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규정 제22항, 왜 ‘잇솔’보다 ‘칫솔’이 맞을까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칫솔이 맞을까, 잇솔이 맞을까?” 하고 물으면 대개 “칫솔이요”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이유를 물으면 잠깐 조용해집니다. “이를 닦는 솔이니까 잇솔 아닌가요?”라는 말도 꼭 나옵니다. 사실 이 질문은 꽤 좋습니다. 말의 뜻만 보면 ‘잇솔’도 충분히 그럴듯하거든요.
그런데 표준어에서는 ‘칫솔’을 씁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조항이 바로 표준어 규정 제22항입니다. 이 조항은 한자어가 더 고급이라서 고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말을 더 널리 써 왔는지, 또 어떤 말이 생활 속에서 힘을 잃었는지를 따지는 규정입니다.
표준어 규정 제22항은 어떤 조항일까요?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규정에서 제22항은 ‘어휘 선택의 변화’에 들어 있습니다. 발음이 달라져서 표준어를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말 가운데 어느 말이 현실 언어에서 더 살아남았는지를 보는 조항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생명력을 잃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원칙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생명력’입니다. 문법책에 남아 있는 말인지가 아니라, 실제 말생활에서 사람들이 계속 쓰는 말인지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잇솔’은 말의 구조만 보면 아주 투명합니다. ‘이’와 ‘솔’이 만난 말이니 뜻을 바로 짐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칫솔’이 훨씬 널리 쓰였습니다. 그래서 규정은 ‘잇솔’을 버리고 ‘칫솔’을 표준어로 삼았습니다. 표준어가 언제나 말의 어원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쪽을 고르는 것은 아닙니다.
‘칫솔’은 왜 한자어 계열일까요?
‘칫솔’의 ‘치’는 한자 ‘齒’, 곧 이를 뜻하는 말에서 왔습니다. 여기에 우리말 ‘솔’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한자어만으로 이루어진 말은 아니지만, 앞부분이 한자어 계열입니다. 반면 ‘잇솔’은 고유어 ‘이’에 ‘솔’이 붙은 꼴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대목을 설명할 때 저는 칠판에 두 낱말을 나란히 적습니다. ‘잇솔’은 뜻이 투명하고, ‘칫솔’은 실제 쓰임이 강합니다. 표준어 규정 제22항은 이 둘이 맞붙었을 때 현실에서 더 널리 쓰이는 한자어 계열을 표준어로 삼은 사례라고 보면 됩니다.
비슷한 예로는 ‘윤달’과 ‘군달’이 있습니다. ‘군달’은 덤으로 더 있는 달이라는 느낌이 살아 있는 고유어 계열 표현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는 말은 거의 ‘윤달’입니다. ‘윤’은 한자 ‘閏’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표준어는 ‘윤달’입니다.
제22항의 예시는 생각보다 생활 가까이에 있습니다
표준어 규정 제22항에는 낯선 말도 있지만, 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고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칫솔: ‘잇솔’이 아니라 ‘칫솔’이 표준어입니다.
- 윤달: ‘군달’보다 ‘윤달’이 표준어로 굳었습니다.
- 양파: ‘둥근파’가 아니라 ‘양파’가 표준어입니다.
- 총각무: ‘알무’나 ‘알타리무’가 아니라 ‘총각무’가 표준어입니다.
- 산줄기: ‘멧줄기’나 ‘멧발’보다 ‘산줄기’가 표준어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말이 ‘총각무’입니다. 시장이나 마트에서는 아직도 ‘알타리무’라는 말을 자주 봅니다. 실제 사용만 놓고 보면 왜 표준어가 아닌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상담에서도 이 말에 대한 질문이 꾸준히 나옵니다. 현재 규범상으로는 ‘총각무’가 표준어이고, ‘알타리무’는 표준어로 인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사례는 표준어 규정이 현실과 완전히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도 보여 줍니다. 표준어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반영하지만, 누군가 많이 쓴다고 바로 다음 날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쓰임, 사전 처리, 심의 절차가 함께 움직입니다.
제21항과 비교하면 더 잘 보입니다
표준어 규정 제22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앞 조항인 제21항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제21항은 반대 방향입니다.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 단어가 힘을 잃으면 고유어 계열을 표준어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까막눈’은 표준어이고,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 표현은 표준어로 삼지 않습니다. ‘구들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규정은 한자어를 무조건 밀어 주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사람들의 입에 더 자연스럽게 남았는지를 봅니다.
그래서 제22항을 “한자어가 맞고 고유어는 틀리다”로 외우면 금방 헷갈립니다. 방향은 하나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유어가 살아남고, 어떤 경우에는 한자어 계열이 살아남습니다. 표준어 규정은 그 결과를 일정한 기준으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맞춤법보다 먼저 ‘말의 세력’을 보면 덜 헷갈립니다
표준어를 공부할 때 많은 학생이 표 하나를 통째로 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칫솔, 윤달, 양파, 총각무’를 따로따로 외우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하면 훨씬 편합니다. 예전에는 뜻이 잘 보이는 고유어 표현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이 더 많이 쓰는 말이 따로 굳었다는 흐름입니다.
물론 규범과 현실 사이에는 늘 간격이 있습니다. ‘알타리무’처럼 실제 생활에서 많이 들리는 말도 있고, 지역이나 세대에 따라 익숙한 말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표기나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험, 공문서, 교재, 신문 기사처럼 표준어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현행 표준어를 따라야 합니다.
저는 이런 조항을 가르칠 때 “틀렸으니 고쳐라”보다 “왜 그 말이 표준어 자리를 얻었는지 보자”라고 말합니다. 말은 사람이 쓰면서 굳고, 규정은 그 굳어진 자리를 뒤따라 확인합니다. 표준어 규정 제22항은 그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조항입니다. 그래서 ‘잇솔’보다 ‘칫솔’이 맞다는 말은 단순한 암기 문제가 아니라, 우리말이 시간 속에서 어떤 쪽으로 기울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작은 기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