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 왜 ‘드리다’만 붙이면 어색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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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임말, 왜 ‘드리다’만 붙이면 어색해질까요?

얼마 전 학부모 상담 전화를 받았는데, 한 학생이 옆에서 어머니께 “선생님께 말씀드려 봤어?”라고 묻더군요. 자연스러운 말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는 “엄마께 밥 드렸어?”라는 문장이 나왔습니다. 이때는 뭔가 걸립니다. ‘드리다’가 들어갔으니 높인 말 같지만, 실제로는 음식의 주체와 받는 사람 관계가 꼬였기 때문입니다. 높임말은 단어를 공손하게 바꾸는 기술만이 아닙니다. 누가 행동하는지, 누구를 높이는지,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함께 움직이는 문법입니다.

높임말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느껴질까요?

우리말 높임법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높일 대상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어에서 공손함은 주로 표현의 완곡함이나 please 같은 말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문장 안에서 사람의 관계를 꽤 촘촘하게 표시합니다. ‘아버지가 오신다’,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제가 설명해 드릴까요?’ 같은 문장을 보면 높이는 방향이 조금씩 다릅니다.

국어 문법에서는 보통 주체 높임, 객체 높임, 상대 높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름은 딱딱하지만 실제 말에서는 늘 쓰는 방식입니다. 주체 높임은 행동하는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오신다’에서 오는 사람인 아버지를 높입니다. 객체 높임은 행동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높입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렸다’에서는 말하는 행위의 대상인 아버지를 높입니다. 상대 높임은 듣는 사람을 높이는 것입니다. ‘갑니다’, ‘가요’, ‘가’의 차이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은 이 세 가지가 한 문장 안에서 섞일 때입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는 자연스럽습니다. 선생님이 주체이니 ‘주셨습니다’로 높입니다. 반대로 “제가 선생님께 설명해 주었습니다”라고 하면 어색합니다. 선생님이 설명을 받는 대상이므로 ‘설명해 드렸습니다’가 알맞습니다. 높임말은 높임 표현을 많이 붙인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높이는 방향이 맞아야 자연스럽습니다.

‘드리다’와 ‘주시다’는 서로 방향이 다릅니다

‘드리다’와 ‘주시다’는 둘 다 공손해 보이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드리다’는 내가 윗사람에게 무엇을 하거나 줄 때 씁니다. “선생님께 책을 드렸다”,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처럼 말이지요. 반대로 ‘주시다’는 윗사람이 나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 줄 때 자연스럽습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주셨다”, “할머니께서 용돈을 주셨다”처럼 씁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제게 설명해 드렸습니다”는 높임이 충돌합니다. 선생님이 설명하는 주체라면 ‘설명해 주셨습니다’가 맞습니다. ‘드리다’는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향하는 말인데, 이 문장에서는 선생님이 행동하고 있으니 방향이 맞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저는 이럴 때 화살표를 그려 보게 합니다. 행동이 누구에게서 누구에게 가는지 표시하면 꽤 쉽게 풀립니다.

  • 제가 선생님께 자료를 드렸습니다.
  • 선생님께서 저에게 자료를 주셨습니다.
  • 제가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 할머니께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조심할 말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은 남의 말을 높일 때도 쓰고, 자기 말을 낮추어 공손하게 이를 때도 씁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는 선생님의 말을 높인 표현입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는 내 말을 낮추어 상대를 높이는 표현입니다. 같은 단어가 양쪽에서 쓰이니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뜻보다 관계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계시다’와 ‘있으시다’도 아무 데나 붙이면 안 됩니다

높임말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 ‘계시다’입니다. “할머니가 집에 계신다”는 자연스럽습니다. ‘있다’의 높임말로 ‘계시다’를 쓴 것이지요. 그런데 “책이 책상 위에 계십니다”라고 하면 이상합니다. 책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안내 방송이나 매장 문구에서 “상품이 준비되어 계십니다” 같은 말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지나친 높임입니다. 상품을 높인 꼴이 됩니다.

사람을 높일 때도 문맥을 봐야 합니다. “아버지는 병원에 계십니다”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감기가 계십니다”는 어색합니다. 감기는 아버지가 아니라 병의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버지는 감기가 있으십니다”보다 “아버지께서 감기에 걸리셨습니다”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무조건 ‘있으시다’를 붙인다고 말이 정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비스 현장에서 많이 들리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도 같은 문제입니다. 커피가 나온 것이지, 커피가 높임을 받을 사람은 아닙니다. 손님을 높이려는 마음은 이해됩니다. 다만 표현으로는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가 더 정확합니다. 상대 높임은 이미 ‘나왔습니다’의 종결어미에 들어 있습니다. 물건까지 높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높임의 기준은 달라집니다

아이들이 자주 묻는 것이 가족 높임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직 안 왔어요”라고 해야 할까요, “아버지께서 아직 안 오셨어요”라고 해야 할까요. 전통적인 높임법에서는 듣는 사람인 할아버지보다 아버지가 낮은 위치이므로,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를 높이지 않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 문법 설명에서는 “아버지가 아직 안 왔습니다”가 더 적절하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언어생활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가정에서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아버지께서 오셨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것을 무조건 틀렸다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어는 사회의 예절 감각을 따라 움직입니다. 다만 시험이나 문법 설명에서는 압존법이라는 기준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압존법은 듣는 사람을 기준으로, 그보다 낮은 사람은 높이지 않는 방식입니다. 회사에서 사장에게 “부장님이 오셨습니다”보다 “부장이 왔습니다”가 전통적 기준에 가깝다고 설명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실제 직장 언어에서는 “부장님께서 오셨습니다”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도 많습니다. 국어 수업에서는 이 차이를 분명히 알려 주는 편이 좋습니다. 규범의 설명과 실제 사용의 변화가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언어가 박제된 규칙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기록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높임말을 고칠 때는 단어보다 관계를 먼저 보세요

높임말을 바르게 쓰려면 ‘공손한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문장 속 관계를 보는 습관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첫째,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둘째, 그 행동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 질문에 답하면 ‘오시다’, ‘드리다’, ‘주시다’, ‘계시다’가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 훨씬 선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선생님께 문제를 여쭤보았다”는 자연스럽습니다. ‘묻다’의 높임 표현인 ‘여쭈다’를 써서, 질문을 받는 선생님을 높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문제를 여쭤보셨다”는 이상합니다. 선생님이 나에게 묻는 상황이라면 “선생님께서 저에게 문제를 물어보셨다”가 낫습니다. ‘여쭈다’는 내가 윗사람에게 묻는 방향을 가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높임말 실수는 대개 무례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공손하게 말하려다 생깁니다. 그래서 “커피 나오셨습니다”, “상품이 품절되셨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같은 표현이 퍼집니다. 상대를 존중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보입니다. 다만 한국어의 높임은 마음만큼이나 방향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높여야 할 자리에 사물을 높이면 말이 휘청거립니다.

말은 사람 사이에서 생깁니다. 높임말도 결국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장치입니다. 너무 낮추면 거칠고, 너무 높이면 어색합니다. 문법을 배운다는 것은 딱딱한 규칙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 거리감을 조금 더 섬세하게 읽는 일에 가깝습니다. 높임말이 어려운 이유도 거기에 있고, 또 우리말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높임말, 왜 ‘드리다’만 붙이면 어색해질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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