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어휘력이 부족하면 왜 감정 표현이 자꾸 거칠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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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어휘력이 부족하면 왜 감정 표현이 자꾸 거칠어질까요?

아이들이 먼저 잃어버리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친구와 다툰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짜증났어요.” 이유를 물어도 답은 비슷했습니다. “아니, 그냥요. 열받았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니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습니다. 서운함도 있었고, 억울함도 있었고, 민망함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 여러 감정이 전부 ‘짜증’이라는 한 단어 안에 뭉개져 있었던 겁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교실에서 자주 봅니다.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어른들도 “힘들다”, “우울하다”, “빡친다”, “현타 온다” 같은 말 몇 개로 마음을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말이 짧아지면 생각도 같이 짧아집니다. 마음의 어휘력이란 결국 자기 마음을 더 잘게 나누어 알아차리고, 남의 마음도 덜 거칠게 짐작하는 힘입니다.

마음의 어휘력은 감정 이름표가 아닙니다

‘기쁘다, 슬프다, 화나다, 무섭다’ 정도는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그렇게 네 칸짜리 서랍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가 났다고 해도 분노, 서운함, 배신감, 모멸감, 불쾌감, 실망감은 서로 다릅니다. 슬픔도 상실감, 허전함, 외로움, 그리움, 막막함으로 갈라집니다.

예를 들어 “나 화났어”와 “나 무시당한 것 같아서 불쾌했어”는 상대에게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앞의 말은 공격처럼 들리기 쉽고, 뒤의 말은 상황을 설명합니다. 감정을 정확히 부르면 싸움이 조금 늦춰집니다. 늦춰진 그 몇 초가 관계에서는 꽤 큽니다.

국어 수업에서 어휘를 가르칠 때도 저는 뜻풀이만 외우게 하지 않습니다. ‘섭섭하다’와 ‘서운하다’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섭섭하다’에는 기대가 어긋났을 때의 아쉬움이 있고, ‘서운하다’에는 마음을 몰라준 데서 오는 쓸쓸함이 조금 더 묻어납니다. 이런 미세한 차이를 배우면 학생들은 단어를 암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 경험을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감정을 모르면 행동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마음의 어휘력이 부족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감정과 행동이 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억울하면 바로 따지고, 민망하면 웃어넘기고, 불안하면 공격적으로 말합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니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겁니다.

상담이나 교육 현장에서도 감정 어휘를 넓히는 활동을 자주 씁니다. ‘좋다’와 ‘싫다’ 사이에 훨씬 많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출발입니다. 만족스럽다, 안도된다, 뿌듯하다, 홀가분하다, 찜찜하다, 초조하다, 부담스럽다, 위축된다. 이런 말을 하나씩 배워 두면 마음이 갑자기 세련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상태를 조금 덜 헷갈리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드는 예가 있습니다. 시험을 망친 뒤 “우울해요”라고만 말하는 학생에게 다시 묻습니다. 점수가 아쉬운 건지, 부모님 반응이 걱정되는 건지, 친구와 비교되어 창피한 건지, 공부한 만큼 안 나와 허탈한 건지 말입니다. 네 경우는 모두 다르게 다뤄야 합니다. 같은 ‘우울’이라는 말로 덮어 두면 해결 방법도 흐릿해집니다.

우리말에는 마음을 가르는 칼날 같은 단어가 많습니다

우리말 감정 어휘는 생각보다 촘촘합니다. ‘애틋하다’는 단순히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이 깊은데 마음 한쪽이 저릿한 느낌이 함께 있습니다. ‘측은하다’는 불쌍하다는 말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습니다. 상대를 내려다보는 느낌보다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야속하다’는 밉다와 다릅니다. 믿었던 사람이 기대와 다르게 행동했을 때 생기는 섭섭한 원망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은 오래된 삶의 경험을 품고 있습니다. 농경 사회의 공동체, 가족 관계, 예법, 체면, 정 같은 문화가 말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어휘력은 단순한 표현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말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재 왔는지 배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신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타’, ‘킹받다’, ‘손절’, ‘자존감’ 같은 말은 너무 쉽게 쓴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 말들이 왜 퍼졌는지도 봐야 합니다. 빠르게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 시대에는 짧고 강한 말이 살아남습니다. 다만 짧은 말만 계속 쓰면 마음도 줄임말처럼 처리될 수 있습니다. 신조어를 쓰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 옆에 더 정확한 우리말을 하나 더 놓을 수 있으면 됩니다.

마음의 어휘력을 키우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거창한 독서법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루에 한 번, 내가 쓴 감정 표현을 한 단계만 더 정확하게 바꾸면 됩니다. “기분 나빴다”를 “무시당한 것 같아 불쾌했다”로, “힘들었다”를 “부담스럽고 막막했다”로, “좋았다”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로 바꾸는 식입니다.

  • 감정을 말할 때 ‘왜’보다 ‘무엇에 가까운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 비슷한 낱말을 나란히 놓고 차이를 느껴 봅니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야속하다처럼요.
  • 소설이나 수필을 읽을 때 인물의 마음을 한 단어로만 적지 말고 두세 단어로 나누어 봅니다.
  • 대화할 때 “화났어?” 대신 “속상했어, 아니면 억울했어?”처럼 선택지를 좁혀 줍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감정 단어를 많이 알려 주는 것보다 어른이 먼저 정확히 말하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너 왜 그래?”보다 “네가 기대했는데 안 돼서 속상했나 보다”가 낫습니다. 아이는 그 문장을 듣고 자기 마음의 이름을 배웁니다. 말은 설명으로만 배우지 않습니다. 자주 들은 말이 나중에 자기 말이 됩니다.

말을 많이 아는 사람은 마음을 함부로 다루지 않습니다

어휘력이라고 하면 흔히 어려운 한자어나 시험용 낱말을 떠올립니다. 물론 그런 어휘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어휘는 대개 마음을 세밀하게 부르는 말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지금 외로운지, 지친 건지, 인정받고 싶은 건지, 미안한데 자존심 때문에 화를 내는 건지 알아차리는 일. 이것이 문해력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글을 잘 읽는 사람은 문장만 읽지 않습니다. 그 문장 뒤에 숨은 마음의 방향을 읽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맞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어휘력이 넓어지면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끌려다니는 일이 조금 줄어듭니다. 저는 국어 시간이 결국 이런 힘을 길러 주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맞춤법 하나를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기 마음을 정확한 말로 붙잡는 일은 그보다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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