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를 많이 안다는 건 왜 문해력의 힘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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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를 많이 안다는 건 왜 문해력의 힘이 될까요?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 한 명이 지문을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문장은 길지 않았습니다. 문법도 크게 어렵지 않았고요. 그런데 딱 한 단어, ‘완곡하다’에서 읽기가 멈췄습니다. 그 단어를 모르면 뒤 문장까지 흐려집니다. 사실 국어 실력은 긴 글을 버티는 힘이기도 하지만, 그 힘의 바닥에는 어휘가 있습니다.

저는 16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면서 비슷한 장면을 자주 봤습니다. 학생들은 긴 지문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막상 같이 읽어 보면 문장 구조보다 단어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판’과 ‘비난’을 구별하지 못하고, ‘주장’과 ‘의견’을 같은 말로 처리합니다. 그렇게 작은 차이를 놓치면 글 전체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어휘는 단어 암기가 아니라 의미의 거리감입니다

어휘를 공부한다고 하면 단어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국어 어휘는 영어 단어처럼 뜻 하나를 붙여 외우는 방식만으로는 오래 남지 않습니다. ‘엄격하다’, ‘엄중하다’, ‘엄밀하다’는 모두 단단한 느낌이 있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선생님은 엄격할 수 있고, 상황은 엄중할 수 있으며, 논리는 엄밀해야 합니다.

이 차이는 사전 뜻만 보고는 잘 안 잡힙니다. 실제 문장 속에서 어떤 대상과 어울리는지를 봐야 합니다. 저는 이를 ‘말의 자리’라고 설명합니다. 단어마다 편하게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어휘력이 좋다는 것은 많은 단어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단어가 어느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러운지 감각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한자어를 알면 낯선 단어가 덜 낯섭니다

우리말 어휘에서 한자어의 비중은 꽤 큽니다. 특히 교과서, 뉴스, 설명문, 논설문으로 갈수록 한자어가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한자를 전부 쓰고 외우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자주 쓰이는 글자의 뜻을 알면 처음 보는 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자’, ‘독해’, ‘독서’에는 읽는다는 뜻의 ‘독’이 들어 있습니다. ‘해석’, ‘해명’, ‘이해’에는 풀고 밝힌다는 느낌의 ‘해’가 들어가고요. 이런 식으로 단어를 쪼개 보면 어휘는 서로 따로 떨어진 낱말이 아니라 그물처럼 연결됩니다. 하나를 알면 셋이 보이고, 셋을 알면 열 개가 덜 무섭습니다.

학생들이 ‘추상적’이라는 말을 어려워할 때 저는 ‘추’와 ‘상’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먼저 반대말을 묻습니다. 구체적.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쪽이 구체라면, 추상은 생각 속에서 뽑아낸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추상적 개념이다’라는 문장이 훨씬 덜 멀어집니다.

헷갈리는 말은 뜻보다 쓰임에서 갈립니다

어휘 학습에서 자주 나오는 문제가 ‘비슷한 말’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가 대표적이지요. 두 답이 서로 같지 않을 때는 ‘다르다’가 맞고, 정답에서 벗어났을 때는 ‘틀리다’가 맞습니다. “네 생각은 나와 틀려”라고 말하면 상대 의견을 오답 취급하는 느낌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때는 “네 생각은 나와 달라”가 더 정확하고 덜 거칠게 들립니다.

‘부치다’와 ‘붙이다’도 학생들이 자주 헷갈립니다. 편지는 부치고, 우표는 붙입니다. 힘이 부치고, 불을 붙입니다. 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의미의 방향이 다릅니다. ‘부치다’는 보내거나 맡기거나 감당하는 쪽으로 넓어지고, ‘붙이다’는 떨어지지 않게 닿게 하는 쪽으로 갑니다.

  • ‘반증’은 반대되는 증거를 들어 어떤 주장을 깨는 말입니다.
  • ‘방증’은 주변 증거로 어떤 일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입니다.
  • ‘지양’은 더 나은 방향을 위해 피하거나 버리는 것이고, ‘지향’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시험에만 나오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보고서, 면접, 회의, 기사 댓글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단어 하나를 잘못 고르면 내가 의도한 태도와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어휘는 결국 생각의 정확도와도 연결됩니다.

