱말은 아닙니다. 브랜드명, 작품명, 이름에는 잘 어울릴 수 있어도 설명문이나 생활 글에 넣으면 문맥에 따라 꾸민 느낌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사전은 ‘쓸 수 있느냐’뿐 아니라 ‘어디에 어울리느냐’를 판단하는 자료가 됩니다.

예쁜 순우리말, 정말 그대로 써도 될까요?

인터넷에서 자주 도는 순우리말 목록을 보면 조심해야 할 말도 섞여 있습니다. 뜻이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고, 실제 사전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말도 있습니다. 특히 이름 짓기나 상호명에 쓰려는 분들은 한 번 더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 뜻이 과장되어 퍼진 말이 있습니다.
  • 옛말인데 현대어처럼 소개된 말이 있습니다.
  • 방언이나 문학적 표현이 일반어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 발음은 예쁘지만 실제 의미가 기대와 다른 말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말은 ‘햇살처럼 빛나는 사람’ 같은 풀이로 돌아다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샘에서 확인하면 그런 뜻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전의 뜻풀이는 생각보다 건조합니다. 그래서 더 믿을 만합니다. 낭만적인 풀이가 붙어 있을수록 원래 뜻과 실제 쓰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예쁜 순우리말을 멀리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좋은 순우리말을 제대로 골라 쓰면 글맛이 살아난다고 봅니다. 다만 ‘예쁘다’는 느낌 하나만으로 고르면 말이 문장 안에서 겉돌 수 있습니다. 말은 뜻, 소리, 쓰임이 함께 맞아야 오래 갑니다.

사전마다 뜻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까닭

순우리말을 찾다 보면 사전마다 설명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와 규범 정보를 확인하는 데 강하고, 우리말샘은 더 넓은 어휘 자료와 실제 쓰임을 살피는 데 유용합니다. 종이 사전이나 민간 사전은 편집 방향에 따라 풀이가 더 친절하거나 예문이 풍부하기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하나의 사전만 보고 바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특히 맞춤법이나 표준어 여부가 걸린 말이라면 국립국어원 자료를 먼저 보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반면 글감으로 쓸 만한 낱말을 넓게 찾고 싶다면 여러 사전을 함께 보는 편이 낫습니다.

국어 수업에서도 저는 학생들에게 사전을 ‘정답 찾는 기계’처럼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전은 말의 이력서에 가깝습니다. 뜻, 품사, 예문, 관련어를 함께 보면 그 말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가 보입니다. 그때부터 단어는 외울 대상이 아니라 이해할 대상이 됩니다.

순우리말을 잘 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순우리말을 잘 쓰려면 어려운 낱말을 많이 끌어오는 것보다 익숙한 말의 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시작’ 대신 늘 ‘비롯’만 쓰고, ‘친구’ 대신 억지로 낯선 말을 넣는다고 글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독자가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좋은 방법은 바꿔 쓰기 연습입니다. “기상이 악화되어 일정이 지연되었다”를 “날씨가 나빠져 일정이 늦어졌다”로 바꾸면 훨씬 쉽게 읽힙니다. ‘기상’, ‘악화’, ‘지연’은 한자어이고, ‘날씨’, ‘나쁘다’, ‘늦다’는 우리말의 감각에 더 가깝습니다. 문장이 딱딱할 때 순우리말이 숨통을 틔워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전문성이 필요한 글에서는 한자어가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감염’, ‘진단’, ‘판결’, ‘계약’ 같은 말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고 의미도 분명합니다. 순우리말만 좋은 말이고 한자어는 나쁜 말이라는 식으로 나누면 글이 오히려 빈약해집니다. 중요한 건 말의 출신이 아니라 문장 안에서 맡은 역할입니다.

제가 권하는 순우리말 사전 활용법은 단순합니다. 첫째, 뜻을 확인합니다. 둘째, 실제 예문을 봅니다. 셋째, 지금 내가 쓰려는 문장에 자연스러운지 소리 내어 읽습니다. 이 세 가지만 해도 어색한 표현을 꽤 많이 걸러낼 수 있습니다.

순우리말 사전은 낯선 말을 모으는 창고가 아니라 익숙한 말을 다시 보게 하는 창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마음’, ‘길’, ‘손’, ‘빛’ 같은 말도 사전에서 다시 만나면 생각보다 깊습니다. 말의 뿌리를 알고 나면 글을 쓰는 손이 조금 느려집니다. 저는 그 느려짐이 문해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우리말 사전, 예쁜 말만 찾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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