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순우리말 모음은 어디에 쓰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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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순우리말 모음은 어디에 쓰면 좋을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물가 사진을 보여 주고 보이는 것을 한 문장으로 적게 했습니다. 대부분은 ‘물이 반짝인다’고 썼고, 한 학생은 ‘물 위에 윤슬이 번진다’고 적었지요. 같은 장면인데 두 번째 문장에서는 잔물결까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쁜 말을 많이 아는 것보다 그 말이 가리키는 장면을 아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쁜 순우리말 모음을 찾다 보면 낯선 이름 같은 단어가 끝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소리만 곱다고 뜻까지 믿어서는 곤란합니다. 순우리말은 한자어나 외래어가 아닌 고유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뜻이 분명하고 문장 속에 놓았을 때 제 빛을 내는 말들을 골랐습니다.

빛과 날씨를 담은 말

  •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입니다. ‘호수에 윤슬이 일었다’고 쓰면 빛만이 아니라 물결의 움직임도 전해집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 말은 1999년에 나온 표준국어대사전 초판부터 실려 있었습니다. 요즘 자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요.
  • 여우비는 볕이 나 있는 날 잠깐 내리다가 그치는 비를 이릅니다. ‘맑은 하늘에 여우비가 지나갔다’처럼 쓰면 날씨의 뜻밖의 변화를 짧게 담을 수 있습니다.
  • 아지랑이는 햇볕이 강할 때 먼 곳의 공기가 흔들려 보이는 현상입니다. ‘봄날 들판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는 문장이 자연스럽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아른거림을 가리키므로, 눈앞의 물결을 묘사할 때 쓰는 ‘윤슬’과는 장면이 다릅니다.
  • 산들바람은 시원하고 가볍게 부는 바람입니다. ‘창문으로 산들바람이 들어왔다’고 하면 세찬 바람과 구별되는 감각이 살아납니다.

이 네 단어를 외울 때는 뜻풀이만 읽기보다 장면을 나란히 떠올리는 편이 낫습니다. 물 위에서 반짝이면 윤슬, 볕 속에 비가 스치면 여우비, 먼 들판이 아른거리면 아지랑이입니다. 서로 다른 풍경을 붙잡은 말이라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소리와 냄새에도 어울리는 말이 있습니다

  • 도란도란은 여럿이 나직한 목소리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식구들이 저녁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했다’고 하면 말소리와 분위기가 함께 느껴집니다. 시끄러운 언쟁을 두고 쓰기는 어렵습니다.
  • 소곤소곤은 남이 알아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양입니다. 둘 다 조용한 말소리지만, 도란도란에는 함께 나누는 정다운 분위기가 더 짙고 소곤소곤에는 목소리를 낮추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 내음은 흔히 다른 명사 뒤에 놓여 향기롭거나 나쁘지 않은 냄새를 가리킵니다. ‘비 온 뒤 흙 내음’, ‘갓 구운 빵 내음’처럼 쓸 수 있지요. ‘냄새’가 좋고 나쁜 것을 두루 가리키는 데 비해 ‘내음’은 쓰임의 폭이 좁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내음’은 어색합니다.

‘내음’은 예전에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2011년 표준어에 추가됐습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서도 ‘냄새’와 뜻을 완전히 같게 보지 않고, 향기롭거나 나쁘지 않은 기운이라는 쓰임을 따로 밝힙니다. 말의 지위가 바뀌었다는 사실만 외우면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움직임과 마음을 나타내는 말

  •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의 부사입니다. ‘시나브로 친해졌다’에는 어느 날 갑자기 가까워진 게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 쌓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갑자기 시나브로 변했다’처럼 쓰면 두 말의 속도가 부딪힙니다.
  • 나래는 문학 작품 등에서 ‘날개’를 이르는 말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실제 새의 몸을 설명하는 글이라면 ‘날개’가 더 자연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나래도 2011년에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됐습니다.
  • 소담하다는 생김새가 탐스럽거나 음식이 넉넉해 먹음직한 모습을 나타낼 때 어울립니다. ‘소담한 꽃송이’, ‘소담하게 차린 밥상’처럼 쓰지요. 그저 작고 귀엽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면 말이 품은 풍성함을 놓치게 됩니다.
  • 포근하다는 따뜻한 기운이 감싸는 듯한 느낌을 전합니다. ‘포근한 이불’처럼 몸으로 느끼는 온기에도, ‘포근한 말투’처럼 사람에게서 받는 느낌에도 쓸 수 있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단어를 한꺼번에 외우게 하면 며칠 뒤에는 뜻이 뒤섞이곤 했습니다. 대신 ‘시나브로 친해진 친구’에 관한 문장을 쓰게 하면 사정이 달랐습니다. 자기 경험을 담은 순간, 조금씩 가까워졌다는 뜻이 문장에 붙어 남았지요.

이름보다 문장에 먼저 놓아 보세요

예쁜 순우리말을 찾는 분 가운데는 아이 이름이나 가게 이름을 고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수록 인터넷의 짧은 뜻풀이 하나만 믿기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샘에서 뜻과 쓰임을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널리 퍼진 풀이 중에는 실제 사전의 설명과 다르거나, 지역에서 쓰던 말을 아무 설명 없이 표준어처럼 소개한 것도 있습니다.

짧은 문장 세 개를 써 보면 단어의 성격이 더 또렷해집니다. ‘강가에 윤슬이 번졌다’, ‘부엌에서 빵 내음이 났다’, ‘우리는 시나브로 가까워졌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코로 맡는 것,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관계가 각각 자리를 찾았습니다. 어울리는 자리를 알고 쓰는 말은 낯설어도 읽는 이에게 쉽게 닿습니다. 저는 그때 순우리말이 가장 예쁘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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