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압존법, 부장님 앞에서 과장님을 낮춰야 할까요?

얼마 전 직장인 제자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부장에게 과장의 외근 사실을 전하면서 “과장님이 나가셨습니다”라고 했더니, 옆자리 선배가 “부장님 앞에서는 ‘과장이 나갔습니다’라고 해야지”라고 고쳐 주었다는 겁니다. 제자는 과장에게 무례한 말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고 했습니다. 회사 압존법을 묻는 이야기는 대개 이렇게 시작됩니다. 듣는 사람과 말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모두 나보다 윗사람일 때, 누구를 얼마나 높여야 할까요?
압존법은 왜 생겼을까요?
압존법의 ‘압’은 누른다는 뜻입니다. 말하는 사람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은 이를, 듣는 사람 앞에서 높이지 않는 말법이지요. 전통적인 예로는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평소 아버지에게 쓸 수 있는 높임 표현을 눌러 둡니다.
여기에는 가족 안의 세대 관계가 깔려 있습니다. 손자에게는 아버지도 어른이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버지가 아랫세대이니까요. 그래서 압존법은 단순히 직급표를 위에서 아래로 읽는 기술이 아닙니다. 누가 말하고, 누가 듣고, 누구의 행동을 말하는지에 더해 그 관계가 가족이나 사제 관계인지도 봐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이 설명하는 압존법의 전통적 쓰임도 주로 가정과 사제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부장과 과장이 가족처럼 세대를 달리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직급의 높낮이를 곧바로 가족의 항렬처럼 취급하면, 말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윗사람인 과장을 낮춰 부르는 어색한 일이 생깁니다.
부장님께 보고할 때 과장님을 어떻게 말할까요?
국립국어원이 2011년에 펴낸 『표준 언어 예절』은 직장에서 윗사람을 그보다 더 높은 윗사람에게 말할 때에도 높여 말하는 편이 언어 예절에 맞는다고 안내합니다. 예를 들어 부장에게 과장이 처리한 일을 보고한다면 “김 과장님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는 이가 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김 과장이 이 일을 했습니다”라고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표현을 뜯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과장님’은 과장을 가리키는 말에 높임을 담고, ‘하셨습니다’의 ‘-시-’는 그 일을 한 과장을 높입니다. 끝의 ‘-습니다’는 보고를 듣는 부장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형식입니다. 한 문장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높임을 많이 붙일수록 좋은 것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예문은 “총무과장님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입니다. “총무과장님께서”처럼 높임의 주격 조사 ‘께서’까지 쓰는 것은 그보다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과장님이 외근 나가셨습니다” 정도가 자연스럽습니다. ‘님’과 ‘-시-’는 살리되, 모든 자리에 높임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사장에게 부장의 일정을 전할 때도 같은 원리입니다. “박 부장님이 오후에 돌아오십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반대로 “박 부장이 오후에 돌아옵니다”라는 말은 회사 압존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표현에 가깝습니다. 실제 회사마다 익숙한 말투가 다를 수는 있지만, 오래 써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할 국어 규칙처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거래처 사람에게 말할 때는 달라질까요?
전화 응대에서 특히 헷갈립니다. 거래처 담당자가 “김 과장님 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우리 회사 사람을 외부인 앞에서 무조건 낮춰야 한다고 배운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 과장은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예의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표준 언어 예절』은 듣는 사람이 회사 밖 사람이라는 이유로 회사의 윗사람을 낮추는 방식 역시 직장 압존법을 잘못 적용한 예로 다룹니다.
“김 과장님은 지금 외근 중이십니다”라고 말해도 자연스럽습니다. 이 말은 거래처 담당자에게 반말을 하거나 과장만 높이는 문장이 아닙니다. 과장에 관한 높임과 전화를 받은 상대에게 쓰는 공손한 말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통화 상대의 이름과 직책을 몰라도 문장은 충분히 예의를 갖춥니다.
다만 실제 응대에서는 회사의 호칭 관행과 상대가 원하는 정보도 고려하게 됩니다. “김 과장님은 오후 세 시쯤 돌아오십니다”처럼 일정을 알려 주면 말투뿐 아니라 내용도 친절해집니다. 높임법을 직급 계산 문제로만 생각하면 이런 대화의 목적을 놓치기 쉽습니다.
예전에는 다르게 배웠는데 기준이 바뀐 걸까요?
“학교에서는 압존법을 지키라고 배웠다”는 기억도 틀린 기억은 아닐 겁니다. 다만 배운 예문이 집안 이야기였는지, 회사 이야기였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전통적 압존법을 회사의 보고 말투에까지 옮기면서 혼란이 커졌습니다. 2011년 『표준 언어 예절』은 직장에서의 이런 사용이 우리 전통 언어 예절과 거리가 멀다고 분명히 설명합니다.
이것을 어느 날 ‘과장이’가 틀린 표준어가 되고 ‘과장님이’가 새 표준어가 된 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표준어의 변경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언어 예절의 문제입니다.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도 직장인의 비슷한 질문에 획일적인 문법 규범으로 정해진 사항은 아니라면서, 『표준 언어 예절』의 예를 들어 답합니다. 무엇이 어색한지 판단할 때에는 문장의 모양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제자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장님께 보고할 때도 과장님은 당신의 윗사람이니, 과장님이 외근 나가셨다고 말해도 돼요.” 한 문장으로 외울 때보다 왜 집에서는 높임을 누르고 회사에서는 그러지 않는지 알면 다음 통화에서도 덜 망설이게 됩니다. 말은 직급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고 말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쓰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