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표현 관용어 차이, 어디서 갈릴까요?

수업 시간에 ‘발이 넓다’를 읽고 한 학생이 운동화를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발의 크기를 말하는 문장으로 읽은 거지요.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발이 넓어서 아는 분이 많아’라고 하면 발 치수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 말을 같은 뜻으로 써 왔기 때문에, 단어를 하나씩 풀이한 것과 다른 의미가 생긴 겁니다. 여기서 관용표현 관용어 차이를 묻는 질문이 자주 나옵니다.
‘관용’은 익숙하게 굳어 쓰인다는 뜻입니다
관용 표현은 둘 이상의 단어가 일정한 모습으로 결합해, 그 전체가 관습적인 뜻으로 쓰이는 표현을 가리킵니다. ‘발이 넓다’의 ‘발’과 ‘넓다’를 따로 읽으면 발의 모양을 생각하기 쉽지만, 두 단어가 함께 쓰일 때는 사귀어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됩니다. 발이 닿는 곳이 넓다는 그림을 떠올리면 뜻을 기억하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다만 이것을 실제 발생 과정을 확인한 어원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쓰이는 뜻을 이해하게 해 주는 비유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처럼 관용 표현의 뜻은 낱말의 사전적 뜻을 단순히 더해서 얻어지지 않습니다. ‘손이 크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농구공을 한 손으로 잡을 만큼 손이 크다는 말에서는 손의 실제 크기를 가리킵니다. 반면 손님에게 음식을 넉넉하게 차려 주는 사람을 두고 ‘손이 크다’고 하면 씀씀이가 후하고 크다는 뜻이지요. 같은 글자라도 앞뒤 문맥을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관용어는 그 안에서 쓰이는 이름입니다
학교에서 이 둘을 구별할 때는 범위를 생각하면 됩니다. 관용 표현은 여러 갈래를 아우르는 넓은 이름이고, 관용어는 ‘발이 넓다’, ‘손이 크다’, ‘입이 짧다’처럼 어구 전체가 특별한 뜻을 나타내는 말을 가리킵니다. 관용어를 관용구라고도 부릅니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기초사전에서도 ‘관용구’의 비슷한 말로 ‘관용어’를 제시합니다. 따라서 ‘발이 넓다’는 관용어이면서 관용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헷갈리는 까닭도 있습니다. ‘관용어’에는 ‘어’가 들어 있지만, 실제 예를 보면 한 단어가 아니라 둘 이상의 단어가 묶인 경우가 많습니다. ‘발이 넓다’는 발·이·넓다를 각각 읽을 수 있어도, ‘아는 사람이 많다’라는 뜻으로 쓸 때는 전체를 한 덩어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는 ‘관용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두 이름을 전혀 다른 종류로 갈라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속담도 같은 우산 아래 들어갈까요?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말에 발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문장이 아닙니다. 한 번 나온 말이 멀리 퍼질 수 있으니 말을 삼가야 한다는 뜻을 전하지요. 이런 속담도 넓게 보면 관용 표현에 들어갑니다. 국립국어원 자료에서도 속담과 관용어를 모두 관용 표현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속담과 관용어를 언제나 똑같이 부르지는 않습니다. ‘발이 넓다’는 어떤 사람의 특징을 나타내는 어구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오래 전해 내려온 말로, 말조심에 관한 교훈까지 담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교육 자료 역시 이런 교훈적 성격을 두 갈래를 구별할 때 참고할 만한 특징으로 제시합니다. 다만 경계에 놓인 표현도 있어, 문장처럼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속담이라고 판정하면 곤란합니다.
가령 ‘식은 죽 먹기’는 문장이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이르는 관용적인 말입니다. ‘쉽다’라는 뜻을 담았다는 점은 ‘발이 넓다’와 닮았고, 오래 쓰여 온 익숙한 말이라는 점은 속담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분류 이름부터 맞히려 하기보다, 그 말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먼저 읽어 보는 편이 뜻을 놓치지 않습니다.
뜻을 알려면 낱말과 문맥을 함께 봅니다
학생들과 문장을 읽을 때 저는 먼저 글자 그대로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손이 크다’라면 손바닥을 펴 보게 하고, ‘발이 넓다’라면 신발 크기를 생각하게 하지요. 그런 다음 실제 대화 속 뜻과 나란히 놓습니다. ‘할머니는 손이 커서 김밥을 열 줄이나 만드셨어’에서는 손의 크기를 재는 일이 아니라 음식의 양을 말한다는 걸 금방 알아차립니다. 열 줄이라는 수치도 그 뜻을 짚는 단서가 됩니다.
표현의 모양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도 살펴볼 만합니다. ‘발이 넓다’를 ‘발이 길다’로 바꾸면 보통 같은 관용적 뜻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관용어가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발이 참 넓다’처럼 말 사이에 다른 말을 넣어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니까요. 낱말의 결합과 문맥을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표기도 간단히 짚어 두면 좋겠습니다. 넓은 범주를 가리키는 말은 ‘관용 표현’처럼 띄어 쓰고, ‘관용어’와 ‘관용구’는 붙여 씁니다. 하지만 이름보다 오래 남는 것은 말이 쓰인 장면입니다. 누군가를 두고 ‘발이 넓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신발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떠오른다면, 이미 그 표현을 제대로 읽고 있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