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은 많이 읽으면 저절로 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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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많이 읽으면 저절로 늘까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짧은 안내문을 읽히면 낱말은 모두 소리 내어 읽는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놓치는 일이 있습니다. 16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며 자주 본 장면입니다. 글자를 읽는 일과 글의 뜻을 붙잡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거리가 있습니다.

문해력을 키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읽는 양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같은 문장을 세 번 읽고도 뜻이 흐릿하다면, 페이지를 더 넘기기 전에 어디서 이해가 끊겼는지 찾는 편이 낫습니다. 낱말 하나 때문인지, 문장 구조 때문인지, 앞뒤 맥락 때문인지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아는 글자와 아는 말은 다릅니다

‘접수일 익일부터 신청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겠습니다. ‘익일’을 막연히 ‘언젠가 다음에’로 읽으면 신청 시점을 잘못 잡을 수 있습니다. 익일은 기준이 되는 날의 다음 날입니다. 접수일이 월요일이라면 여기서 말하는 익일은 화요일이지요. 다만 실제 신청 가능 여부는 안내문에 적힌 운영 시간이나 휴일 규정까지 함께 읽어야 알 수 있습니다.

모르는 말을 만났을 때 곧바로 사전의 첫 번째 뜻만 가져오는 습관도 조심할 만합니다. ‘반려’가 서류 안내문에 나오면 제출한 서류를 받아들이지 않고 돌려보낸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반려동물의 ‘반려’와 글자는 같지만 문맥에서 쓰인 뜻은 다릅니다. 낱말의 뜻은 문장 안에서 골라야 합니다.

저는 학생에게 모르는 말에 밑줄을 긋고, 먼저 앞뒤 문장만으로 뜻을 짐작해 보라고 합니다. 그다음 사전에서 뜻을 확인하고 원래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뜻 외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 문장에서는 왜 이 뜻인가’까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사전은 답을 대신 읽어 주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짐작을 검토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말의 뿌리를 알면 뜻이 오래 남습니다

‘심심한 사과’를 보고 ‘지루한 사과’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심심하다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말과 다릅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은 ‘매우 깊다’는 뜻의 한자 ‘심심(甚深)’에서 왔습니다. 사과의 마음이 깊다는 뜻이지요. 소리만 듣고 익숙한 뜻을 붙이면 글쓴이의 의도와 멀어집니다.

‘제고’와 ‘재고’도 소리는 비슷하지만 뜻을 만드는 한자가 다릅니다. ‘문해력을 제고하다’의 제고(提高)는 높인다는 뜻이고, ‘재고를 확인하다’의 재고(在庫)는 쌓아 둔 물건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독서 능력을 재고한다’라고 쓰면, 다시 생각한다는 뜻의 ‘재고(再考)’로 읽힐 수 있습니다. 같은 소리와 글자 모양에 기대기보다 그 문장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자를 많이 알아야만 읽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 보는 말을 모두 풀이하려 들면 읽기가 금세 고단해집니다. 다만 글의 뜻을 좌우하는 낱말이라면 잠깐 멈춰 볼 가치가 있습니다. 왜 그런 뜻이 되었는지 알게 된 말은 단순히 외운 말보다 다음 글에서 다시 알아보기 쉽습니다.

문장에서 빠뜨린 조건은 없는지 봅니다

낱말을 다 알아도 문장을 잘못 읽을 수 있습니다. ‘신청자 중 재학생에 한해 참가비를 면제한다’라는 안내에서 중요한 부분은 ‘재학생에 한해’입니다. 신청자 모두가 면제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 ‘에 한해’처럼 범위를 좁히는 표현을 흘려 읽으면 글의 요지가 달라집니다.

‘기한 내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선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도 찬찬히 읽어 볼 만합니다. 조건은 ‘기한 내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이고, 결과는 ‘제외될 수 있다’입니다. 여기서 ‘수 있다’는 반드시 제외된다고 단정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반대로 가볍게 넘겨도 된다는 뜻도 아니지요. 글에 적힌 만큼만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긴 문장이 버거울 때 저는 학생들에게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리게 합니다. 하나는 ‘누가 또는 무엇이’, 다른 하나는 ‘어떻게 된다’에 표시합니다. 그 사이에 놓인 조건과 예외를 따로 찾습니다. 문장을 토막 내면 길이에 눌리지 않고 뜻의 연결을 볼 수 있습니다. 기사 제목처럼 짧은 글에서도 이 방법은 쓸 만합니다.

많이 읽기 전에 제대로 읽은 한 문장을 남깁니다

읽은 뒤 내용을 자기 말로 한 문장만 바꿔 쓰게 하면 이해한 부분과 놓친 부분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재학생에 한해 참가비 면제’를 읽고 ‘신청하면 누구나 무료’라고 적었다면, 어디서 범위를 넓혀 읽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틀린 답을 지우는 데서 끝내지 않고 원문으로 돌아가 ‘에 한해’를 다시 보게 하는 까닭입니다.

  • 읽다가 뜻이 막히는 낱말 하나를 고릅니다.
  • 앞뒤 문장으로 뜻을 짐작한 뒤 사전 뜻과 맞춰 봅니다.
  • 조건과 결과를 표시하고, 글의 뜻을 자기 말로 한 문장에 적습니다.

매번 긴 독후감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안내문 한 문단이나 기사 한 단락을 읽고 이 세 가지를 해도 충분합니다. 익숙해지면 밑줄과 메모 없이도 낱말의 뜻, 조건의 범위, 글쓴이의 판단을 따로 보게 됩니다. 그때 읽는 속도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모르는 부분에서 멈추되, 아는 부분까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게 되니까요.

문해력은 어려운 책을 몇 권 읽었는지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눈앞의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읽고, 모르는 말을 확인하고, 자신의 짐작을 고칠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한 문장을 정확히 이해했던 경험이 쌓이면 다음 글 앞에서 덜 막막해집니다. 저는 학생이 책장을 빨리 넘기는 모습보다, 전에 놓쳤던 말 하나를 스스로 짚어 내는 순간이 더 반갑습니다.

문해력은 많이 읽으면 저절로 늘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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