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어휘는 왜 외워도 자꾸 헷갈릴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청산별곡」의 ‘멀위’를 보고 ‘멀리 있는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소리를 따라 짐작한 답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다음 말인 ‘ᄃᆞ래’를 다래로 읽자 앞말도 풀렸습니다. 멀위는 머루입니다. 두 낱말이 함께 산에서 얻는 열매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학생은 그 구절을 훨씬 오래 기억했습니다.
고전시가 어휘가 어려운 까닭은 낯선 말이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지금과 다른 표기, 노래에 맞춘 말투,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뜻이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단어 하나에 뜻 하나를 붙여 외우면 다음 작품에서 다시 막히기 쉽습니다. 말이 놓인 자리까지 읽어야 합니다.
옛 표기를 지금의 말과 이어 읽기
「청산별곡」의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옛 글자의 모양에 먼저 놀라지만, 소리 내어 읽고 나란히 놓인 말을 보면 익숙한 이름이 드러납니다. 머루와 다래는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열매입니다. 화자가 청산에서 무엇을 먹으며 살겠다고 하는지 알면, ‘청산에 살어리랏다’도 막연한 풍경 묘사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옛 표기를 볼 때마다 지금의 글자로 기계적으로 바꾸면 곤란합니다. ‘ᄃᆞ래’를 다래와 이어 읽는 일과, 작품 속 모든 글자에 같은 바꾸기 규칙을 적용하는 일은 다릅니다. 먼저 앞뒤에 어떤 말이 놓였는지 봐야 합니다. 열매 이름 둘이 ‘랑’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 여기서는 좋은 단서입니다.
같은 작품의 ‘시름’은 표기가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뜻을 놓치면 장면이 달라집니다. ‘시름 한 나도’에서 시름은 걱정과 근심입니다. 새가 울고, 시름 많은 화자도 운다는 흐름으로 읽어야 두 울음이 겹쳐집니다. 고전시가 어휘를 공부할 때는 낯선 글자뿐 아니라 익숙한 글자도 문장 속에서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줄 전체로 뜻을 붙잡기
「가시리」의 첫머리 ‘가시리 가시리잇고’를 보면 학생들이 제목부터 막히곤 합니다. ‘가시’라는 소리만 듣고 가시가 돋은 물건을 떠올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뒤이어 ‘버리고 가시리잇고’가 나옵니다. 떠나려는 상대에게 거듭 묻는 말임이 드러납니다. ‘가시리잇고’는 지금 말로 ‘가시겠습니까’ 정도로 읽으면 문장의 방향이 잡힙니다.
그 뒤의 ‘날러는 엇디 살라ᄒᆞ고’도 앞의 물음과 이어 읽어야 합니다. 자신을 두고 떠나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는 마음입니다. 낱말을 따로 적어 ‘엇디=어찌’만 외우면 문장은 풀려도 절박함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왜 묻는지까지 붙여 읽으면 되풀이되는 ‘가시리’가 단순한 반복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더 조심스러운 말은 ‘선ᄒᆞ면’입니다. 떠나는 이를 붙잡고 싶지만, 그 마음이 상해 다시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대목에 놓여 있습니다. 흔히 ‘서운해하면’의 뜻으로 풀지만, 옛말의 세부 의미에는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이럴 때 풀이 하나를 유일한 뜻처럼 못 박기보다 앞뒤 행동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화자는 붙잡을 마음이 없어서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찾기 전에 노래의 소리를 듣기
「청산별곡」에서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를 만나면 모든 음절에 현대어 뜻을 붙이려 애쓰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내용 설명보다 노래의 리듬을 잇는 역할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고전시가의 여음에 뜻을 지닌 말과 소리 중심의 구절이 함께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작품마다 하는 일이 다르니 후렴을 모두 ‘뜻 없는 말’로 처리해서도 안 됩니다.
「가시리」에는 이별을 노래하는 구절 뒤에 ‘위 증즐가 대평성대’라는 후렴이 되풀이됩니다. ‘대평성대’는 태평한 세상을 뜻하니, 떠나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마음과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노래는 민간의 노래가 궁중 음악으로 전해지는 과정과 함께 읽힙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며 후렴이 더해졌을 가능성을 설명합니다. 후렴의 말뜻과 노래에서 맡는 자리를 구별하면 그 어색함도 읽을 단서가 됩니다.
같은 말도 작품의 자리에서 뜻이 달라집니다
‘님’은 누구일까요? 「가시리」를 이별 노래로 읽을 때는 떠나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 노래가 궁중에서 불린 맥락을 살피면 임금을 가리키는 대상으로 읽는 해석도 나옵니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지워 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작품이 어떤 자리에서 불렸는지에 따라 같은 말의 가리키는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수업에서는 낯선 어휘에 바로 뜻을 적기 전에 세 가지를 묻습니다. 앞뒤에 어떤 말이 붙었는지,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그 구절이 내용을 전하는지 노래의 소리를 잇는지입니다. 「청산별곡」의 멀위는 다래 옆에서 풀리고, 「가시리」의 가시리잇고는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물음 속에서 풀립니다. 답이 곧바로 보이지 않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때는 모르는 부분을 남겨 두되, 확인한 말들로 장면을 먼저 그려 보는 편이 좋습니다. 고전의 말이 낯설어도 그 말에 담긴 걱정과 망설임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