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 이유는 왜 백성의 말에서 시작됐을까요?

수업에서 ‘세종대왕은 왜 한글을 만들었을까?’ 하고 물으면 ‘한자가 어려워서요’라는 답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맞는 말이지만, 거기서 멈추면 중요한 장면 하나를 놓칩니다. 당시 백성에게는 이미 말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말을 자기 뜻대로 적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지요.
우리말은 있었는데, 적을 글자가 불편했습니다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우리말로 이야기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주로 한자를 사용했고, 한자의 소리나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이두·향찰·구결 같은 방법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글 이전에는 우리말을 적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방법을 쓰려면 한자를 배워야 했고, 우리말의 소리와 문장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는 말끝을 바꾸어 뜻을 더하는 표현이 많습니다. ‘간다’, ‘갔다’, ‘가겠다고 한다’처럼 작은 차이가 말하는 사람의 시간과 뜻을 바꾸지요. 한자를 빌려 이런 말을 적으려면 어떤 글자를 어떤 방식으로 쓸지 따로 익혀야 합니다. 말은 할 수 있는데 글로 옮기는 길은 좁았던 셈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도 당시의 한자 차용 표기가 우리말을 담기에는 불편했다고 설명합니다.
세종이 딱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훈민정음』 서문에서 세종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이를 딱하게 여긴다고 밝혔지요. 한글 창제 이유를 찾는다면 이 대목부터 읽는 편이 좋습니다. 한자를 없애겠다는 선언보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적고 누구나 뜻을 전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명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모르면 자신의 사정을 직접 적어 전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이 적은 내용을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글을 아는 사람에게 기대야 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새 문자는 그런 거리의 일부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모든 백성이 한자를 전혀 몰랐다거나, 한글이 나오자마자 누구나 글을 읽게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읽고 쓰는 생활이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글자를 스물여덟 자로 만들었을까요?
세종은 1443년에 새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그해 12월 세종이 직접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1446년, 글자의 목적과 쓰는 원리를 담은 책 『훈민정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1443년은 문자 창제 시기, 1446년은 그 문자를 설명한 책이 나온 시기로 구분해 기억하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당시의 스물여덟 글자 가운데 지금 일상에서 쓰는 기본 자모는 스물네 자입니다.
글자의 모양에도 ‘쉽게 익혀 쓰게 한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기본 자음 ㄱ·ㄴ·ㅁ·ㅅ·ㅇ은 발음할 때의 입과 혀 등의 모양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모음도 몇 가지 기본 모양을 바탕으로 짜임을 갖추었습니다. 글자마다 모양을 제각각 외우게 하는 대신, 소리와 모양 사이에 실마리를 둔 것입니다. 물론 글자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고 해서 글을 읽는 일이 저절로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이 소리를 짚으며 익힐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훈민정음』을 창제 목적과 원리를 함께 설명한 책으로 소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새 글자는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을까요?
훈민정음은 만들어진 뒤 책과 여러 기록에 쓰였습니다. 『용비어천가』에는 우리말 노랫말을 적는 데 사용됐고, 뒤이어 한문으로 된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 적은 책들도 나왔습니다. 새 글자가 쓰일 자리를 넓혀 간 과정입니다. 한편 한문은 오랫동안 공식 문서와 학문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한글이 창제된 날부터 모든 글이 한글로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한자를 대신할 새 글자가 필요했다’는 말만 외우게 하지 않습니다. 먼저 누군가 자신의 말을 글로 적으려다 막히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세종의 서문이 훨씬 또렷하게 읽힙니다. 한글 창제 이유는 글자 모양의 뛰어남에만 있지 않습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말을 글로도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스물여덟 글자의 출발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