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겆이 표준어가 맞나요, 왜 설거지라고 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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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이 표준어가 맞나요, 왜 설거지라고 써야 할까요?

얼마 전 학생 글을 보다가 ‘저녁 먹고 설겆이를 했다’라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맞춤법 검사기는 빨간 줄을 그었지만, 학생은 억울해했습니다. “선생님, 어른들도 이렇게 많이 쓰잖아요.” 사실 맞는 말입니다. 주변에서 ‘설겆이’라는 표기를 꽤 자주 봅니다. 그런데 표준어로는 ‘설거지’가 맞습니다. ‘설겆이’는 지금의 표준 표기가 아닙니다.

왜 ‘설겆이’가 그럴듯해 보일까요?

‘설겆이’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무렇게나 생긴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설겆다’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그 말에 명사를 만드는 ‘-이’가 붙으면 ‘설겆이’가 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설겆이’를 보고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말맛과 유래가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표준어 체계에서 ‘설겆다’를 표준 동사로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그 일을 가리키는 명사를 ‘설거지’로 싣고, 동사는 ‘설거지하다’로 풉니다. 그러니까 지금 글에서는 ‘설겆이하다’가 아니라 ‘설거지하다’라고 써야 자연스럽고, 시험이나 공문서, 기사문에서도 ‘설거지’가 맞습니다.

표준어는 ‘설거지’, 발음도 표기에 끌려가면 안 됩니다

맞춤법에서 자주 생기는 착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리를 먼저 듣고 글자를 나중에 떠올립니다. 그래서 [설거지]처럼 말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씻다, 닦다’의 느낌 때문에 ‘ㅈ’ 받침이 들어간 ‘설겆이’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우겨넣다’를 ‘욱여넣다’로, ‘며칠’을 ‘몇일’로 쓰는 일이 생깁니다. 말의 구조를 잘못 짐작하는 것이지요.

‘설거지’는 더 이상 ‘설겆다’에서 규칙적으로 만들어 쓰는 말로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의 굳어진 명사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래서 ‘설거지거리’, ‘설거지통’, ‘설거지를 하다’처럼 적습니다. ‘설겆이거리’, ‘설겆이통’이라고 쓰면 예전 말의 흔적을 끌고 온 표기가 됩니다.

‘설거지’와 ‘설겆이’를 실제 문장으로 비교해 보면

글에서는 맞는 표기를 한 번 문장 속에 넣어 보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국어 수업에서도 저는 틀린 낱말만 외우게 하기보다, 자주 쓰는 문장으로 입에 붙이게 합니다.

  • 밥을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했다.
  •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많이 쌓였다.
  • 오늘은 내가 설거지할 차례다.
  • 기름 묻은 그릇은 먼저 휴지로 닦고 설거지하면 편하다.

위 문장에서는 모두 ‘설거지’가 맞습니다. 반대로 ‘설겆이를 했다’, ‘설겆이거리가 쌓였다’, ‘설겆이할 차례다’는 표준 표기로 보기 어렵습니다. 뜻은 통하지만, 맞춤법을 보는 글에서는 감점될 수 있습니다.

헷갈릴 때는 ‘설거지하다’로 외우면 덜 틀립니다

학생들에게는 ‘설거지’ 하나만 따로 외우지 말고 ‘설거지하다’로 묶어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더 많이 쓰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나 설거지했어”, “설거지 좀 해”, “설거지해야지”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동작까지 붙여 두면 ‘설겆다’라는 옛 꼴이 덜 끼어듭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받침을 떠올리지 않는 것입니다. ‘설겆이’라고 쓰려면 가운데에 ‘겆’이라는 모양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표준어에는 그 바탕이 되는 ‘설겆다’를 일상적인 표준 동사로 세워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받침 있는 꼴을 억지로 살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릇을 씻는 일은 ‘설거지’, 그 일을 하는 것은 ‘설거지하다’입니다.

옛말의 흔적이 남았다고 해서 모두 표준어는 아닙니다

우리말에는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써 온 말에는 과거의 문법, 지역의 발음, 세대별 습관이 함께 남습니다. 그래서 어떤 표기는 완전히 엉뚱해서 틀리는 것이 아니라, 예전 말의 그림자가 남아서 틀리기도 합니다. ‘설겆이’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이 ‘설겆이’라고 썼을 때 단순히 틀렸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 표기가 왜 그럴듯한지”를 먼저 말해 줍니다. 예전에는 ‘설겆다’라는 말이 있었고, 거기서 ‘설겆이’라는 생각이 나올 수 있었다고요. 다만 지금 표준어로 글을 쓸 때는 ‘설거지’를 써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틀린 까닭을 알면 다음부터는 손이 멈춥니다.

맞춤법은 사람을 곤란하게 하려고 있는 규칙이 아닙니다. 말이 오랫동안 쓰이면서 어느 쪽으로 굳었는지를 기록한 약속에 가깝습니다. ‘설겆이’가 입에 익은 분도 있겠지만, 글에서는 ‘설거지’라고 적는 것이 지금의 약속입니다. 예전 말의 흔적까지 알고 나면, 이 표기는 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설겆이 표준어가 맞나요, 왜 설거지라고 써야 할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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