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키우기 책, 많이 읽히면 정말 좋아질까요?

얼마 전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짧은 설명문을 읽고도 문제를 못 풀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글자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문장도 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첫 문단에서 이미 길을 잃었습니다. 모르는 낱말이 몇 개 있었고, 그 낱말을 대충 넘기다 보니 문장 사이의 관계가 흐려진 겁니다. 사실 문해력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교실에서 16년 동안 아이들을 보다 보면 문해력이 약한 학생에게 공통점이 보입니다. 글을 싫어한다기보다 글을 붙잡고 버티는 힘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따라서’, ‘반면에’ 같은 연결어를 놓치고, ‘원인’과 ‘결과’를 구별하지 못하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앞뒤 문맥으로 짐작하기 전에 읽기를 멈춥니다. 그래서 문해력 키우기 책을 고를 때도 단순히 유명한 책, 두꺼운 책,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만 찾으면 조금 아쉽습니다.
문해력은 독서량보다 읽는 방식에서 자랍니다
문해력을 키운다는 말은 결국 글을 정확히 읽고, 뜻을 연결하고, 자기 말로 다시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는 특히 이 차이가 크게 나타납니다. 같은 글을 읽어도 어떤 아이는 핵심 문장을 찾아내고, 어떤 아이는 눈에 띄는 단어 몇 개만 기억합니다. 시험에서 지문이 길어질수록 이 차이는 더 커집니다.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문해력이 기대만큼 자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 줄거리만 따라가는 읽기에 익숙한 경우입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끝까지 읽지만, 설명문이나 주장하는 글이 나오면 금방 지칩니다. 반대로 독서량이 아주 많지 않아도 문장 구조를 따져 읽는 아이는 낯선 글을 만났을 때 버티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해력 키우기 책은 재미와 훈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문해력 키우기 책을 고를 때 보는 기준
책을 고를 때 저는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 낱말을 그냥 뜻풀이로만 처리하지 않는가. 둘째, 문단 사이의 관계를 읽게 만드는가. 셋째, 읽은 뒤 자기 말로 바꾸는 활동이 있는가. 이 세 가지가 들어 있으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어도 효과가 큽니다.
- 어휘 설명이 문맥 안에서 제시되는 책
- 짧은 글 뒤에 중심 내용과 근거를 묻는 책
- 문장 바꿔 쓰기, 요약문 쓰기, 제목 붙이기가 있는 책
- 문학뿐 아니라 설명문, 기사문, 논설문이 함께 실린 책
- 학년보다 조금 쉬운 글부터 시작할 수 있는 책
여기서 의외로 중요한 것이 ‘조금 쉬운 글’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이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어서 어려운 책을 먼저 고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해력이 약한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책은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무거운 바벨을 쥐여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세가 잡히기 전에 지칩니다. 처음에는 70퍼센트 정도 이해되는 책이 좋습니다. 나머지 30퍼센트를 문맥과 질문으로 채워 가는 과정에서 읽는 힘이 생깁니다.
어휘책은 단어장보다 ‘말의 자리’를 보여줘야 합니다
문해력 키우기 책을 찾다 보면 어휘 교재가 많이 보입니다. 어휘는 정말 중요합니다. 글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한 문단에 5개 이상 나오면 대부분의 학생은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단어 뜻을 외우는 방식만으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간과하다’를 ‘대충 보다’ 정도로 외운 아이는 실제 문장에서 자주 흔들립니다. ‘중요한 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다’라는 쓰임의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반증’과 ‘방증’은 성인도 자주 헷갈립니다. 반증은 어떤 주장이 옳지 않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고, 방증은 주변 사실로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입니다. 뜻만 외우면 금방 섞입니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증명한다’는 느낌, ‘옆에서 도와 증명한다’는 느낌을 잡으면 오래 갑니다. 이런 식으로 단어의 한자, 쓰임, 예문이 함께 제시된 책은 문해력에 직접 도움이 됩니다.
아이에게 맞는 책은 학년표보다 반응을 보면 압니다
학년별 권장 도서 목록은 참고할 만합니다. 다만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도 어떤 아이는 인물 이야기를 잘 읽고, 어떤 아이는 과학 설명문에서 더 집중합니다. 또 어떤 아이는 이야기책은 술술 읽지만 사회 교과서 문장은 어려워합니다. 문해력은 과목과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드러납니다.
책을 고른 뒤에는 아이 반응을 살펴야 합니다. 한 쪽을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가 반복되면 책이 너무 어렵거나 읽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겁니다. 이때 “집중해서 읽어”라고 말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한 문단만 놓고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지 표시하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중심 문장에 밑줄을 긋고, 모르는 낱말은 바로 사전을 찾기보다 앞뒤 문장으로 먼저 짐작하게 합니다.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책의 난도를 조금씩 올릴 수 있습니다.
초등은 생활 어휘와 설명문을 함께
초등학생에게는 생활 어휘가 풍부한 책이 좋습니다. ‘절약’, ‘배려’, ‘책임’, ‘관찰’ 같은 말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 문장 속에서는 꽤 넓게 쓰입니다. 여기에 과학, 역사, 사회 주제를 다룬 짧은 설명문을 섞으면 교과 문해력까지 같이 자랍니다.
중학생은 주장과 근거를 읽는 책이 필요합니다
중학생부터는 글의 태도가 중요해집니다. 글쓴이가 주장하는지, 설명하는지, 비교하는지, 비판하는지 읽어야 합니다. 이때 논설문과 칼럼, 짧은 비문학 지문을 다룬 책이 도움이 됩니다. 단, 해설이 답만 알려주는 책보다 왜 그 문장이 근거가 되는지 설명하는 책이 좋습니다.
책 한 권보다 중요한 것은 읽은 뒤의 대화입니다
문해력은 혼자 조용히 책상에 앉아 생기기도 하지만, 말로 꺼내는 순간 더 단단해집니다. 읽은 내용을 세 문장으로 말하게 하면 아이가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금방 보입니다. “주인공이 착했어요”에서 멈추는 아이와 “주인공은 처음엔 자기 이익만 생각했지만, 사건을 겪으면서 책임을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읽기는 다릅니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루 10분이면 됩니다. 한 문단을 읽고 제목을 붙여 보게 하거나, 모르는 단어 하나를 골라 예문을 만들게 하거나, 글쓴이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짧게 말하게 하면 됩니다. 이때 맞고 틀림을 빨리 판정하기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묻는 것이 좋습니다. 문해력은 정답을 맞히는 기술만이 아니라 생각의 길을 말로 세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문해력 키우기 책은 결국 아이가 글 앞에서 덜 겁먹게 해 주는 도구여야 합니다. 어려운 글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책보다, 낱말의 뜻을 문장 속에서 잡게 하고 문단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며 자기 말로 다시 꺼내게 하는 책이 오래 남습니다. 저는 책을 고를 때 늘 그 점을 먼저 봅니다. 글을 읽는 아이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지는 순간, 문해력은 이미 자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