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어원은 왜 딤채에서 시작할까요?

수업 시간에 ‘김치는 왜 김치라고 부르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학생은 바다에서 나는 김과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지요. 소리는 같지만, 김치의 ‘김’은 그 김에서 온 말이 아닙니다. 옛 문헌에 남은 이름을 따라가면 우리가 먹는 김치와 지금의 이름이 서로 다른 속도로 변해 왔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침채’는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김치 어원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침채(沈菜)’입니다. ‘침’은 가라앉거나 담근다는 뜻이고, ‘채’는 채소를 뜻합니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국물에 담가 두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름이 한결 쉽게 이해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이 낱말을 김치의 유래와 연결해 설명합니다.
다만 ‘침채’를 오늘날 글자 그대로 읽은 소리가 어느 날 곧장 ‘김치’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옛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딤채’, ‘짐채’처럼 지금은 낯선 형태가 보입니다. 국립국어원에 실린 어원 글은 ‘딤채’에서 ‘짐채’, ‘짐츼’를 거쳐 ‘김치’에 이르는 흐름을 제시합니다. 한자 표기는 말의 뜻을 짚는 데 도움이 되고, 당시의 한글 표기는 사람들이 쓰던 소리를 짚는 데 도움이 됩니다. 둘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구별할 점이 있습니다. ‘침채’라는 한자 표기가 보인다고 해서 옛사람들이 언제나 ‘침채’라고 발음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글로 적은 방식과 입으로 부른 방식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옛말의 변화를 볼 때 한자 두 글자만 외우기보다 실제로 남아 있는 표기를 나란히 놓아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옛 문헌에는 김치가 어떻게 적혔을까요?
조선 전기의 기록으로 가 보겠습니다. 1518년의 『벽온방』에는 무로 만든 ‘딤채국’이 나옵니다. 1525년의 『훈몽자회』도 김치에 해당하는 한자 ‘저(菹)’를 풀이하면서 ‘딤채’라는 말을 적었습니다. 적어도 16세기 초에는 지금의 ‘김치’와 소리가 다른 이름이 쓰였음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17세기 『두창경험방』에서는 ‘짐채’ 형태가 보이고, 18세기 『동문유해』에는 ‘침채’ 형태도 나타납니다. 이 기록들을 연도순으로 읽되, 모든 사람이 한 시기에 똑같은 소리로 바꾸어 말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역과 문헌에 따라 옛 형태가 함께 쓰일 수 있고, 적는 방식도 달랐으니까요. ‘딤채 → 짐채 → 김치’는 변화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 길잡이지, 모든 옛 표기를 빠짐없이 담은 한 줄짜리 연대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첫소리가 왜 ‘딤’에서 ‘짐’, 다시 ‘김’으로 달라졌을까요? 어원 연구에서는 소리가 변하고 그 변화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풀이합니다. 다만 각 단계의 정확한 원리를 짧은 공식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학자의 음운 변화 설명이 소개되어 있지만, 우리가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출발점은 문헌마다 서로 다른 표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와 ‘디히’도 김치의 옛 이름일까요?
김치를 가리키는 말의 역사는 ‘딤채’ 하나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어원 설명에는 더 이른 고유어 ‘디히’가 나오며, 뒤에 등장한 ‘딤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한 음식을 부르는 이름이 바뀐 셈입니다. 음식 자체가 그때 처음 생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지(漬)’와 ‘저(菹)’라는 이름도 전합니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글에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일을 가리키는 ‘염지(鹽漬)’가 보입니다. 여기서 ‘지’는 담그거나 절인다는 뜻과 닿아 있습니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 ‘저’가 쓰인 사실까지 보면, 같은 음식 문화에 여러 이름이 겹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 문헌에서 ‘김치’라는 두 글자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대에 절인 채소를 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김치를 ‘지’나 ‘짐치’라고 부릅니다. 이런 말은 익숙한 표준 표기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버릴 대상이 아닙니다. 오래된 말의 흔적을 간직한 지역어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학교 글쓰기나 일반적인 공문처럼 표준어를 쓰는 자리에서는 ‘김치’라고 적습니다. ‘짐치’를 곧바로 개인의 실수로만 보기 전에, 그 말이 쓰인 지역과 맥락을 살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옛 김치도 지금처럼 빨갰을까요?
이름을 알아두면 음식의 모습까지 떠올리기 쉬운데, 여기서는 잠깐 멈춰야 합니다. 16세기 문헌의 ‘딤채’를 오늘날의 빨간 배추김치와 똑같이 그리면 시대가 뒤섞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도 소금물에 담그거나 다른 향신료를 써서 채소를 저장했습니다. 17세기 무렵의 조리 기록에도 오늘날과 다른 방식의 김치가 보입니다.
그래서 ‘김치 어원은 고춧가루에 물든 배추에서 나왔다’는 설명은 맞지 않습니다. 이름의 뿌리로 거론되는 ‘침채’는 채소를 담그고 절이는 방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재료와 양념이 달라지는 동안 이름도 사람들의 입에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19세기에 들어 오늘날과 가까운 김치가 자리 잡았다는 설명 역시, 오래된 이름과 음식의 현재 모습을 구별해서 읽게 해 줍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침채, 딤채, 짐채, 김치’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게 합니다. 낯선 ‘딤채’가 단지 외울 낱말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음식의 옛 이름으로 들리는 순간이 있거든요. 김치 한 접시에도 채소를 오래 먹으려던 생활의 지혜와 여러 세대가 바꾸어 부른 말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