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뜻하는 순우리말, 왜 이렇게 부드럽게 들릴까요?

사랑이라는 말에도 결이 있습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사랑을 예쁘게 말하는 순우리말은 뭐예요?” 연애 편지를 쓰려던 건 아니고, 수행평가 제목을 정하다가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이 꽤 좋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지만, 정작 그 말이 가진 결을 나누어 보지는 않거든요.
사실 ‘사랑’ 자체도 오래전부터 써 온 우리말입니다.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중세국어 자료에도 ‘사랑’ 계열의 말이 보이고, 처음에는 단순한 남녀 간 감정만 뜻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뜻하는 순우리말을 찾을 때는 ‘사랑’의 대체어 하나를 찾기보다, 마음의 방향과 깊이에 따라 다른 말을 골라야 합니다.
‘그리움’은 떨어져 있을 때 생기는 사랑입니다
사랑 순우리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그리움’입니다. 누군가가 눈앞에 없을 때 마음속에서 자꾸 떠오르는 상태이지요. ‘그립다’는 단어는 단순히 보고 싶다는 뜻보다 조금 더 깊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의 두께가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보고 싶다”와 “친구가 그립다”는 비슷하지만 같지 않습니다. 앞의 문장은 지금 만나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고, 뒤의 문장은 함께 보낸 시간이 마음에 남아 있다는 느낌이 큽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사랑의 한 종류입니다. 곁에 없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마음입니다.
문학 작품에서도 이 차이는 자주 나타납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 어머니가 그립다, 지난 시절이 그립다처럼 쓰면 대상이 꼭 연인이 아니어도 됩니다. 이 말에는 정, 기억, 상실감이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글 제목에 ‘사랑’ 대신 ‘그리움’을 쓰면 분위기가 훨씬 차분해집니다.
‘아낌’과 ‘아끼다’는 오래 두고 지키는 마음입니다
‘아끼다’도 사랑과 가까운 순우리말입니다. 다만 이 말은 뜨겁게 좋아한다는 뜻보다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아이를 아낀다”, “책을 아낀다”, “사람을 아낀다”라고 할 때의 느낌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아끼다’가 사람에게도, 물건에게도, 시간에게도 쓰인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감정의 이름이라면, 아낌은 태도에 가깝습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함부로 대하면 아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아끼다’라는 말이 오히려 사랑보다 어려운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다: 마음이 끌리고 소중히 여기다
- 그리워하다: 떨어져 있는 대상을 자꾸 생각하다
- 아끼다: 귀하게 여겨 함부로 하지 않다
- 보듬다: 품에 안듯이 감싸고 돌보다
이 네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사랑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게 보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는 사랑이고, 떨어져 있을 때 마음에 남으면 그리움이고, 오래 지키고 싶으면 아낌이며, 상처 난 마음까지 감싸 주고 싶으면 보듬음입니다.
‘보듬다’는 마음을 품는 말입니다
‘보듬다’는 참 좋은 말입니다. 두 팔로 가만히 안아 주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말은 몸의 동작에서 출발하지만,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옮겨 갑니다. “아이를 보듬다”, “상처를 보듬다”, “서로를 보듬다”처럼 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치다’가 아니라 ‘감싸다’입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보듬는다는 말은 그 사람의 슬픔을 없애겠다고 달려드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 슬픔이 있는 채로 곁에 있어 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듬다’는 성숙한 사랑을 나타낼 때 잘 맞습니다.
반대로 “너를 보듬고 싶다”는 문장은 상황에 따라 조금 무겁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일상 대화보다는 편지, 산문, 문학적인 문장에 더 어울립니다. 말은 뜻만 맞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 맞아야 합니다. 순우리말이 아름답다고 해서 아무 문장에나 넣으면 오히려 어색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을 예쁘게 바꾸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말들
사랑 순우리말을 찾는 분들은 대개 더 예쁜 표현을 원합니다. 그런데 ‘예쁜 말’은 낯선 말이 아니라 정확한 말입니다. 흔하지 않은 단어를 억지로 쓰는 것보다, 상황에 맞는 익숙한 우리말을 고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연인에게 쓰는 글이라면 ‘그대가 그립다’, ‘너를 아낀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 같은 표현이 좋습니다. 가족에게는 ‘늘 마음이 쓰인다’, ‘아껴 주고 싶다’, ‘편히 기대게 해 주고 싶다’가 잘 어울립니다. 친구에게는 ‘네 편이 되어 주고 싶다’처럼 담백한 문장이 더 힘이 있습니다.
- 첫사랑: 처음으로 느낀 사랑
- 풋사랑: 아직 서툴고 여린 사랑
- 짝사랑: 혼자 마음을 품는 사랑
- 참사랑: 거짓 없이 깊은 사랑
- 내리사랑: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사랑
이 가운데 ‘풋사랑’의 ‘풋-’은 덜 익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풋고추, 풋과일처럼 아직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상태이지요. 그래서 풋사랑은 하찮은 사랑이 아닙니다. 서툴지만 싱싱한 사랑입니다. ‘짝사랑’의 ‘짝’은 한쪽이라는 느낌을 살립니다. 서로 마주 선 사랑이 아니라 한쪽에서만 품는 마음이니, 단어 안에 이미 상황이 들어 있습니다.
순우리말을 고를 때는 낯섦보다 자리입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사랑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라며 아주 낯선 단어들이 떠돕니다. 물론 사전에 있는 말도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거나 뜻이 조금 다르게 소개된 경우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샘을 보면 단어의 뜻과 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글을 쓸 때는 사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은 독자가 알아들어야 살아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해서 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가장 흔한 말이 가장 정확합니다. 대신 그 주변에 어떤 말을 놓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랑을 ‘한다’고만 쓰지 말고, 그리워하고, 아끼고, 보듬고, 기다리고, 지켜 주는 마음으로 풀어 쓰면 문장이 훨씬 깊어집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좋은 어휘는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차이를 구별하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뜨거운 마음인지, 오래 남은 마음인지, 조용히 지켜 주는 마음인지에 따라 말이 달라집니다. 그 차이를 알고 고른 단어는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말이 가진 부드러움은 바로 그런 작은 구별에서 살아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