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발음법 19항은 왜 강릉을 강능이라 읽을까요?

수업에서 지명을 소리 내어 읽게 하면 ‘강릉’ 앞에서 잠깐 멈추는 학생이 있습니다. 글자는 분명 ‘릉’인데, 평소에는 [강능]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지요. ‘담력’을 [담녁]이라고 읽는 것도 비슷합니다. 글자와 소리가 왜 다른지 알면, 낯선 단어를 만나도 발음을 짐작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강릉의 ‘ㄹ’은 어디로 갔을까요?
표준 발음법 제19항은 받침 ‘ㅁ, ㅇ’ 뒤에 이어지는 ‘ㄹ’을 [ㄴ]으로 발음한다고 규정합니다. ‘강릉’은 앞 음절의 받침이 ‘ㅇ’이어서 [강능]이 됩니다. ‘담력’은 ‘ㅁ’ 뒤의 ‘ㄹ’이 바뀌어 [담녁]이 되고요.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예에는 침략[침냑], 항로[항노], 대통령[대통녕]도 있습니다.
말할 때 입에서 일어나는 일을 떠올려 보면 조금 자연스럽습니다. ‘ㅁ’과 ‘ㅇ’은 코로 공기를 내보내는 비음입니다. 그 뒤에 오는 ‘ㄹ’도 앞소리의 영향을 받아 [ㄴ]으로 소리 납니다. 그래서 ‘담력’의 표기에는 ‘ㄹ’이 남아 있지만, 귀에는 [담녁]으로 들리는 것이지요. 이 규정은 그렇게 굳어진 표준 발음을 적어 둔 것입니다.
여기서 발음과 표기를 구별해야 합니다. [강능]이라고 읽는다고 ‘강능’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강릉’의 ‘릉’은 글자에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칠판에 ‘강릉’을 쓰고 입으로 [강능]을 말하게 하면 두 가지를 덜 혼동하더군요.
막론과 협력은 왜 두 소리가 바뀔까요?
제19항의 붙임에는 받침 ‘ㄱ, ㅂ’ 뒤에 오는 ‘ㄹ’도 [ㄴ]으로 발음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막론’을 실제로 말하면 [막논]에서 멈추지 않고 [망논]이 됩니다. ‘협력’도 [협녁]을 거쳐 [혐녁]이 됩니다. 한 단어 안에서 소리가 차례로 두 번 달라지는 셈입니다.
- 막론: ‘ㄹ’이 [ㄴ]으로 바뀌어 [막논]이 된 뒤, ‘ㄱ’이 [ㅇ]으로 바뀌어 [망논]
- 석류: [석뉴]를 거쳐 [성뉴]
- 협력: [협녁]을 거쳐 [혐녁]
- 법리: [법니]를 거쳐 [범니]
왜 앞의 받침까지 바뀔까요? ‘ㄹ’이 [ㄴ]이 되고 나면 그 앞에 ‘ㄱ’이나 ‘ㅂ’이 놓입니다. 이때는 표준 발음법 제18항의 비음화가 이어져 ‘ㄱ’은 [ㅇ]으로, ‘ㅂ’은 [ㅁ]으로 소리 납니다. 국립국어원 해설이 제19항 본문과 붙임을 나누어 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담력’은 뒤의 ‘ㄹ’만 달라지지만, ‘막론’은 앞의 받침까지 달라집니다.
순서도 중요합니다. ‘막론’의 ‘ㄱ’이 처음부터 ‘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ㄹ’이 [ㄴ]으로 바뀌어야 앞의 ‘ㄱ’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망논]이라는 발음을 외울 때 이 순서를 함께 떠올리면, ‘석류’가 왜 [성뉴]인지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는 왜 [실라]일까요?
‘강릉’과 ‘신라’를 나란히 놓으면 헷갈리기 쉽습니다. 강릉은 ‘ㅇ’ 받침 뒤에 ‘ㄹ’이 오고, 신라는 ‘ㄴ’ 받침 뒤에 ‘ㄹ’이 옵니다. 비슷해 보여도 적용하는 조항은 다릅니다. ‘신라’는 제20항에 따라 앞의 ‘ㄴ’이 [ㄹ]로 바뀌어 [실라]가 됩니다. ‘난로’가 [날로], ‘천리’가 [철리]로 들리는 것도 같은 쪽입니다.
그렇다고 ‘ㄴ’ 다음의 ‘ㄹ’이 언제나 [ㄹㄹ]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20항에는 다른 방향으로 소리 나는 예도 있습니다. ‘생산량’은 [생산냥], ‘의견란’은 [의견난]입니다. 두 단어는 뒤의 ‘ㄹ’이 [ㄴ]으로 바뀝니다. 처음 배울 때는 ‘신라’와 ‘생산량’처럼 발음이 다른 낱말을 함께 읽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발음 문제를 풀 때 받침 하나만 보고 답을 고르면 여기서 자주 틀립니다. ‘ㄹ’ 앞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보고, 그 낱말이 제19항의 사례인지 제20항의 사례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생산량’을 [생살량]처럼 읽는 실수는 ‘신라’의 발음을 모든 단어에 옮겨 놓을 때 생깁니다.
글자를 보면서 소리의 순서를 따라가세요
저는 학생들에게 단어 하나를 두 번 읽게 합니다. 먼저 적힌 글자를 천천히 읽고, 다음에는 평소 말하듯 자연스럽게 읽습니다. ‘협력’을 보면 ‘협’의 ‘ㅂ’과 ‘력’의 ‘ㄹ’을 짚은 뒤 [협녁], [혐녁] 순서로 소리를 따라갑니다. 이렇게 하면 [혐녁]이라는 답만 외울 때보다 왜 그런 소리가 났는지 오래 기억합니다.
말의 유래를 안다고 할 때, 모든 낱말에 특별한 옛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에는 단어가 우리 입에서 어떤 소리의 영향을 받으며 발음되어 왔는지가 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강릉’을 쓰고 [강능]이라 읽는 까닭을 알고 나면, 글자와 소리가 어긋나 보이는 순간에도 둘을 차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