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규정의 주요 내용은 왜 필요할까요?

수업 시간에 ‘강낭콩’을 칠판에 쓰면 꼭 한 학생이 묻습니다. “강남에서 온 콩이라면서 왜 강남콩이라고 쓰면 안 돼요?” 좋은 질문입니다. 말의 출발점만 보면 ‘강남콩’이 그럴듯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래 쓰는 동안 발음이 달라졌고, ‘강낭콩’으로 굳었습니다. 표준어 규정 제5항은 이렇게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라도 널리 쓰이면 그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정합니다. 유래를 알고 나면 ‘남’과 ‘낭’ 가운데 무엇을 써야 할지 덜 헷갈립니다.
표준어는 무엇을 기준으로 고를까요?
표준어 규정 제1항은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두루’와 ‘현대’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서울에서 쓴다고 곧바로 표준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래된 문헌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표준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실제로 쓰는 말인지, 현재의 언어생활에 맞는지를 함께 봅니다.
그렇다고 지역에서 쓰는 말에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방언에는 지역의 생활과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표준어는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공적인 글과 대화에서 공통으로 쓸 기준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어느 말이 더 훌륭한가’를 가리는 잣대가 아니라 ‘함께 통할 말을 어떻게 고를까’를 정한 기준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준어 규정은 여러 말 가운데 어떤 형태를 표준으로 삼고 어떻게 발음할지를 다룹니다. 한글 맞춤법은 그렇게 정해진 말을 글자로 어떻게 적을지 다룹니다. ‘강낭콩’에서는 먼저 어떤 말이 표준형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다음에야 표기를 따질 수 있습니다.
말의 유래와 지금의 쓰임이 다르면요?
‘강낭콩’은 표준어 규정의 성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강남콩’에서 왔다고 해서 옛 형태를 끝까지 붙잡지는 않았습니다. 어원을 의식하지 않는 화자가 많아지고 ‘강낭콩’이라는 형태가 널리 굳자, 현재의 쓰임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국립국어원도 이 낱말을 제5항의 사례로 설명합니다.
반대로 비슷한 발음이 여럿 들린다고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표준어 규정 제17항은 의미 차이가 없는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하나를 표준어로 삼도록 합니다. ‘으례’와 ‘으레’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이 말은 한자어 ‘의례(依例)’에서 나온 흐름을 지니지만, 지금 부사로 쓸 때의 표준형은 ‘으레’입니다. “그는 으레 일찍 온다”처럼 쓰지요. 소리와 쓰임이 달라진 과정을 알면 글자 하나를 기계적으로 외울 때보다 기억이 오래갑니다.
규정은 말이 변해 온 자취를 지우는 문서가 아닙니다. 어느 변화가 널리 자리 잡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원은 표기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지만, 어원만으로 현재의 표준어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둘 다 맞는 말도 있을까요?
있습니다. 제26항은 같은 뜻을 나타내는 몇 가지 형태가 널리 쓰이고 규정에도 맞으면 모두 표준어로 삼는다고 합니다. ‘가뭄’과 ‘가물’, ‘가엾다’와 ‘가엽다’가 그런 예입니다. 두 형태를 만났을 때 무조건 하나를 지우기보다, 각각 인정된 말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변화를 보여 주는 더 익숙한 사례는 ‘자장면’과 ‘짜장면’입니다. 한동안 ‘자장면’만 표준어였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 ‘짜장면’이 널리 쓰였습니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에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했습니다. 지금은 두 말 모두 쓸 수 있습니다. 예전에 배운 ‘짜장면은 틀리다’라는 기억을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현재의 기준과 어긋나는 셈이지요.
이런 변화가 아무 말이나 많이 쓰기만 하면 곧바로 표준어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쓰임과 규정의 취지를 검토해 표준어로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말 역시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거나,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표준어라고 단정하지 않는 편이 정확합니다.
표준어 규정에 발음법도 들어 있나요?
표준어 규정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부는 어떤 말을 표준어로 삼을지 다루는 ‘표준어 사정 원칙’이고, 제2부는 표준어를 어떻게 발음할지 다루는 ‘표준 발음법’입니다. 글자로 적은 모습과 실제 소리가 늘 같지는 않기에 두 부분이 함께 필요합니다.
- ‘꽃이’는 [꼬치]로 발음합니다. 받침 ‘ㅊ’이 뒤의 조사 ‘이’로 옮겨 가는 경우입니다.
- ‘국물’은 [궁물]로 발음합니다. ‘ㅁ’ 앞에서 받침 ‘ㄱ’의 소리가 [ㅇ]으로 바뀝니다.
- ‘넓다’는 [널따]로 발음합니다. 겹받침을 자음 앞에서 발음하는 방식이 반영된 예입니다.
말할 때 [궁물]이라고 한다고 해서 글에도 ‘궁물’이라고 쓰지는 않습니다. 발음법은 소리의 기준이고, 맞춤법은 표기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이 둘을 나누어 보여 주면 학생들이 “들리는 대로 적었는데 왜 틀렸죠?”라는 물음의 답을 조금씩 찾습니다.
현행 표준어 규정은 1988년 1월 19일 고시되어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이후에도 ‘짜장면’처럼 표준어로 인정되는 낱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낯선 표기를 만나면 옛 형태와 지금의 쓰임을 함께 떠올립니다. 말이 걸어온 길을 알면 규정의 문장도 훨씬 사람의 말답게 읽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