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단어 뜻만 찾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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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단어 뜻만 찾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사전을 펴면 뜻보다 먼저 보이는 것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선생님, 국어사전은 그냥 뜻 찾는 데 쓰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묻더군요. 솔직히 반쯤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반쯤만 맞습니다. 국어사전은 단어의 뜻을 알려 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 말이 우리말 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여 주는 장부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이라는 말을 떠올려 봅시다. 예전에는 ‘자장면’만 표준어로 삼았고, ‘짜장면’은 비표준어였습니다. 그런데 현실 언어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짜장면’이라고 말하니, 2011년에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되었습니다. 사전은 이런 변화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본다는 건 단어 하나의 뜻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말의 현재 주소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저는 사전을 “말의 주민등록부”라고 설명합니다. 태어난 말도 있고, 오래 살았지만 쓰임이 줄어든 말도 있고, 예전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표준어가 된 말도 있습니다. 사전은 그 이력을 꽤 성실하게 품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꼭 봐야 할 네 가지

사전을 펼쳤을 때 뜻풀이만 읽고 덮으면 조금 아깝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맞춤법과 문해력에 바로 연결되는 정보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다음 네 가지는 꼭 봐야 합니다.

  • 표제어: 사전에 올라 있는 기본 꼴입니다. ‘되다’, ‘먹다’, ‘아름답다’처럼 단어를 대표하는 모습입니다.
  • 품사: 명사인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알려 줍니다. 품사를 알아야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입니다.
  • 뜻풀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뜻이 여러 개일 때는 번호가 붙고, 실제 쓰임도 달라집니다.
  • 용례: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 줍니다. 사실 공부할 때는 뜻풀이보다 용례가 더 오래 남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면 발음 정보입니다. ‘밟다’는 글자만 보면 [발따]처럼 읽고 싶지만 실제 표준 발음은 [밥ː따]입니다. ‘넓다’도 경우에 따라 [널따]와 [넙따]가 갈립니다. 이런 건 감으로만 익히면 자주 흔들립니다. 사전의 발음 항목을 한 번 보는 쪽이 훨씬 빠릅니다.

맞춤법이 헷갈릴 때 사전은 규칙보다 먼저 말의 길을 보여 줍니다

‘며칠’과 ‘몇 일’ 중 무엇이 맞느냐고 물으면, 많은 학생이 “며칠이 맞죠?”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잘 모릅니다. 이때 국어사전이 유용합니다. ‘며칠’은 한 단어로 굳어진 표제어입니다. ‘몇’과 ‘일’을 따로 붙여 놓은 꼴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말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설거지’도 비슷합니다. 어른들 중에는 아직 ‘설겆이’가 익숙한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설겆다’라는 말과 연결해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현재 표준어는 ‘설거지’입니다. 관련 동사도 ‘설거지하다’로 씁니다. 사전을 보면 지금 인정되는 표기가 무엇인지, 그 말이 어떤 꼴로 굳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알면 맞춤법을 단순 암기로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왜 이렇게 써야 하지?”라는 의심이 생길 때 사전은 꽤 좋은 설명자가 됩니다. 물론 모든 유래를 길게 풀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표제어, 준말, 본말, 방언, 옛말, 비슷한 말 같은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말의 흐름이 보입니다.

종이사전과 온라인 사전은 쓰임이 조금 다릅니다

요즘은 대부분 온라인 국어사전을 씁니다. 검색창에 단어를 넣으면 바로 나오니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 같은 자료가 널리 쓰입니다. 각각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표준어 여부를 확인할 때는 표준국어대사전이 기준 역할을 하고, 실제 쓰임이나 새말을 넓게 볼 때는 우리말샘도 참고할 만합니다.

종이사전은 느립니다. 그런데 그 느림이 장점이 될 때가 있습니다. 찾으려던 단어 앞뒤에 있는 말까지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가늠’과 ‘가름’이 헷갈려 사전을 찾다가 ‘갈음’까지 보게 되는 식입니다. 세 말은 모양이 비슷하지만 뜻이 다릅니다. ‘가늠’은 어림잡는 일, ‘가름’은 나누거나 구별하는 일, ‘갈음’은 다른 것으로 대신하는 일입니다. 이런 차이는 검색 하나로 끝내면 놓치기 쉽습니다.

온라인 사전은 빠르고, 종이사전은 주변을 보게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옳은 방식은 아닙니다. 급할 때는 온라인으로 확인하고, 어휘력을 기르고 싶을 때는 일부러 앞뒤 단어를 같이 보는 습관이 좋습니다.

국어사전을 문해력 공부에 쓰는 방법

문해력은 어려운 책을 억지로 많이 읽는다고 갑자기 늘지 않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멈춰 서는 힘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모든 단어를 다 찾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읽기가 끊겨 지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한 쪽에서 정말 중요한 단어 2개만 고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신문 칼럼에서 ‘유예’, ‘상쇄’, ‘귀결’ 같은 단어가 나왔다고 합시다. 셋 다 문장의 방향을 바꾸는 말입니다. ‘유예’는 일을 바로 하지 않고 뒤로 미루는 일, ‘상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효과가 줄거나 없어지는 일, ‘귀결’은 어떤 일이 마지막에 이르게 되는 흐름을 뜻합니다. 이 단어들을 대충 넘기면 글의 논리가 흐릿해집니다.

사전을 찾을 때는 뜻 하나만 베끼지 말고, 예문을 자기 문장으로 바꾸는 편이 좋습니다. ‘정책 시행을 유예했다’를 ‘시험 날짜를 일주일 유예했다’처럼 바꿔 보는 겁니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단어가 내 입안에서 한 번 굴러가야 오래 남습니다.

헷갈리는 말은 묶어서 찾아야 합니다

국어사전 공부에서 특히 효과가 큰 방식은 비슷한 말을 묶어 보는 것입니다. ‘반드시’와 ‘반듯이’, ‘부치다’와 ‘붙이다’, ‘늘이다’와 ‘늘리다’처럼 모양이 비슷한 말은 따로 외우면 자꾸 섞입니다.

  • 반드시: 꼭, 틀림없이의 뜻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처럼 씁니다.
  • 반듯이: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의 뜻입니다. “글씨를 반듯이 쓴다”처럼 씁니다.
  • 붙이다: 떨어지지 않게 하거나 관계를 맺게 할 때 씁니다.
  • 부치다: 편지를 보내거나, 힘이 모자라거나, 전을 지질 때 씁니다.

이런 말들은 뜻풀이만 외우기보다 용례를 나란히 놓고 봐야 합니다. 사전은 그 비교의 출발점입니다. 틀린 표기를 빨간펜으로 고치는 일도 필요하지만, 왜 갈라졌는지 알게 되면 같은 실수를 훨씬 덜 합니다.

사전은 말의 법전이면서 기록장입니다

국어사전을 너무 딱딱한 규칙집으로만 보면 멀어집니다. 반대로 아무 말이나 다 받아 주는 목록으로 봐도 곤란합니다. 사전은 기준을 세우되,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의 변화를 계속 살핍니다. 그래서 표준어가 새로 인정되기도 하고, 뜻풀이가 더해지기도 하며, 새말이 자료로 남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단어를 모르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전을 가까이 두라고 말합니다. 모르는 말을 그냥 넘기는 습관이 쌓이면 글의 뼈대가 희미해집니다. 반대로 단어 하나를 정확히 붙잡으면 문장 전체가 또렷해집니다. 국어사전은 시험 직전에만 여는 책이 아니라, 내가 쓰는 말이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떤 얼굴로 쓰이는지 확인하게 해 주는 꽤 든든한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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