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문제집은 어떻게 골라야 오래 기억할까요?

얼마 전 학생이 국어 문제집 두 권을 책상에 펼쳐 놓고 물었습니다. 한 권은 문제가 빽빽했고, 다른 한 권은 해설이 길었습니다. 저는 먼저 같은 맞춤법 문제를 두 권에서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답이 ‘왠지’라는 사실만 적힌 책과,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라고 설명한 책은 틀린 뒤에 남는 것이 다릅니다.
국어 문제집을 고를 때 문제 수부터 세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휘와 맞춤법은 한 번 맞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낯선 문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뜻을 짚고, 헷갈리는 표기 앞에서 이유를 떠올릴 수 있어야 자기 것이 됩니다. 저는 그 과정이 책에 들어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지금 필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찾습니다
학생들에게 짧은 글을 읽히고 틀린 문제를 보면, 같은 점수를 받아도 막힌 곳은 제각각입니다. 낱말 뜻을 몰라 문장을 놓친 학생이 있고, 글은 이해했지만 선택지의 표현을 잘못 읽은 학생도 있습니다. 이 둘에게 똑같이 독해 문제만 더 풀게 하면 공부한 시간에 비해 달라지는 것이 적습니다.
책을 사기 전에는 이미 푼 문제 열 개만 다시 보는 편이 좋습니다. 틀린 이유를 ‘낱말 뜻을 몰랐다’, ‘글의 근거를 못 찾았다’, ‘표기를 혼동했다’처럼 적어 보면 필요한 단원이 드러납니다. 어휘가 걸림돌이라면 뜻을 문장 속에서 확인하는 문제가 있는지, 독해가 어렵다면 답의 근거가 본문 어디에 있는지 해설이 짚어 주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학년이나 난도 표시도 참고할 만하지만, 실제로 한 쪽을 풀어 보는 일이 더 정확합니다. 열 문제 가운데 아홉 문제를 빠르게 맞히고 해설에서 새로 얻는 것이 없다면 복습용으로는 괜찮아도 주력 교재로는 쉬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문마다 모르는 낱말이 너무 많아 문제의 뜻조차 읽기 어렵다면 한 단계 앞선 책일 수 있습니다. 혼자 풀고 해설을 읽었을 때 막힌 부분이 조금씩 풀리는 수준이 알맞습니다.
맞춤법 해설에는 ‘왜’가 있어야 합니다
맞춤법 문제의 해설은 특히 차이가 큽니다. ‘웬지’가 아니라 ‘왠지’라고만 쓰면 다음 시험에서 또 헷갈릴 수 있습니다.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입니다. 반면 ‘웬’은 ‘웬 사람’, ‘웬일’에서 보듯 ‘어찌 된’이나 ‘어떠한’이라는 뜻으로 씁니다. 두 말이 나온 자리를 알려 주면 외울 항목이 아니라 구별할 기준이 생깁니다.
‘설거지’도 좋은 예입니다. 예전에 쓰이던 ‘설겆다’를 떠올리면 ‘설겆이’가 맞을 듯하지만, 지금은 그 동사가 쓰이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표준어 사정 원칙에서 쓰이지 않게 된 말을 처리하고 현재 쓰이는 ‘설거지’를 표준으로 삼은 까닭을 설명합니다. 1988년 고시된 표준어 규정에도 ‘설거지’가 표준어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설겆이가 최근에 표준어에서 바뀌었다’고 설명하는 해설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집에서 이런 설명이 매번 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틀리기 쉬운 보기끼리 무엇이 다른지, 적용한 기준은 무엇인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국립국어원의 설명과 비교해도 뜻과 표기가 맞는지 확인하면 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실제 쓰임과 규범이 함께 움직이므로, 신조어를 무조건 틀렸다고 몰아붙이는 해설보다 쓰이는 자리와 공적인 글에서의 적절성을 구분하는 해설이 낫습니다.
어휘는 뜻풀이 다음 문장에서 익힙니다
한자어와 사자성어를 공부할 때도 뜻풀이 한 줄만 외우면 금세 흐려집니다. 가령 ‘역지사지’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이라고 적어 놓고 끝내면, 어떤 장면에서 써야 하는지 선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친구가 약속에 늦은 이유를 듣기 전에 화부터 내는 장면, 상대의 사정을 들은 뒤 생각을 바꾸는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말뜻이 살아납니다.
속담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담의 빈칸에 들어갈 낱말을 고르는 문제만 있는지, 서로 다른 상황 중 어느 곳에 어울리는지 묻는 문제도 있는지 보세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를 안다고 말하는 학생도 실제 대화 장면에서 그 뜻을 연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문맥을 고르는 문제는 그 사이를 메워 줍니다.
저는 해설에 예문이 하나만 있을 때 학생과 다른 예문을 만들어 봅니다. 원래 문장의 낱말을 그대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생활이나 읽던 글의 장면에 넣어 보는 겁니다. 그 말이 어울리지 않는 문장까지 골라 보면 뜻의 경계가 더 분명해집니다. 문제집에도 이런 비교 문항이 있다면 어휘 공부에 쓸모가 큽니다.
한 권을 끝내는 방식이 책의 두께보다 중요합니다
두꺼운 국어 문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겠다고 마음먹고 며칠 뒤 접어 두는 학생을 여러 번 봤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풀 분량을 작게 잡는 편이 낫습니다. 지문 한두 개나 어휘 한 쪽을 풀고, 틀린 문제의 해설을 읽은 뒤 다음 날 다시 풀 수 있는 분량이면 충분합니다. 답을 이미 기억하더라도 그 답이 된 이유를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답을 옮겨 적을 때는 긴 해설을 베끼기보다 헷갈린 두 표현을 함께 남겨 두면 좋습니다. ‘왠지=왜인지’, ‘웬=어찌 된’처럼 짧게 적고, 각각 들어갈 문장을 하나씩 쓰는 방식입니다. 독해 문제라면 정답 번호 대신 판단의 근거가 된 문장을 표시합니다. 다시 볼 때 생각을 어디서 고쳐야 하는지 눈에 들어옵니다.
문제집을 고르는 마지막 기준은 결국 다시 펼칠 수 있느냐입니다. 글자 크기와 지면 구성도 읽기 편해야 하고, 해설은 틀린 자리로 돌아갈 길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답을 많이 맞히는 날보다 한 단어를 왜 그렇게 쓰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된 날, 국어 공부가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