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먼 엄한 차이, 왜 사람 앞에서 헷갈릴까요?

얼마 전 학생이 쓴 글에서 “엄한 사람이 혼났다”는 문장을 봤습니다. 누가 혼났는지 물으니, 잘못한 학생 대신 옆에 있던 친구가 꾸중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뜻이라면 ‘엄한’보다 ‘애먼’이 알맞습니다. 두 말은 소리가 비슷하고 둘 다 ‘사람’ 앞에 올 수 있어서, 문장 전체를 읽지 않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애먼 사람은 왜 억울할까요?
‘애먼’은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질 때 쓰는 말입니다. 교실에서 한 학생이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다른 학생이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해 봅시다. 꾸중을 들은 학생은 ‘애먼 학생’입니다. 사건에 책임이 없는 사람에게 그 결과가 돌아갔기 때문이지요.
사람에게만 쓰는 말은 아닙니다. “화가 난다고 애먼 책상을 치지 마”라고 하면 책상은 화가 난 까닭과 관계없는 대상입니다. “주소를 잘못 보고 애먼 집 초인종을 눌렀다”에서는 찾아가려던 곳과 실제로 찾아간 곳이 어긋났습니다. 두 문장 모두 ‘엉뚱한’으로 바꿔 읽어 보면 뜻이 통합니다. 다만 ‘애먼 사람’에는 엉뚱한 대상을 짚었다는 뜻에 더해, 그 사람이 겪은 곤란함까지 느껴집니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은 ‘애먼’을 관형사로 다룹니다. 그래서 ‘애먼 사람’, ‘애먼 소리’, ‘애먼 데’처럼 뒤에 오는 말을 꾸며 줍니다. ‘애먼하다’라는 형용사를 활용해 ‘애먼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쓸 때는 꾸중이나 화살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했는지를 먼저 떠올리면 이 말의 자리가 보입니다.
엄한 선생님은 무엇이 다를까요?
‘엄한’은 형용사 ‘엄하다’가 ‘선생님’이나 ‘규칙’ 같은 말을 꾸밀 때의 형태입니다. 여기서 ‘엄하다’는 ‘嚴하다’로, 태도나 규율이 철저하고 까다롭다는 뜻입니다. “엄한 선생님”은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엄격한 선생님이고, “엄한 벌”은 가볍지 않은 벌입니다. 누군가가 억울하게 벌을 받았는지는 이 말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사람’ 앞에 놓아 보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엄한 아버지에게 혼났다”는 아버지의 성격이나 태도를 말합니다. “애먼 아버지가 혼났다”는 혼날 까닭이 없는 아버지에게 꾸중이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한쪽은 그 사람의 태도를, 다른 한쪽은 그 사람이 사건에 휘말린 처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범인을 못 찾았다고 엄한 사람 잡지 마”라는 문장은 의도한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엄격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 없는 사람을 몰아세우지 말라는 뜻이라면 “애먼 사람 잡지 마”라고 써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애먼 편이다”라고 하면 엄격한 성격을 설명하는 문장이 되지 않습니다.
애먼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요?
유래를 따라가면 이 혼동이 조금 덜 낯설어집니다. ‘애매하다’에는 서로 다른 두 말이 있습니다. 흔히 “답이 애매하다”라고 할 때의 ‘애매(曖昧)하다’는 뜻이 분명하지 않다는 한자어입니다. 한편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이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는 뜻의 고유어 ‘애매하다’도 있습니다. KBS 한국어 방송에서도 이 둘을 구별하며, 억울한 처지와 관련된 ‘애매하다’의 준말 ‘앰하다’를 함께 설명합니다.
‘애먼’의 유래를 다룬 연구에서는 억울하다는 뜻의 ‘애매한’이 ‘애맨’을 거쳐 ‘애먼’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뜻도 ‘억울한 사람’에서 ‘죄 없는 사람’, 나아가 ‘일과 상관없는 엉뚱한 대상’ 쪽으로 넓어졌다고 봅니다. 학계의 설명인 만큼 말이 바뀐 모든 단계를 확정된 사실처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애먼’에 억울함이 남아 있는 까닭을 이해하는 데는 좋은 실마리가 됩니다.
여기서 ‘애매한 대답’과 ‘애먼 사람’을 같은 뜻으로 묶으면 다시 헷갈립니다. 앞 문장의 ‘애매한’은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고, 뒤 문장의 ‘애먼’은 관련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휘말렸다는 뜻입니다. 글자만 보지 말고 그 말이 꾸미는 대상과 사건의 흐름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장에서는 어떻게 골라 쓸까요?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판단하기 쉽습니다. 지각한 학생에게 규칙대로 벌점을 주는 선생님은 ‘엄한 선생님’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각하지 않은 학생에게 잘못 적힌 이름표 때문에 벌점이 갔다면 그 학생은 ‘애먼 학생’입니다. 한 장면에 두 말이 함께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엄한 선생님이 애먼 학생을 꾸짖었다”는 문장은 선생님의 태도와 학생의 억울한 처지를 각각 말합니다.
- “엄한 규칙 때문에 모두가 시간을 지켰다”에서는 규칙이 엄격하다는 뜻입니다.
- “실수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애먼 동료가 사과했다”에서는 책임이 엉뚱한 사람에게 갔습니다.
- “애먼 데 화풀이하지 마”에서는 화가 난 원인과 화풀이 대상이 다릅니다.
말할 때 ‘엄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해서 매번 상대의 말을 끊어 바로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화에서는 앞뒤 상황으로 뜻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글에서는 독자가 그 상황을 모릅니다. 억울하게 휘말린 사람을 쓰려는지, 엄격한 성격의 사람을 쓰려는지 한 번만 가려 보면 됩니다. 표기 하나를 고치는 일 같지만, 실제로는 문장 속에서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더 정확히 보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