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키우기 초등 아이와 어디서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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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키우기 초등 아이와 어디서 시작할까요?

얼마 전 한 아이가 안내문을 또박또박 읽고도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준비물은 금요일까지 제출’이라는 문장에서 ‘제출’이 무엇인지 몰랐던 겁니다.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일과 문장의 뜻을 알아듣는 일은 이렇게 다릅니다. 초등 아이의 문해력이 걱정될 때 책을 몇 권 읽었는지보다 먼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아이가 낱말을 이해하고, 문장을 연결하고, 읽은 내용을 자기 말로 옮길 수 있는지입니다.

글자는 읽는데 뜻이 남지 않는다면

수업 시간에 ‘밑줄 친 문장의 까닭을 쓰세요’라고 하면, 내용을 알고도 답을 못 쓰는 아이가 있습니다. ‘까닭’을 ‘이유’로 바꿔 말해 주면 그제야 손이 움직이지요. 문제를 푸는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문제 속 낱말에서 막힌 경우입니다. 집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책 한 쪽을 막힘없이 읽은 뒤 ‘그래서 누가 무엇을 했어?’라고 물었는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읽는 속도보다 이해 과정을 살필 때입니다.

처음부터 긴 독후감을 쓰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문단을 읽고 ‘누가 나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가지만 말해도 좋습니다. 답이 흐릿하면 해당 문장으로 돌아가 함께 찾습니다. 아이가 책 밖의 기억으로 짐작한 것인지, 글 안에서 단서를 찾은 것인지 구별하는 연습이 됩니다.

낱말은 뜻풀이보다 쓰이는 장면이 먼저입니다

어휘를 가르칠 때 저는 뜻을 한 줄로 외우게 하기 전에 그 말이 놓인 문장을 보여 줍니다. 가령 ‘물을 아껴 쓰자’에서 ‘아끼다’는 물을 적게,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친구를 아끼다’에서는 친구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읽어야 하지요. 같은 낱말도 앞뒤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 이해가 달라집니다. 사전의 뜻을 그대로 베끼는 연습만으로는 이런 차이를 잡기 어렵습니다.

모르는 낱말을 만나면 세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먼저 앞뒤 문장을 읽고 뜻을 짐작합니다. 그다음 아이가 짐작한 까닭을 말하게 합니다. 사전의 뜻이나 다른 문장을 확인합니다. ‘맞혔어?’보다 ‘어느 문장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가 더 좋은 질문입니다. 틀린 짐작도 단서를 다시 읽는 계기가 됩니다.

말의 모양을 살피는 일도 도움이 됩니다. ‘재사용’의 ‘재’는 다시, ‘사용’은 쓰는 일입니다. 그래서 재사용은 한 번 쓴 물건을 다시 쓰는 일이지요. ‘재건’, ‘재검토’에서도 ‘재’가 어떤 일을 다시 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낱말 하나를 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처음 보는 말의 뜻까지 짐작할 실마리가 생깁니다. 다만 모든 낱말을 글자별로 억지로 쪼개지는 않습니다. 아이에게는 실제 문장 속 뜻이 먼저입니다.

읽은 내용을 자기 말로 바꾸게 합니다

문해력을 키운다며 책을 읽고 곧바로 문제집을 펴는 집이 많습니다. 확인 문제도 필요하지만, 선택지만 고르다 보면 아이가 무엇을 이해했는지 듣기 어렵습니다. 한 쪽을 읽은 뒤 ‘이 장면을 학교에서 있었던 일처럼 말해 줄래?’라고 해 보십시오. 글의 표현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고도 사건의 순서를 설명한다면 내용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설명문은 조금 다르게 다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조건을 읽었다면 ‘햇빛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처럼 글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묻습니다. 아이의 답이 글과 다를 때는 바로 정답을 말하기보다 ‘그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이 어디야?’ 하고 문장을 다시 찾게 합니다. 글에 적힌 사실과 자기 생각을 나누는 연습입니다.

쓰기까지 연결하려면 세 문장으로 충분합니다. 첫 문장에는 읽은 내용에서 알게 된 사실, 둘째 문장에는 그 사실을 보여 주는 장면이나 근거, 셋째 문장에는 자기 생각을 적게 합니다. ‘재미있었다’에서 멈춘 글도 ‘주인공이 약속을 지키려고 다시 돌아온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로 구체화됩니다. 길이보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루 십오 분을 어떻게 나눌까요?

시간을 정해 두고 싶다면 처음에는 하루 십오 분 정도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앞의 십 분은 아이가 읽고, 뒤의 오 분은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 숫자가 모든 아이에게 맞는 기준은 아닙니다. 한 쪽을 읽고도 이야기가 활발하다면 그날은 거기서 멈춰도 됩니다. 반대로 글이 너무 어려워 낱말마다 멈춘다면 분량을 줄이거나 함께 읽는 편이 낫습니다.

책은 아이가 혼자 읽을 수 있는 것과 어른이 함께 읽어 줄 것을 구분하면 좋습니다. 혼자 읽는 책에서 매 문장마다 설명이 필요하면 읽기 자체가 버거워집니다. 함께 읽는 책에서는 조금 낯선 낱말이 나와도 대화로 뜻을 풀 수 있지요. 만화, 이야기책, 안내문, 요리법처럼 글의 종류를 바꾸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생활에는 줄거리를 따라가는 글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이의 답이 짧다고 곧장 문해력이 낮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낯선 주제라 말할 재료가 없을 수도 있고, 질문이 너무 넓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 어땠어?’보다 ‘주인공이 왜 돌아갔을까?’가 대답하기 쉽습니다. 아이가 한 문장을 근거로 말하고, 어제 몰랐던 낱말을 오늘 다른 문장에서 알아본다면 읽기는 조금씩 깊어지고 있는 겁니다. 저는 그 변화를 책의 권수보다 오래 기억합니다.

문해력 키우기 초등 아이와 어디서 시작할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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