어휘가 부족하면 글을 느리게 읽습니다

문해력이 약한 학생을 보면 대개 읽는 속도만 문제가 아닙니다. 머릿속에서 단어 뜻을 계속 확인하느라 글의 흐름을 놓칩니다. 자동차가 신호마다 멈추면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한 문단에 3개만 있어도 독해의 부담은 크게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정책의 실효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문장에서 ‘실효성’을 모르면 문장이 흐릿합니다. 여기서 실효성은 실제로 효과를 내는 성질입니다. 그러면 이 문장은 “그 정책이 말뿐이 아니라 실제 효과가 있는지 따져야 한다”는 뜻으로 풀립니다. 어려운 단어를 쉬운 말로 바꿀 수 있으면 읽기는 훨씬 안정됩니다.

국어 공부를 오래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는 여기서 벌어집니다. 어려운 글을 만났을 때 한쪽은 단어를 단서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다른 한쪽은 단어 때문에 멈춥니다. 그래서 어휘는 배경지식과도 연결됩니다. ‘탄소중립’, ‘기준금리’, ‘공론화’ 같은 말은 단어 뜻만 알아도 뉴스의 절반은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휘 공부는 짧게, 자주, 문장으로 해야 합니다

어휘를 늘리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에 단어 50개를 외우는 방식보다, 낯선 단어 3개를 문장 속에서 제대로 만나는 편이 오래 갑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단어 뜻만 적지 말고 예문을 같이 적으라고 말합니다. 가능하면 자기 생활에 가까운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유예’라는 말을 배웠다면 “시험을 유예했다”보다 “제출 기한을 하루 유예받았다”가 더 선명합니다. ‘관철’은 “의견을 관철했다”처럼 쓰면 됩니다. 여기서 관철은 끝까지 밀고 나가 뜻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렇게 문장으로 익힌 단어는 다시 만났을 때 훨씬 빨리 알아봅니다.

또 하나는 반대말과 비슷한 말을 함께 묶는 방법입니다. ‘명시적’은 분명히 드러난 것이고, ‘암시적’은 넌지시 드러난 것입니다. ‘낙관’은 좋게 보는 태도이고, ‘비관’은 나쁘게 보는 태도입니다. 단어를 외딴섬처럼 두지 말고 이웃 단어와 같이 놓으면 기억이 단단해집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샘 같은 자료를 보면 단어의 기본 뜻과 실제 용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전 뜻을 그대로 베껴 적는 데서 멈추면 공부가 조금 딱딱해집니다. 사전은 기준을 잡는 도구이고, 내 문장은 그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좋은 어휘력은 말을 어렵게 하는 힘이 아닙니다

어휘가 풍부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려운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좋은 어휘력은 상황에 맞는 말을 고르는 힘입니다. 초등학생에게 설명할 때는 쉬운 말을 쓰고, 보고서를 쓸 때는 정확한 말을 쓰고, 사과할 때는 방어적인 말을 줄이는 것. 이것이 훨씬 실용적인 어휘력입니다.

‘죄송합니다’와 ‘유감입니다’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요청드립니다’와 ‘부탁드립니다’도 거리감이 다릅니다. ‘검토하겠습니다’와 ‘처리하겠습니다’는 책임의 무게가 다릅니다. 단어는 뜻만 전달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와 관계의 온도까지 함께 옮깁니다.

그래서 어휘 공부는 시험 대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읽는 힘을 만들고, 쓰는 힘을 다듬고, 생각을 더 정확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단어 하나를 새로 안다는 것은 세상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하나 더 생기는 일과 비슷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려운 단어를 무작정 외우기보다, 그 말이 왜 그 자리에 쓰였는지 천천히 따져 보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런 습관이 쌓이면 글은 조금 덜 무섭고, 말은 조금 더 또렷해집니다.

어휘를 많이 안다는 건 왜 문해력의 힘이 될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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