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타고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말뜻에서 보면 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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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타고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말뜻에서 보면 답이 보입니다

학생을 오래 보다 보면 성격이라는 말이 다르게 들립니다

얼마 전 예전 제자가 찾아와서 “선생님, 저는 원래 소심한 성격이라서요” 하고 웃더군요. 그 말을 듣는데, 문득 교실에서 16년 동안 들었던 수많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쟤는 성격이 좋아요”, “저 친구는 성격이 세요”, “나는 성격상 발표가 힘들어요.” 우리는 성격이라는 말을 참 쉽게 씁니다. 그런데 막상 성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흐려집니다.

국어 시간에 어휘를 설명할 때 저는 뜻풀이보다 먼저 말의 뼈대를 봅니다. ‘성격’은 한자로 性格이라고 씁니다. 性은 타고난 성질, 格은 틀이나 됨됨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격은 단순히 ‘기분’이나 ‘태도’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비교적 오래 지니는 마음의 방향, 말투, 반응 방식, 관계 맺는 모양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性만 보면 타고난 것처럼 보이지만, 格이 붙으면서 그 사람 안에 자리 잡은 틀이라는 뜻이 강해집니다. 타고난 바탕도 있고, 살아오며 굳어진 모양도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격은 절대 안 바뀐다”는 말도 반만 맞고, “성격은 마음먹으면 바로 바뀐다”는 말도 반만 맞습니다.

‘성격’과 ‘성질’은 왜 느낌이 다를까요?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성격’과 ‘성질’을 자주 섞어 씁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은 성질이 차분하다”라고 쓰면 조금 어색합니다. 보통은 “성격이 차분하다”라고 하지요. 반대로 “그는 성격을 냈다”라고 하면 이상합니다. 이때는 “성질을 냈다”가 자연스럽습니다.

두 말은 가까워 보이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성격은 사람의 지속적인 됨됨이를 말할 때 많이 씁니다. 성질은 타고난 기질이나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의 결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질이 급하다”는 말은 자연스럽고, “성격이 급하다”도 가능합니다. 다만 앞말은 즉각적인 반응의 느낌이 강하고, 뒷말은 그 사람의 전반적인 특성을 말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 성격이 좋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전반적인 인상이 좋다는 뜻
  • 성질이 좋다: 요즘 말로는 거의 쓰지 않고, 주로 동물이나 물건의 상태를 말할 때 자연스러움
  • 성격이 밝다: 지속적인 분위기와 태도를 말함
  • 성질을 부리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거칠게 드러냄

이런 차이를 알면 글의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맞춤법만큼이나 어휘 선택도 문해력의 일부입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성격이 강하다”와 “성질이 고약하다”는 완전히 다른 평가가 됩니다. 앞말은 단단함이나 자기주장이 느껴지고, 뒷말은 불쾌한 감정 표현이 먼저 떠오릅니다.

성격이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쓰일까요?

사실 성격은 사람에게만 쓰이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하다”, “그 모임은 친목 성격이 짙다”, “이번 행사는 공공사업의 성격을 띤다”처럼 사물이나 일에도 씁니다. 이때의 성격은 ‘그것이 지닌 기본 성질이나 방향’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格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어떤 대상이 어떤 틀을 갖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지요. 문학 작품의 성격, 정책의 성격, 사건의 성격이라는 표현은 모두 그 대상의 본질적 방향을 짚는 말입니다. 그래서 논술이나 보고서에서는 ‘성격’이라는 단어가 꽤 중요합니다. 단순히 느낌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대상을 분류하고 판단하는 기준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글은 설명문이다”라고만 쓰면 장르를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독자를 설득하려는 성격이 강한 설명문이다”라고 쓰면 글의 목적까지 드러납니다. 단어 하나가 문장의 깊이를 바꿉니다. 국어 시험에서 ‘글의 성격’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격이 나쁘다’는 말은 생각보다 거칩니다

교실에서 생활지도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친구에게 “너 성격 나빠”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가볍게 던진 말처럼 보이지만, 이 표현은 꽤 넓고 강한 평가입니다. 성격은 한 사람의 오래된 됨됨이를 가리키기 때문에, “그 행동은 불편했어”보다 훨씬 무겁게 들립니다.

이 차이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말을 고쳐 씁니다. “네 성격이 별로야” 대신 “아까 말투가 좀 날카로웠어”라고 말하면 비난보다 피드백에 가까워집니다. 말은 사람을 찍어 누를 수도 있고, 행동만 따로 떼어 볼 수도 있습니다. 어휘를 정확히 쓰는 일은 결국 관계를 덜 상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른들도 비슷합니다. 직장에서 “그 사람 성격 이상해”라고 말하면 평가가 사람 전체로 번집니다. 반면 “회의 때 반응이 방어적으로 느껴졌어”라고 하면 특정 장면을 말하게 됩니다. 둘의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같은 불만이라도 어떤 단어를 고르느냐에 따라 상대가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라집니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 낙인이 아닙니다

성격을 설명할 때 저는 학생들에게 연필 자국을 비유로 듭니다. 한 번 그은 선은 흔적이 남습니다. 하지만 계속 덧그으면 더 진해지고, 다른 방향으로 여러 번 그으면 종이의 인상도 달라집니다. 사람의 성격도 그렇게 이해하면 조금 편합니다. 타고난 반응 속도나 예민함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을 자주 듣고, 어떤 관계를 오래 겪고, 어떤 선택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야”라는 말은 때로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이지만, 때로는 더 나아가지 않으려는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을 억지로 바꾸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성격이라는 단어 안에는 타고난 바탕과 살아오며 굳어진 틀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 틀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말의 유래를 보면 사람을 보는 눈도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성격은 단순한 딱지가 아니라 한 사람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모양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말할 때도, 나 자신을 설명할 때도 조금 더 정확한 말을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나는 소심해”에서 멈추기보다 “낯선 자리에서 말이 늦게 나오는 편이야”라고 말하면, 그다음 한 걸음을 생각할 여지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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