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은 왜 공부해도 쉽게 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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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은 왜 공부해도 쉽게 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수업에서 중학생에게 짧은 설명문을 읽히고 “글쓴이가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문장을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었고, 어려운 단어 뜻도 몇 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의 흐름을 말해 보라고 하니 멈칫하더군요. 저는 그 순간 다시 느꼈습니다. 문해력은 글자를 읽는 힘이 아니라, 말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붙잡는 힘입니다.

문해력은 단어 뜻 암기만으로 늘지 않습니다

문해력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래요”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절반만 맞습니다. 예를 들어 ‘반면’, ‘따라서’, ‘다만’ 같은 말의 뜻을 사전식으로 외웠다고 해서 글을 잘 읽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 말들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틀어 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반면’이 나오면 앞말과 뒷말은 대비됩니다. ‘따라서’가 나오면 앞의 내용이 근거가 되고 뒤의 내용이 판단이 됩니다. ‘다만’은 앞의 말을 모두 버리는 게 아니라 조건을 덧붙입니다. 이런 연결어 하나를 놓치면 글 전체의 길을 잃습니다. 길 안내판은 읽었는데, 어느 쪽으로 꺾어야 하는지 모르는 셈이지요.

  • 단어의 뜻을 아는 것: ‘추론’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
  • 문맥에서 쓰임을 아는 것: 글 속 단서를 모아 보이지 않는 뜻을 짐작한다.
  • 글의 구조를 아는 것: 주장, 근거, 예시, 반박이 어떻게 놓였는지 본다.

틀리게 읽는 아이들은 대개 빨리 읽습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글을 못 읽는 학생보다 너무 급하게 읽는 학생이 더 많습니다. 특히 문제를 풀 때 그렇습니다. 한 문단을 읽고 바로 답을 고르려 합니다. 그런데 문해력은 속도보다 방향의 문제입니다. 빠르게 읽는다고 늘 정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시키는 방식이 있습니다. 한 문단을 읽은 뒤 딱 7초만 멈춥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세 가지를 확인합니다. ‘무엇을 말했지? 왜 말했지? 앞 문단과 무슨 관계지?’ 이 짧은 멈춤이 생각보다 큽니다. 문장을 눈으로 지나가는 속도와 머릿속에서 뜻이 자리 잡는 속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독해 문제에서 오답이 많이 나오는 지점은 어려운 한자어보다 지시어와 생략된 관계입니다. ‘그것’, ‘이러한’, ‘앞선 내용’ 같은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놓치면 쉬운 글도 갑자기 흐려집니다. 국어 시험에서 긴 지문이 부담스러운 이유도 길이 자체보다 관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휘는 뜻보다 쓰임으로 익혀야 오래 갑니다

어휘 교재를 쓰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여기에 있습니다. 낱말 옆에 풀이만 붙이면 학생은 금방 잊습니다. ‘타당하다: 이치에 맞다’라고 외운 학생은 시험장 밖에서 그 말을 잘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장은 그럴듯한데 근거가 부족하면 타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처럼 상황 속에서 배우면 오래 남습니다.

문해력을 키우는 어휘 공부는 단어장을 많이 넘기는 일이 아닙니다. 한 단어를 문장 안에서 여러 번 만나는 일에 가깝습니다. ‘유의미하다’라는 말을 배웠다면, 단순히 ‘뜻이 있다’로 끝내지 않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 “삶에 유의미한 경험이다”, “수업 변화가 유의미하게 나타났다”처럼 쓰임의 폭을 봐야 합니다.

어휘를 붙잡는 작은 방법

  • 처음 보는 단어는 뜻을 바로 찾기 전에 앞뒤 문장을 먼저 읽습니다.
  • 뜻을 찾은 뒤에는 그 단어가 왜 그 자리에 쓰였는지 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 비슷한 말 하나, 반대되는 말 하나를 함께 적습니다.
  • 사흘 안에 짧은 문장으로 직접 한 번 써 봅니다.

이렇게 하면 단어가 ‘시험용 지식’에서 ‘내가 부릴 수 있는 말’로 조금씩 바뀝니다. 언어는 눈에 익는 데서 끝나지 않고 손과 입으로 옮겨질 때 단단해집니다.

문해력은 배경지식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같은 글을 읽어도 어떤 학생은 금방 이해하고, 어떤 학생은 자꾸 멈춥니다. 머리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글이 기대고 있는 배경지식의 차이가 큽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 ‘공공재’, ‘풍자’, ‘관습’ 같은 말은 단어 하나만 알아서는 부족합니다. 그 말이 쓰이는 사회적 장면을 조금 알아야 글이 열립니다.

그래서 저는 문해력을 키우려면 짧은 글을 다양하게 읽는 편이 좋다고 말합니다. 긴 책 한 권도 좋지만, 처음부터 부담스럽다면 신문 칼럼, 설명문, 과학 기사, 사설, 안내문을 번갈아 읽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분야가 달라지면 자주 만나는 어휘도 달라지고, 문장 구조도 달라집니다.

근데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어려운 글만 골라 읽는다고 문해력이 바로 자라지는 않습니다. 10줄 중 7줄은 이해되고 3줄 정도가 낯선 글이 좋습니다. 전부 쉽다면 자극이 적고, 전부 어렵다면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공부도 그렇지만 읽기도 적당한 저항이 있어야 오래 갑니다.

읽은 뒤 말로 바꾸면 실력이 드러납니다

문해력이 늘었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집 점수만이 아닙니다. 읽은 글을 자기 말로 바꿔 설명할 수 있는지 보면 됩니다. “이 글은 환경 보호가 중요하다는 내용이에요”에서 멈추면 아직 넓습니다. “개인의 실천만 강조하면 기업과 제도의 책임이 가려질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라고 말하면 글의 중심을 훨씬 정확히 잡은 겁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긴 독후감을 요구하기보다 세 문장 말하기를 자주 시킵니다. 첫째, 글쓴이가 말한 것. 둘째, 그 말을 뒷받침한 근거. 셋째, 내가 동의하거나 의심한 지점. 이 세 문장만 꾸준히 해도 읽기는 꽤 달라집니다.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질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문해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재능이 아닙니다. 낱말을 문장 속에서 보고, 문장을 문단 속에서 보고, 문단을 글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는 습관입니다. 맞춤법도 그렇습니다. 표기를 외우는 사람은 자주 흔들리지만, 말이 굳어진 이유를 아는 사람은 덜 흔들립니다. 읽기도 비슷합니다. 글자가 아니라 관계를 읽기 시작할 때, 글은 조금씩 낯선 벽이 아니라 건너갈 수 있는 길이 됩니다.

문해력은 왜 공부해도 쉽게 늘지 않을까요?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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