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규정 26항은 왜 두 말을 다 인정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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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규정 26항은 왜 두 말을 다 인정할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가엾다’와 ‘가엽다’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를 골라야 할 것 같지만, 둘 다 맞습니다. ‘가엾다’는 ‘가엾어’로, ‘가엽다’는 ‘가여워’로 활용하지요. 한쪽을 틀린 말로 외우기보다 두 형태가 모두 우리말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면 훨씬 덜 헷갈립니다.

표준어 규정 26항은 무엇을 인정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26항은 표준어 규정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의 제26항입니다.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여러 형태가 널리 쓰이고 표준어의 기준에도 맞으면 모두 표준어로 삼는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복수 표준어’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뜻에 반드시 하나의 말만 남겨야 한다고 보지 않은 셈이지요.

이 조항에서 눈여겨볼 말은 ‘널리 쓰이며’와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입니다. 누군가 새로 만든 표현이나 일부에서만 쓰는 말이 곧바로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언어생활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표준어로 인정할 만한지를 함께 판단합니다. 그래서 자주 들린다는 인상만으로 두 표현이 모두 표준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앞의 제25항과 나란히 읽으면 뜻이 더 분명해집니다. 뜻이 같은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일 때에는 그 하나만 표준어로 삼습니다. 반면 제26항은 함께 쓰이는 형태들을 살려 둡니다. 두 조항 모두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말을 쓰는지 살피지만, 그 결과가 늘 같지는 않습니다.

같은 뜻이 다른 모습으로 남은 말들

국립국어원이 제26항의 예로 든 말에는 ‘가뭄/가물’, ‘가는허리/잔허리’, ‘덩굴/넝쿨’, ‘어이없다/어처구니없다’가 있습니다. ‘가뭄이 길어졌다’와 ‘가물이 길어졌다’는 모두 쓸 수 있습니다. ‘덩굴이 담을 타고 오른다’고 해도, ‘넝쿨이 담을 타고 오른다’고 해도 됩니다.

특히 ‘가는허리’와 ‘잔허리’를 보면 한 사물을 가리키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는 사람이 어떤 형태를 익혀 왔는지에 따라 손에 붙는 표현이 다를 수 있지요. 표준어 규정은 그 가운데 널리 쓰이며 기준에 맞는 형태를 함께 인정합니다. 다른 모습으로 굳은 말을 무조건 한쪽으로 몰아내지 않는 이유입니다.

형태가 비슷한 예도 있습니다. ‘곰곰 생각하다’와 ‘곰곰이 생각하다’의 ‘곰곰/곰곰이’, ‘깨뜨리다’와 ‘깨트리다’의 ‘-뜨리다/-트리다’가 그렇습니다. 학생들은 대개 끝에 ‘이’가 붙거나 자음 하나가 바뀌면 둘 중 하나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형태가 모두 인정된 경우가 있습니다. 문장을 쓸 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억지로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쓰려는 형태가 인정되는 말인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 ‘가엾다’와 ‘가엽다’는 모두 표준어지만 활용형은 각각 ‘가엾어’, ‘가여워’입니다.
  • ‘덩굴’과 ‘넝쿨’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복수 표준어입니다.
  • ‘깨뜨리다’와 ‘깨트리다’는 두 접미사 형태가 모두 인정된 예입니다.

복수 표준어라고 해서 모든 문장에서 두 말을 기계적으로 바꿔 끼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슷한 말이라도 문맥에 따라 자연스러운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우선 같은 뜻으로 인정된 범위를 확인하고, 실제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까지 보는 편이 좋습니다.

‘짜장면’은 언제 표준어가 되었을까요?

복수 표준어가 늘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장면’과 ‘짜장면’이 익숙한 사례입니다. 한때는 ‘자장면’만 표준어였지만,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 31일 ‘짜장면’도 함께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써 온 형태를 언어 현실에 비추어 다시 판단한 것입니다. ‘복사뼈/복숭아뼈’, ‘먹을거리/먹거리’도 그때 함께 인정된 사례에 들어갑니다.

이 대목에서는 시점을 빼놓으면 설명이 어긋납니다. 예전에 ‘짜장면’을 고쳐야 한다고 배운 사람이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배울 당시의 기준과 지금의 기준이 다른 것이지요. 그렇다고 널리 쓰이는 신조어나 구어 표현을 모두 표준어로 받아들인다는 뜻도 아닙니다. 쓰임이 퍼지는 과정과 실제 인정 여부는 따로 살펴야 합니다.

교실에서 이 변화를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표준어를 조금 다르게 봅니다. 사전은 사람들이 쓰는 말을 기록하고 가려서 싣는 책이며, 그 판단도 언어생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래된 교재에서 ‘비표준어’라는 표시를 보더라도 현재의 사전을 다시 확인하라고 말합니다.

같은 26항이라도 발음 규정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검색하다 보면 ‘표준 발음법 제26항’도 만납니다. 표준어 규정 안에는 제1부 표준어 사정 원칙과 제2부 표준 발음법이 있어서 번호가 겹칩니다. 제1부 제26항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복수 표준어에 관한 조항입니다. 제2부 제26항은 한자어에서 ‘ㄹ’ 받침 뒤에 오는 ‘ㄷ, ㅅ, ㅈ’을 된소리로 발음하는 규정입니다. ‘갈등’을 [갈뜽], ‘발전’을 [발쩐]으로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26항’이라는 숫자만 외우면 두 이야기가 뒤섞이기 쉽습니다. 앞에 ‘표준어 사정 원칙’이 붙었는지, ‘표준 발음법’이 붙었는지를 먼저 보면 됩니다. 학생에게 ‘가엾다’와 ‘가엽다’의 차이를 설명할 때도 저는 정답 두 개를 먼저 적어 주지 않습니다. 같은 뜻의 두 말이 오래 쓰이며 각각의 모습으로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말이 살아남은 까닭을 알면, 다음에 다른 복수 표준어를 만나도 스스로 확인할 실마리가 생깁니다.

표준어 규정 26항은 왜 두 말을 다 인정할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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