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제주도 사투리는 왜 지슬일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제주 여행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학생이 식당에서 ‘지슬’을 먹었다며 감자 요리인 줄은 현장에서야 알았다고 하더군요. 옆자리 학생은 ‘감저’라는 말도 들었다면서 감자와 비슷한 이름이니 같은 음식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두 말을 나란히 놓으면 헷갈릴 만합니다. 제주에서 감자는 지슬 또는 지실, 고구마는 감저라고 부릅니다.
제주에서 감자는 지슬, 감저는 고구마
‘감자 제주도 사투리’를 찾는 분이라면 우선 이 둘을 구별하면 됩니다. 표준어 ‘감자’에 대응하는 제주어가 ‘지슬’과 ‘지실’입니다. 반면 ‘감저’는 표준어로 옮기면 ‘고구마’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소개한 제주 방언 자료에도 지실은 감자, 감저는 고구마로 실려 있습니다.
가령 제주어가 쓰인 자리에서 ‘지슬을 삶았다’고 하면 감자를 삶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저를 구웠다’고 하면 고구마를 구웠다는 뜻이고요. 이 문장들은 뜻을 보여 주려고 만든 예문입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감저의 첫 음절 ‘감’ 때문에 감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름의 닮은꼴만으로 먹거리를 짐작하면 여기서 어긋납니다.
지슬과 지실 가운데 하나만 맞고 다른 하나가 틀린 것도 아닙니다. 자료에 따라 두 형태가 함께 제시됩니다. 제주어를 적을 때는 실제 쓰인 말의 형태를 존중하고, 제주어를 모르는 독자에게 설명할 때는 ‘지슬(감자)’처럼 뜻을 덧붙이면 읽기가 한결 편해집니다.
왜 고구마에 감저라는 이름이 남았을까요?
이름이 엇갈린 까닭은 두 작물이 우리 땅에 들어온 순서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구마가 먼저 들어왔을 때 ‘감저(甘藷)’라는 이름이 쓰였습니다. 조엄이 1763년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고 남긴 기록에도 이 이름이 나옵니다. 한자로는 ‘달 감(甘)’과 ‘마 저(藷)’를 씁니다. 당시의 감저를 지금의 감자로 곧장 읽으면, 같은 글자가 가리키던 대상이 달랐다는 사실을 놓치게 됩니다.
감자는 그보다 뒤에 들어왔습니다. 새 작물이 퍼지는 동안 지역마다 두 작물을 부르는 방식이 달라졌지요. 국립국어원의 어휘사 설명과 감자 명칭을 다룬 방언 연구를 보면, 오늘날의 표준어 ‘감자’와 닮은 말이 고구마를 뜻하던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지금의 감자만 가리켰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제주에는 고구마를 뜻하는 ‘감저’가 이어졌고, 감자를 가리킬 때는 ‘지슬·지실’이라는 다른 이름을 썼습니다. 이름을 외울 때 두 작물을 한 쌍으로 떠올리면 덜 헷갈립니다. 제주어에서는 지슬이 감자, 감저가 고구마입니다. ‘감저가 감자처럼 들리는데 왜 고구마지?’라는 의문이 오히려 옛 이름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표준어와 제주어를 쓸 자리는 어떻게 다를까요?
이 차이는 맞춤법 문제와 구별해서 보면 좋습니다. 표준어로 감자를 써야 할 문장에 ‘지슬’을 썼다고 해서 제주어 자체가 틀린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재료를 안내한다면 ‘감자’가 바로 이해되겠지요. 제주 사람의 말을 옮기거나 제주 음식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지슬’을 살려 쓰는 편이 그 말이 놓인 자리까지 전합니다.
‘감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조리법에서 고구마를 뜻한다면 ‘고구마’라고 쓰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주에서 쓰는 이름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감저(고구마)’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게 뜻을 밝혀 주는 일과 지역의 말을 지우지 않는 일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 사례를 들려주면 ‘그럼 지슬과 감저는 서로 바뀐 말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게만 말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제주에서는 고구마의 옛 이름인 감저가 이어졌고, 감자에는 별도의 이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반대로 오늘 우리가 쓰는 표준어에서는 감자가 감자를 가리킵니다. 두 낱말을 한 글자씩 맞바꾼 셈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이름이 굳은 과정이 달랐던 것입니다.
말뜻이 헷갈릴 때는 무엇을 먼저 볼까요?
방언을 읽을 때 저는 사전의 뜻풀이부터 확인하되, 그 말이 쓰인 곳과 시대도 함께 봅니다. 같은 소리가 다른 작물을 가리킨 사례가 바로 감저와 감자입니다. 제주어 자료에서 ‘지슬’이 보이면 감자를 떠올리고, ‘감저’가 보이면 고구마를 떠올린 뒤 문맥을 다시 읽습니다. 음식 이름이나 오래된 기록에서는 이 한 번의 확인이 의미를 크게 바꿉니다.
교실에서는 두 낱말을 칠판에 나란히 쓰고 학생에게 각각 감자와 고구마 그림을 연결하게 합니다. 이어서 ‘옛 감저는 고구마를 가리켰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 처음에는 뒤집어 연결했던 학생도 금방 이유를 이해합니다. 말의 유래를 알고 나면 지슬과 감저는 외워야 할 낯선 단어 두 개가 아닙니다. 제주에 남은 이름이 작물과 함께 건너온 시간까지 들려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